‘멜로 장인’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전직 살인청부업자’로 변신…세계적인 호평에 “얼떨떨해요”
눈빛이 다하는 ‘멜로 장인’으로 불린 배우 이진욱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전직 살인청부업자’로 변신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멜로 장인’으로 꼽히는 그가 가장 강하게 각인된 이전까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악을 악으로 벌하는’ 전직 살인청부업자로 대중들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도전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배우 이진욱(39)에겐 성공적인 도박이었던 셈.
“캐릭터를 구상하는데 감독님과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이진욱이 가진 외모에서 방해까진 아니지만, 지워도 될 만한 요소들을 지워보자 해서 화상 분장도 하고, 기괴한 얼굴 분장도 하고 그랬죠. 의상 피팅하는 날에 같은 건물 다른 부서 직원들도 구경 온 적이 있었는데 저 보고 도망갔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이상한 사람 와 있다’ 하면서 무섭다고 도망갔다는데, 저는 그 반응이 괜찮았어요(웃음).”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이진욱이 맡은 편상욱은 고통을 모르고, 인간이지만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전직 살인청부업자다. 그러면서도 괴물들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자들을 지키며 다시금 인간다운 삶으로 돌아갈 여지를 남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특성상 대사가 많지 않기에 그의 미묘한 변화를 눈빛과 행동으로만 연기해야 했지만 오히려 그 편이 이진욱에겐 수월할 수 있었다. 괜히 ‘멜로 눈빛’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게 아니었다. ‘스위트홈’ 공개 이후 편상욱의 근력과 깡으로 밀어 붙이는 액션 연기도 그랬지만, 눈빛 연기를 두고도 많은 호평이 이어진 것은 그 덕이었다. 이진욱의 연기 인생에서 최초일 ‘한없이 음울하고 누아르적인 캐릭터’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도 그의 깊은 눈빛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진욱은 편상욱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장을 시도했다. 최종적인 화상 분장은 직원들이 그를 보고 도망가게 만들기에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극 중 편상욱은 두 명의 캐릭터와 눈에 띄는 관계성을 갖는다. 상욱이 살아가는 방법을 존중하면서도 인간임을 잃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정재헌(김남희 분)과, 그가 잊고 있던 인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박유리(고윤정 분)다. 브로맨스와 로맨스를 오가는 이 두 가지 관계성을 두고 이진욱은 “희망과 치유”라고 설명했다.
“김남희 배우의 정재헌은 괴물 같은 삶을 살던 편상욱으로 하여금 다시 인간 쪽으로 한 걸음 내딛게 끌어당겨 주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에요. 처음으로 상욱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죠. 특히 셔터 내리는 신에서 서로 시선을 마주했을 때가 상욱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희망을 갖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또 ‘힐러’ 역할을 하는 박유리와는, 멜로라기보단 치유의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나를 챙겨주는 보호자의 느낌 같은 아주 묘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제까지 편상욱은 그런 감정이 뭔지 모르거나 아주 예전에 마음 속 깊숙이 눌러놨었을 테니까요.”
이진욱이 출판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은 2016년 MBC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후로 처음이었다. 원작 웹툰의 컷과 컷 사이 독자들의 상상으로 이어져 온 간극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옮겨내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촬영에 임하기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혹평을 예상하며 욕심 없이 촬영을 마쳤는데 생각하지 못한 전 세계적인 호평에 행복하면서도 여전히 얼떨떨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스위트홈’은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 이어 이진욱이 두 번째로 도전한 만화 원작 드라마다. ‘스위트홈’을 두고 그는 “내 안의 불덩어리를 꺼내게 한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넷플릭스 ‘스위트홈’ 스틸컷.
“처음 넷플릭스 작품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공개되고 얼마 안 돼서 여러 군데서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어 지금에서야 실감하는 중입니다(웃음). 그렇다고 완전히 실감하게 된 건 아니고 ‘이제부터 전 세계에서 인기가 많아질 수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이제 막 생기고 있는 참이에요(웃음). 사실 촬영할 때는 현장이 휑해서 ‘여기서 도대체 (뭘 찍지)…’ 하고 완성작이 상상이 잘 안 됐거든요. 촬영을 하긴 했는데 우리 뭘 찍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화 많이 나눴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니까 정말 감격스럽더라고요. 다행히 반응도 호평이라서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이처럼 이진욱이 ‘스위트홈’에 애정을 갖는 것은 비단 그의 첫 번째 넷플릭스 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상욱이라는 캐릭터를 ‘뻔하지 않은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공에 더해, 이진욱이라는 배우의 안에 잠재된 또 다른 힘을 꺼낼 수 있게 만들어 준 그의 연기 인생 속 ‘터닝 포인트’라는 점이 그 이유가 됐다. 몸에 맞는다고 해서 늘 똑같은 옷과 가면을 쓰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새롭고 파격적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이라는 게 이진욱의 이야기다.
“배우에겐 많은 역할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캐스팅이 돼야 도전도 할 수 있는 거라 쉽지만은 않죠. 이번 ‘스위트홈’처럼 이전 작품에서의 가능성을 보시고 제게 캐릭터를 제안해 캐스팅이 성사되는 건 행운이에요. 예전에 제가 했던 ‘나인’이라는 작품을 보시고 제가 편상욱을 뻔하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로 잘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사실 배우는 특별히 뛰어난 걸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뿐 누구나 다 자신 안에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도 이전까진 보여드리지 않은 불덩어리가 제 안에 있거든요. 앞서 저한테 주로 표현되는 것들을 사용하며 연기자 생활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그런 불덩어리를 적절하게 꺼내 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돼서 어릴 때와는 또 다른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