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갈등으로 시작…보복감사 논란 이어 지자체장끼리 맞고발전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법정 공방 등 첨예한 대립을 펼치고 있다. 2018년 12월 손을 맞잡았던 이재명 지사와 조광한 시장.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지사와 조광한 시장 간 다툼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 때였다. 정부는 전 시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보편복지와 소득별로 지원금에 차등을 두는 선별 복지 사이 기로에 서 있었다. 4월 3일 정부는 합동 브리핑을 통해 하위 소득 70% 국민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안을 발표했다.
이재명 지사는 정부 결정과 상반되는 ‘재난 기본소득’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지사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재난 기본소득 정책에 동참하면 1인당 1만 원 상당 도 특별조정교부금(특조금)을 지원하겠다”며 경기도 산하 지자체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를 독려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 자체적으로 주민 전체에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독자 노선을 갔다. 경기도 내 지자체 대다수는 이 지사가 제시한 경기도 기준을 따라갔다.
하지만 남양주시는 4월 8일 “소득 하위 70%에게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모든 시·군이 경기도가 하는 것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며 남양주시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경기도와 남양주시 간 갈등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4월 22일 정부는 더불어민주당과 합의해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보편복지 방향으로 선회했다. 정부 방침이 바뀐 지 6일 만인 4월 28일 남양주시 역시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경기도의 보편복지 방안으로 돌렸다. 이로써 1차 갈등은 일단락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해 7월 양측의 앙금은 다시 불거졌다. 경기도는 조광한 시장이 남양주도시공사 감사실장(3급) 채용공고가 나기 전 채용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를 착수했고,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또 경기도는 남양주시 비서실의 한 팀장이 공금 25만 원을 유용했다면서 해당 팀장을 중징계하라고 통보했다.
지난해 경기도는 남양주시에 대한 감사를 11건 진행했다. 2019년 남양주시 감사가 4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지난해 11월 23일 경기도의 행정 보복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경기도는 남양주시와 수원시를 제외한 경기도내 29개 시·군에 특조금 1152억 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남양주시와 수원시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것은 재난지원금을 지역 화폐가 아닌 현금으로 지급했다는 이유였다.
조 시장은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남양주시에 대한 특조금 미지급, 보복성 감사 등을 대상으로 했다. 남양주시 결정에 존중 의사를 밝히며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했던 이 지사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 지사는 11월 2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남양주시를 저격했다. 이 지사는 “불법행정과 부정부패 청산엔 여야, 네편·내편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지사는 “남양주시는 정당한 감사결과에 의한 적법한 조치를 두고 정치탄압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했다”면서 “이번에는 아예 감사 자체가 정치탄압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지사는 “(남양주)시장실 근무 내부자 제보 녹취에 따르면 남양주 시정 난맥상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대규모 이권사업에 관한 심사자료 조작 등과 관련한 언론보도, 예산 관련 비리에 대한 공익제보나 감사 청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둘의 싸움은 결국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12월 28일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감사관 등 5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및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조 시장은 이 지사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조 시장은 “공무원에 대한 댓글 사찰과 심각한 인권침해 근절엔 여야, 네편·내편이 있을 수 없다”면서 “경기도가 감사의 위법 및 부당함을 인정했다면 이렇게 사법기관 심판까지는 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조 시장은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거나 불법행정을 한다면 상응한 책임을 묻는 것이 공정한 세상”이라면서 “민주주의는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관행적으로 잘못된 일들이 조속히 바로잡혀,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 시장이 이 지사를 고발한 지 이틀 뒤엔 경기도가 조 시장을 맞고발했다. 지난 12월 30일 경기도는 조 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같은 당 소속 지자체장 사이에 맞고발전이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1월 23일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는 조광한 남양주시장.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측은 남양주시가 11차례 감사를 받은 것에 대해선 “감사 11건 중 6건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수십 곳의 시·군을 동시 조사한 것”이라면서 “남양주시만을 대상으로 한 감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중앙 정치권에서 이 사안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현재 차기 주자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 이 지사는 23%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3%,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로 그 뒤를 이었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차기 유력 주자가 특정 자치단체장과 일 년 가까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 자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조 시장이 당내에서 ‘친문 계열’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은 묘한 해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 시장은 1958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거쳤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친 안철수계로 분류돼 서울 동대문갑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낙선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남양주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로 당내 친문 인사로 통했다.
이 지사를 바라보는 친문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지사가 지지율 1위로 치고 나가자 친문계에선 ‘이재명 대항마’를 찾기 위한 ‘3후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조 시장이 이 지사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두 단체장 간 싸움이 친문-비문 간 대리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도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경기도-남양주 갈등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 반목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봤다. 채 연구위원은 “이재명 지사의 결단은 빠르고 명확하지만, 그 이면엔 독선적이란 약점이 있다”면서 “남양주시 측에선 민주적 절차로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 없이 ‘정치 사법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이 지사의 과감한 행보를 ‘사이다’로 보느냐 ‘독선’으로 보느냐 차이”라면서 “이 지사를 지지하지 않는 쪽에선 이런 갈등을 이 지사를 비판하는 좋은 사례로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미시적인 사건과 시기적 배경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 사건이 친문-비문 갈등을 가속화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