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시민들 오열…변호인 “일부 인정, 양모 학대 양부는 몰라”
1월 13일 정인이 사건 관련, 양모 장 아무개 씨에 대한 첫 재판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있었다. 법원 앞엔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사형시켜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사진=박현광 기자
1월 13일 남부지방법원에서 ‘정인이 사건’의 양모 장 아무개 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정인이 사건’은 ‘목동 아동학대치사 사건’ 혹은 ‘양천 아동학대 치사 사건’으로 불리던 사건이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정인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동시에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전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공판은 오전 10시 30분 시작이었지만, 오전 10시쯤부터 남부지방법원 입구와 출구엔 피켓을 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빨간 글씨로 ‘사형’이라고 적은 현수막부터 ‘양부모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피켓도 보였다. 남부지방법원 입구 앞 보도블록엔 정인이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도 자리했다. 한 근조화환엔 ‘다음 생엔 아줌마에게 오렴’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분노한 시민들이 남부지방법원을 찾았다.
정인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1월 13일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차도를 바라보고 ‘양부모 살인죄 적용’이라는 손 피켓을 들고 있던 65세 남성은 “어린 애가 너무 불쌍해서 나왔다. 평소에 아이가 차에 치어 죽은 뉴스만 봐도 마음 아프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이를 그렇게 학대한 양부모는 어떤 흉악 범죄보다 나쁘다”고 말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주로 외치는 구호는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것이었다. ‘정인이 사건’을 담당한 검찰은 정인이에게 상해를 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양모 장 씨를 애초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다. 살인할 고의가 없었거나 살인할 정도의 상해를 의도적으로 가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근조화한을 보내 정인이를 추모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남부지방법원을 찾은 22세 여성 김 아무개 씨는 “정인이는 췌장이 끊어질 정도의 폭행을 당했는데, 그게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꼭 중형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법원을 찾았다”고 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정인이의 사인은 복부 손상에 의한 장기 파열이었다. 2020년 10월 13일 정인이가 응급실에서 사망하던 당시 정인이의 담당의에 따르면 정인이의 복부는 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정인이 양모는 구속 상태이고 불구속 상태인 양부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전에 이미 법원에 도착한 후였다. 시민들은 법원에 들어가는 양부모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오전 10시 30분, 예정대로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시민들의 요구대로 ‘살인죄’를 적용하고 기존 ‘아동학대치사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두면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정인이를 비롯해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남부지방법원 앞에 놓였다. 사진=박현광 기자
고개를 푹 숙이고 법정에 들어선 양모 장 아무개 씨는 “죽일 의도는 없었다”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이날 공판은 시작한 지 50분 정도 뒤인 오전 11시 20분쯤 끝났다. 정인이 양부모의 공판은 한 개의 본 법정 외에 두 개의 법정에서 중계를 했다. 방청권은 추첨으로 얻을 수 있었다. 방청권을 얻지 못한 시민들은 본 법정 혹은 중계 법정 문에 귀를 대고 엿듣기도 했다.
구속된 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모 장 씨는 구속된 피의자라 이용하는 통로로 이동해 법무부 후송차량에 탔기 때문에 시민들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부 안 아무개 씨는 법정에서 나온 뒤 법정 출구에서 자신의 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인이 양부 안 아무개 씨는 경찰 50여 명의 호위를 받아 분노한 시민들을 뚫고 겨우 법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양부 안 씨가 취재진을 지나 자신의 차량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양부 안 씨는 공판이 끝난 뒤 20분이 지난 11시 40분쯤 법정에서 나왔다. 당시 3층 법정 앞 복도엔 150여 명의 시민들로 가득했다. 안 씨가 공판이 끝난 뒤 나오지 않자 “사형시켜라” “빨리 나와라” 등 시민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도 빠지지 않았다.
양부 안 씨는 경찰 병력 50여 명의 호위를 받아 겨우 법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민들은 “살인마를 왜 보호해 주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외투의 모자를 푹 눌러 쓴 양부 안 씨는 3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뛰다시피 내려왔고, 취재진을 지나쳐 법원 출구에 주차돼 있던 개인 차량에 탔다. 마치 영화의 구출 작전을 방불케 했다. 양부가 차량에 탑승하자 시민들과 취재진이 차량을 둘러쌌다. 시민들은 눈덩이를 던지거나 손으로 창문을 때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양모 장 씨가 탄 법무부 후송차량은 성난 시민들과 대치 끝에 겨우 법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경찰 병력은 인간 띠를 만들어 후송차량이 나갈 길을 텄다. 사진=박현광 기자
양부 안 씨가 법원 출구 뒷문으로 나간 뒤 곧바로 양모 장 씨를 태운 후송차량이 법원 정문으로 나가길 시도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후송차량인 파란색 버스를 에워싸고 이동을 막았다. 역시나 후송차량을 향해 눈덩이와 욕설이 날아들었다. 경찰 병력은 인간 띠를 만들어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후송차량의 길을 텄다. 10여 분의 대치 끝에 후송차량은 법원을 빠져나갔다.
양부모의 변호를 맡은 정희원 변호사는 “국민적 분노가 있는 사건임을 알고 있다. 저희는 저희대로 진실을 밝히겠다”며 “복부를 수차례 밟은 건 인정한다.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반성문도 여러 번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모의 학대 사실을 양부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멀리 광주광역시에서 온 권 아무개 씨는 “국민적 분노가 원색적인 비난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아동 학대인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