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인생도 우리는 ‘환상 콤비’
▲ 스페인으로 축구 연수를 떠나는 정해성 전 국가대표팀 코치(오른쪽)를 위해 마련된 환송회 자리에서 허정무 인천유나이티드 감독, 정 코치와 취중토크를 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촬영부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애주가이지만 술 마시는 장면이 신문에 대놓고 나오는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순간 정해성 코치가 웃으면서 소주를 빈 맥주잔에 따른 후 얼음을 채운다. “형님, 이렇게 하면 우리가 사이다 마신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허정무 감독이 정 코치를 따라하면서 하는 말이, “이 기자가 이렇게 우리가 ‘뻥’쳤다고 그대로 쓸 거야 분명히”. ‘빙고~^^’
항상 현장에서 말없이 허 감독을 보좌했던 정 코치의 구수한 입담과 술자리에선 한없이 인간적인 이웃집 아저씨로 변모하는 허 감독. 두 사람의 인연을 안주 삼아 얘기를 풀어본다.
#첫 인연
정: 제가 럭키금성에서 뛸 때였어요. 감독님이 네덜란드에서 울산 현대로 복귀 후 럭키금성과 첫 게임을 앞두고 있었죠. 감독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수비수였던 제 실력으로 감독님을 막는다는 건 역부족이었고…, 결국 죽기 살기로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감독님 화장실 갈 때도 쫓아다닐 정도였죠. 제가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태클을 했는데도 골을 넣더라고요.
허: 아주 혼났어요. 제가 마라도나한테 했던 태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전 ‘살인 태클’이었죠(웃음).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 근성과 오기만은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했어요. 정 코치와의 첫 만남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셈이죠.
#해후
▲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정: 뉴스로 감독님이 스웨덴으로 가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감독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흔쾌히 동행을 허락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감독님과 보름 정도를 함께 지냈습니다. 그때 감독님의 축구 열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해서 돌아온 뒤 감독님은 포항으로 가셨고 전 독일 생활을 마치고 유공 스카우트로 들어갔어요. 2년 정도 있었나요? 감독님께서 포항 감독으로 부임 후 저한테 전화를 걸어선 스카우트보다는 현장에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길을 만들어 주셨죠. 그래서 그때부터 포항에서 감독과 코치의 인연을 맺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포항에서 선수들과 첫 훈련을 마친 뒤 코칭스태프 미팅을 하는데 감독님이 저한테 뭐라고 하신 줄 아세요? ‘야, 너 애들한테 인기 끌려고 그래? 훈련량이 왜 이렇게 적어?’라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감독님 스타일을 제대로 알 수 있었죠.
#감독 대 감독
허: 전남을 맡았을 때 정 코치가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선임돼 팀을 이끌었어요. 그때 전남이 제주한테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했죠. 이상하게 우리만 만나면 힘을 내더라고요(웃음).
정: 제가 전남과 게임이 있는 날에는 양복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벤치에 앉았어요. 상대팀 감독님이긴 하지만 감독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했는데 제가 감독이 됐다고 해서 똑같이 양복을 입고 나간다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허: (정 코치를 향해)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감독은 똑같은 감독이지. 그런데 말만 그렇게 하지 ‘추리닝’만 입었을 뿐 경기는 아주 매섭게 몰아붙였으면서 뭘.
정: 제주에는 약해도 포항에는 강하셨잖아요. 당시 포항은 황선홍 홍명보 라데 등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됐었거든요. 그 팀을 상대로 1-0으로 이기시더라고요.
허: 그런데 그 포항전에 온 신경을 쓰느라 그 한 게임 이긴 뒤 그 다음부터는 내리 3게임을 4골씩이나 먹고 졌다는 건 모르지? 하하.
#대표팀
허: 제가 월드컵대표팀을 맡을 당시, 마침 정 코치가 제주를 나와 영국 런던에서 또 다시 연수 중이었어요. 수석코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 코치 만한 적임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런던으로 전화를 걸었죠. ‘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 말도 안 하고 ‘가겠습니다’ 하고는 짐 싸서 귀국하더라고요. 남자의 의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어요.
