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지나야 국민 대부분 접종” 전망 우세…국내 위탁생산 아스트라제네카 확신했다가 차질 분석
12월 8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정부 백신 공급 계획 브리핑을 시청하는 시민들. 사진=최준필 기자
먼저 정부는 백신 1000만 명분은 국제 백신협약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공급받을 예정이다. 나머지 3400만 명분은 글로벌 기업과 개별 계약을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 그 가운데 1000만 명분에 대해선 이미 구매계약을 완료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백신이다. 나머지 2400만 명분은 화이자·모더나·얀센 등 기업으로부터 확보할 예정인데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미 다른 나라들이 치열한 선구매 전쟁을 바탕으로 백신을 확보한 터라 계약에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이미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 얀센은 미국 존슨앤존슨이 소유하고 있는 제약사다. 얀센이 개발한 백신은 화이자-모더나에 이어 3번째 긴급 사용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의약계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미국 FDA 승인보다 유럽의약품청 승인을 먼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 의약계 관계자는 “미국 FDA가 신규 약품 승인에 있어 국제 표준으로 적용된다”면서 “그렇다보니 미국 FDA 승인 제품이 업계에선 ‘상위 등급 제품’으로 취급받는데, 정부가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아직 신뢰도나 인지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사용을 승인한 뒤 12월 14일부터 12월 19일까지 27만 2000명에 대한 백신 접종을 진행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확보한 다른 나라들 역시 2020년 내 접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EU(유럽연합) 소속 국가들 역시 백신 접종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유럽의약품청은 12월 21일 화이자와 독일 기업 바이오앤테크가 공동개발한 백신 조건부 판매를 승인했다. EU 집행위원회 승인이 나면 EU 소속 국가들은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할 전망이다.
12월 2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발 빠른 백신 접종 성과를 이룬 나라들은 코로나19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던 나라들은 일찌감치 코로나19 ‘백신 개발 및 조기 접종’을 해결책으로 선정한 뒤 백신 물량 확보에 집중했다. 8월 국제기구 옥스팜에 따르면 미국, 영국, EU,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마카오, 일본, 스위스 등 이른바 ‘부유한 나라’들이 5대 제약사 백신 물량 59억 회분 중 51%를 선구매했다. 일본은 8월 화이자 백신 1억 2000만 회분을 계약 완료했다.
독일 매체 DW는 남은 백신 물량 중 26억 회분은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들이 사들이거나 구매를 약속한 분량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이 백신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방역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던 한국이 백신 확보 전쟁에선 뒤처진 셈이다.
정 총리는 한국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정부가 백신 TF를 가동한 7월엔 일별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부 실책을 어느 정도 시인하는 발언이었다. 정 총리는 “확진자가 많은 미국이나 영국은 제약사에 백신 개발비를 댔다”면서 “제약사들도 이런 나라들과 (백신 공급 계약을 하는 데)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신 계약이 조금 늦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놨다. 야권 한 관계자는 “정부는 ‘K-치료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K-방역’ 방점을 찍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셀트리온 등 국내 제약사들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19 치료가 아닌 예방 목적을 가진 ‘글로벌 기업 백신’ 물량 확보에 돌입했다”면서 “우리 정부는 국내 기업의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다가 글로벌 기업 백신 물량 확보 전쟁에 뒤늦게 뛰어든 모양새”라고 했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사진=연합뉴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장 먼저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K-백신’ 프로젝트 일환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국 제약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제품”이라면서 “이 제품은 현재 언급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 백신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기업이 위탁생산을 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 위탁생산한 뒤 물량을 유연하게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정부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약계 관계자는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정부가 이 제품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경위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다른 글로벌기업 제품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단가와 보관의 용이성”이라면서 “이 제품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보다 5~10배 저렴하다. 그리고 냉동이 아닌 냉장보관으로도 제품을 운송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만 한 가지 계산이 어긋난 게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화이자-모더나-얀센 다음으로 시중에 풀리게 된 부분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승인이 늦어지면서 ‘백신 물량 확보’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선택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다른 글로벌 기업과도 협의를 이어가는 ‘분산투자’ 방식이 아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을 기다리는 ‘올인’ 방식으로 백신을 확보하려 했던 정부 방침엔 명백한 허점이 있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분명한 실책이라 볼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020년 12월 말 중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으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영국에서 승인을 받으면 한국 식약처 사용승인 절차를 거쳐 접종에 돌입할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임준선 기자
정 총리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021년 1분기부터 공급을 시작하기로 약속돼 있다”면서 “다만 1분기 언제라는 것은 특정이 안돼 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우리는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하고 싶지만 (공급 시기가) 3월이 될 수도 있다”면서 “계약한 1000만 명분 백신이 1분기에 모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이 개발한 백신 물량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 총리는 현재 계약 추진 중인 화이자-모더나-얀센 백신과 관련해 “1분기에 공급될 가능성은 없지만 3개사와 계약이 조만간 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정 총리는 “해당 업체들과 계약이 임박했으나 1분기 공급 약속을 받은 건 없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 발언을 종합하면 정부가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 명분은 1분기부터 공급되지만, 이 기간에 모든 물량이 공급되지 않는다. 다른 기업과 계약이 체결돼도 접종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복수 전문가는 백신 접종 의사가 있는 국민 대부분이 접종을 받으려면 2021년 상반기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봤다.
백신 공급 난항에 따른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 발언 역시 도마에 올랐다. 9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아직 백신에 대한 완전한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할 수 없어 너무 서둘러 선구매하는 건 우를 범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백신 선구매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11월 17일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화이자·모더나 백신 개발과 관련해 “그쪽에서 빨리 계약을 맺자고 하는 상황이다. 백신 확보에 불리하지 않은 여건”이라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선 ‘정부 내부적으로 손발이 맞지 않아 백신 수급에 결정적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2020년 봄부터 감염병 전문가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백신을 선구매 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면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마이웨이’로 방역 정책을 펼친 현 정부가 너무 아마추어적인 대처로 코로나19 시국에 대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