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경제특구 선전 만든 여성들 지칭…넷상 뜨거운 토론 세대 갈등 비화 조짐
중국 선전에 살고 있는 여성을 뜻하는 ‘선전걸’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공방이 펼쳐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한쪽에서는 자립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이라며 옹호한다. 중국 베이징에서 주식 시세판을 지나는 한 여성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AP/연합뉴스
선전걸 공방은 한 블로거가 웨이보에 올린 사연에서부터 시작했다. 선전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북경으로 놀러와 한 술집에 들렀다. 둘은 마침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북경 여성들과 합석을 하게 됐다. 남편, 시댁, 연예인, 사주 등을 주제로 오랫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술자리가 끝난 후 선전의 두 여성은 글을 올린 블로거에게 “당신들은 밖에서 왜 이런 (얼빠진) 얘기들을 하고 있지?”라고 물었다. 이에 블로거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무슨 얘기를 하는데”라고 했다. 그러자 두 여성은 함께 “돈”이라고 답했다. 대화 도중 선전의 한 여성이 시계 알람을 보더니 소리쳤다.
“미국 증시를 볼 시간이로군!”
경제특구 선전은 중국에서 베이징 상하이 등을 제치고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힌다. 2019년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위였다. 2020년 종합 경제경쟁력 지표 결과도 1위였다. 그 중심엔 여성들이 있다. 1980년대부터 선전은 10~20대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주요 공장 생산라인은 여성들 차지였다. 이 당시 선전의 남녀 성비는 1 대 7을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으로 불리는 저우췬페이는 대표적인 ‘선전걸’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마치고 선전으로 왔고, 시계 유리 회사 여공으로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 이후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란쓰커지’를 창업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2015년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 중 자산 1위(700억 위안, 한화 12조)였다.
각종 통계를 살펴봐도 선전이 어떤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다. 2018년 선전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주택을 많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과 2020년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선전에서 팔린 주택 중 53.3%가 여성이 사들인 것이었다. 선전의 집값은 중국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코로나19 기간에도 폭등했다. 선전의 직장인 독신률은 62.4%(전국 2위)에 달한다.
이처럼 선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도드라진 곳인데, 이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앞서의 웨이보 사연이 화제를 모았던 것도 일부에서 ‘지나치게 돈에 얽매여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전걸을 ‘돈만 밝히는 여자’로 규정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선전에서 결혼식이 열렸는데, 신랑신부가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돈벌이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선전 사람들은 쉴 필요가 없는 것 같다’와 같은 글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선전 거리를 걷고 있는데 모든 행인들이 돈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 주식 등이었다”면서 “선전 사람들은 돈 이외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어 보인다”고 썼다.
선전걸을 둘러싼 공방은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선전걸을 향해 반대 견해를 밝히는 세대들은 주로 중장년·노년층이다. 이들은 선전걸이 전통적인 가족상,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애정 등을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저속하다는 말까지 한다. 한 블로거는 “허구한 날 돈타령하는 선전걸은 속물일 뿐”이라고 했다.
중국 선전 전경. 사진=현지 언론인 제공
반면, 선전걸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도 많다. 부정적인 여론보단 훨씬 높은 분위기다. 이들은 선전을 ‘기회의 땅’으로 부른다. 선전걸을 욕하는 사람에 대해선 ‘부러워하기 때문’이라고 응수한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안도감과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삶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다.
선전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돈을 좋아한다고 해서 속물은 아니다. 돈이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전엔 많은 여자들이 가족, 남편에 얽매여 살았다. 시댁의 눈치를 봤다.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니 모든 게 바뀌었다. 돈벌이는 나쁜 뜻이 아니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 언론인도 자신의 웨이보에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의 불편함과 장래의 후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당신이 사소한 일에만 신경 쓰는 보잘 것 없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돈을 열심히 버는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면서 “그게 바로 선전걸”이라고 했다. 한 여학생은 외국 유학 시절 유대인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올리며 선전걸을 응원했다.
“아시아인들은 우리 유대인들이 돈을 사랑한다며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한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버지 말씀을 들은 후부터다. 유대인들은 돈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박해를 받았을 때 돈이 없던 설움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가족, 그리고 친구를 지키기 위해선 돈을 모아야 한다.”
사실, 선전의 ‘돈 사랑’은 유래가 깊다. 1980년대 선전은 ‘시간은 돈’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젊은층, 특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여성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당시만 해도 돈 얘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선전에선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최소한 선전에서만큼은 여성들의 돈벌이에 대해 이견이 없어 보인다. 처음엔 공장 생산라인, 아르바이트 등을 했던 여성들은 이제 주식,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 창업하는 여성들도 크게 늘었다. 각종 자격증과 어학을 배우는 학원은 여성들로 넘쳐난다. ‘선전걸’은 꿈속의 연인이자 새로운 기회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