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소식 감추기 급급, 11월 돼서야 마스크 의무화, 접촉자 방 배정 강당집합 감염 확산 촉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12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서울동부구치소 등 교정시설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의 현황과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동부구치소에는 없던 마스크와 가림막이 준비된 브리핑이었다. 사진=임준선 기자
#뒷북 전수조사
서울동부구치소의 공포는 11월 27일 시작됐다. 이날 출정교도관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 즉시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대비한 체계적인 움직임이 있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12월 15일까지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19일 동안 그 사실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그 사이 동부구치소 직원 16명과 집행정지 출소 수용자 1명 등 총 1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숨기기에 급급하다 보니 전수조사는 12월 18일에서야 시작됐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22일 만으로 집단감염이 이뤄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전수조사가 시작된 뒤 확진자가 급증했다. 12월 30일 4차 전수조사에서 126명이 추가 확진되면서 31일 오전 기준 동부구치소 발 코로나19 확진자는 918명으로 구치소 직원 21명, 수용자 897명이다.
12월 27일 동부구치소 수용자 중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법무부는 언론에서 12월 29일 관련 보도를 하자 그제야 그 사실을 공개했다.
#최악의 한 수 된 강당 집합
19일간 확진자 발생 사실을 숨긴 동부구치소는 12월 15일 그 소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18일 1차 전수조사가 이뤄지면서 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9일 발표된 1차 전수조사 결과는 무려 185명 확진 판정이었다.
12월 30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관계자들이 차량으로 도착한 방호복 박스를 옮기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동부구치소는 12월 19일 밤 잠자고 있는 수용자들을 깨워 짐을 싸게 한 뒤 갑작스럽게 방을 옮겼다. 확진자 접촉자와 비접촉자들의 그룹을 따로 나눠 다시 방을 배정하기 위한 ‘방역 차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수용자들을 강당에 집합시켰다. 180여 명의 수용자들이 새벽 2시까지 4시간가량 강당에서 대기해야 했는데 지루할까봐 영화를 틀어주는 ‘배려’까지 했다.
사흘 뒤인 12월 23일 2차 전수검사가 이뤄졌고 25일 288명이 확진됐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1차 전수조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이들이 2차 전수조사에서는 양성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 12월 27일 3차 전수조사에서 233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왔으며 30일에 이뤄진 4차 전수조사에서도 126명이 추가 확진됐다.
#유증상에도 감기약만 지급
서울동부구치소는 구조적으로 집단감염의 위험성이 높았다. 우선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성이 높은 3밀(밀집·밀접·밀폐) 구조의 아파트형 빌딩인 데다 환기 시스템도 불량했다. 체육시설조차 건물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수용인원을 초과한 밀집도도 문제가 됐다.
그럼에도 법무부 등 교정당국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우선 기본적으로 마스크가 지급되지 않았으며 사비로 구입해서 쓰지도 못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11월까지만 해도 구치소 내에서는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수용자들에게 방안에서 마스크를 쓰라는 지침도 따로 없었다. 방 안에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라는 지침이 전국 구치소에 내려간 것은 3차 감염이 본격화된 11월 말이었는데 그 직전 동부교도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예산 문제 등으로 수용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지도 않았으며 수용자가 개인적으로 덴탈마스크나 KF급 마스크를 구입하는 것도 금지됐다. 콧등 부분 철사 때문에 반입금지물품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11월 말부터 동부구치소는 수용자에게 KF급 마스크를 지급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준이었다. 당연히 손 소독제도 제공되지 않았으며 방 안에서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투명 가림막이 제공되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대표적인 코로나19 의심증상인 인후통을 호소하는 수용자들에게 그냥 감기약만 처방하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교도관 업무를 돕는 ‘사동 도우미’를 했었다는 한 최근 출소자는 KBS 인터뷰에서 인후통 호소하는 수용자들이 있어 담당 교도관에게 코로나19 검사를 하거나 격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지만 교도소 측은 인력이 부족해 불가능하다며 감기약만 처방을 했다고 밝혔다.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손팻말을 창밖으로 내밀어 취재진에게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처는 늑장, 징계는 빛의 속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수용자들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수건을 흔들며 ‘구조 신호’를 보내고, ‘살려 주세요’ ‘확진자 한 방에 8명씩 수용’ ‘서신 외부 발송 금지’ 등을 적은 손팻말을 창밖으로 내밀어 취재진에게 보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동부구치소가 처음으로 발 빠른 조치를 선보였다.
창밖으로 손이나 수건, 손팻말 등을 내밀기 위해 구치소 창문의 고정식 방충망을 파손한 행위는 시설물 파손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된다. 이런 까닭에 동부교도소는 12월 31일 현재 시설물 파손 수용자를 찾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초 확진자가 발견된 11월 말에 이런 속도로 코로나19 집단감염 대비에 돌입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