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착용 외 조치 없고 동선 추적 불가…QR코드 도입도 쉽지않아 ‘확진자 허브’ 우려
2020년 8월 20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될 당시 출근길 사당역. 사진=박정훈 기자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은 인파로 붐빈다. 이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한 정보는 깜깜이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이력이 있다면 탑승 승객 전원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교통카드 이용 내역을 바탕으로 승객들의 동선을 추적할 만한 제도적 장치 또한 없다.
최근 전염병이 전파되기 최적화된 조건으로 ‘3밀’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다시 부각된 조건이다. 3밀은 밀접·밀집·밀폐로 전염병 전파가 쉬운 환경을 일컫는 말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중들이 가장 친숙하게 접하는 3밀 환경이 있다”면서 “바로 대중교통”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전파력이 높을 수 있는 환경(대중교통)에 대한 정부 지침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전염병에 대한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2월 8일부터 28일까지 수도권 대중교통 방역지침 의무화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를 근거로 이뤄졌다. 버스, 열차, 선박, 항공기 등 감염병 전파가 우려되는 운송수단 이용자에 대해 마스크 착용 등 방역지침 준수를 명령하는 조치다. 이 조치가 탑승객들에게 의무화한 사항은 ‘마스크 착용’ 외에 없다. 탑승객들이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중교통 내에 코로나19 관련 확진자 역학조사에 필요한 조치는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12월 들어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는 일이 잦아졌다. 복수 전문가들은 “이제 확진자 동선 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사는 “이제 어딜 가서 어떻게 조심하든 ‘복불복’인 상황”이라면서 “일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간 현 시점에선 어디서 코로나19에 확진됐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간 확진자 동선 파악 및 역학조사를 위해 전국 각지에 분포한 상업 시설에 대해 QR코드 체크인을 의무화했다. QR코드 체크인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반드시 지켜야 할 문화로 확립됐다. 그러나 가장 많은 발길이 오가는 대중교통 시설엔 역학조사에 필요한 인프라 자체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부상하고 있다. 앞서의 의사는 “QR코드 체크인은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확진자가 음식점을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확진자는 음식점에서 QR코드 체크인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간대 같은 음식점에서 QR코드 체크인을 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감염경로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확진자는 어떻게 이 음식점까지 이동했을까. 상당수가 대중교통을 통해 그 음식점까지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중교통에서 역학조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현재 운용하고 있는 QR코드 체크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12월 넷째 주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 비율은 32%까지 늘었다. 12월 셋째 주 감염경로 불분명 확진자 비율은 29.1%였다. 11월 첫째 주 전국 감염경로 불분명 확진자 비율이 13.7%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역학조사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코로나 확진 허브가 될 수 있는 대중교통 시설에 대한 역학조사를 사각지대로 남겨두고 수박 겉핥기 식 확진자를 추적한 부작용이 이제야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철 의자와 손잡이, 버스 손잡이와 하차버튼 등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곳 모두가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이 존재하는 매개체라고 했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최근 들어 무증상 확진자와 감염경로 불분명 확진자 비중이 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그간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가 확진자 감염경로로 대중교통 수단을 언급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던 12월 26일 처음으로 대중교통 수단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됐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며 운행하는 7016번 버스 기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까닭이었다. 7016번 버스는 은평 공영차고지를 출발해 상암동, 홍대입구, 신촌, 공덕, 남영, 경복궁을 지나는 노선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정류장들이다.
한 의료진은 “7016번 버스 기사 확진 판정은 대중교통 수단이 그간 코로나19 확산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할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의사는 “이미 감염경로가 불분명하다는 판정을 받은 확진자들이 많다”면서 “이들 중 작지 않은 비율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임준선 기자
그럼에도 대중교통 역학조사 부재를 해결할 방안은 요원하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미 코로나19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에서 대중교통에 QR코드 체크인 같은 역학조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애매하다고 했다. 운수업계 관계자는 “모든 탑승객이 QR코드 체크인 같은 역학조사 시스템을 거친 뒤 대중교통 수단에 탑승하게 될 경우에도 문제가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탑승객들은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을 목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런데 대중교통 이용에 QR코드 체크인을 적용한다고 하면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출퇴근 인파를 감안했을 때 QR코드 체크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감염경로 파악 시스템을 대중교통에 적용하면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대중교통 운행을 전면 중단하는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다.”
정부에서도 2020년 대중교통 시설 이용 관련 방역 지침을 여러 차례 발표하긴 했다. 3월 정세균 총리는 해외 입국자들이 대중교통 탑승을 하지 않도록 하는 주의 조치를 하달했다. 10월 13일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12월 수도권 대중교통 시설 방역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로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