정: 어떤 축구인은 미리 이렇게 될 줄 알고 제가 제주에서 나왔다고 말하더라고요. 전 사실 제주에서 잘린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계약이 1년 더 남은 상태에서 구단 측에서 그만두라고 했으니까요. 구단에서는 야구는(SK) 감독만 바꿨을 뿐인데 우승팀으로 변신했다, 축구도 그렇게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건데 대표팀 코치하려고 제주를 그만뒀다는 얘기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허: 말 많은 축구계에서 이런 비판도 있었어요. 제가 시드니올림픽 때에 이어 다시 정 코치와 손을 잡자 ‘허정무 인재풀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 맨날 정해성만 데려오느냐’고 뒤에서 야단들이었죠. 수석코치는 제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예요. 가장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 거죠. 저한테는 정 코치가 최상의 선택이었어요. 결국 남아공까지 갔고 원정 16강 진출도 해냈잖아요. 정 코치 없었으면 제가 많이 부대꼈을 거예요. 음지에서 절 위해 많이 희생했습니다.
정: 감독님과 함께 여러 팀에서 생활을 했지만 가장 잊지 못할 일은 남아공월드컵이죠. 월드컵을 경험해 보니까 제가 얼마나 그릇이 작은지, 감독님의 시각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할 수 있었어요.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감독님을 봐왔으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감독님이 물러나신 그 자리(대표팀 사령탑)를 덥석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를 맡기에는 아직 배울 것도 볼 것도 알 것도 많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조광래호를 보는 심정
허: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처음 치른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직접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동수원 톨게이트에서 차가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결국 경기장 앞에서 차를 돌려야 했어요. TV를 통해 경기를 보니까 괜스레 뿌듯해지더라고요. 월드컵 때 뛰었던 선수들의 움직임이 다른 선수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으니까요. 아쉬운 부분이라면 매스컴의 태도예요. 한 게임 치른 조광래 감독과 2년 반 넘게 대표팀을 끌어온 저와 축구 스타일을 비교하면서 누군 이게 낫고 누군 이게 안 좋다는 식의 비교 기사는 참으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정: 개인적으로 전 남아공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전 끝나고 우루과이전이 열리기 전, 약 4일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축구협회에서 감독님께 향후 진로와 관련해서 뭔가를 제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감독님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전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놀라웠고, 대표팀을 이끌며 쌓아온 많은 경험과 지식들이 그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많이 아쉬웠어요. 그 노하우들이 앞으로는 인천 팀으로 옮겨가겠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정: 전 감독님이 K리그로 복귀하신다면 축구인들이 꼽는 상위 세 팀 중에서 한 팀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천으로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걱정되는 게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하셨다는 부분입니다. 재미있는 건 미국에 있는 제 친구가 감독님이 인천 감독으로 가게 됐다는 걸 뉴스에서 보고 전화를 걸어온 거예요. ‘야, 해성아! 허 감독님 인천으로 가신다며? 그럼 너도 인천 코치로 가겠네?’라고요. 인천 선수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허: 선수들이 단단히 긴장하고 있다는데? 지금은 (코치로) 모시고 싶어도 비싸서 못 모시지(웃음). 정 코치도 그렇고 저도 새로운 도전, 유쾌한 도전을 시작한다고 봐요. 정 코치도 유럽 시즌 끝나면 돌아와야 하고, 그때 되면 또 다시 정 코치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 있겠죠.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사이다’ 한 잔 마시자고요. ‘취중토크’를 하면서 ‘토크’만 있고 ‘술’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정해성 코치에게 12월 시즌이 끝나면 귀국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정 코치는 계속 남을 수도 있고, 들어올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자 허 감독이 “어휴, 이 친구는 들어올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한다니까”라며 의미 있는 설명을 곁들인다. 그래서 마지막 건배를 할 때 기자가 이렇게 외쳤다. “내년 시즌에는 K리그에서 두 분 다 뵐 수 있길 바라면서 새로운 도전, 유쾌한 도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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