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민단체 상당수는 이념 대립의 선봉으로 나서는 일부 단체의 기행으로 말미암아 권력화가 진행됐다는 지탄을 받은 지 오래다. 특히 시민운동을 개인의 입신양명 도구로 삼은 예도 적지 않아 시민단체에 가해지는 비판과 문제 제기는 더욱 다양해졌다.
사진 왼쪽부터 박팔용, 박보생 전 김천시장
# 막후정치(幕後政治) 의혹 논란…박팔용·박보생 전 시장의 ‘이름의 무게’
김천시민연대(공동대표 이순식, 강성건)는 박팔용(민선 1~3기), 박보생(민선 4~6기) 전 김천시장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가 상당한 단체다. 이 단체 회원의 ‘단체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다’는 말은 이의를 달기 어려울 정도다. 25년 동안 김천시장을 역임한 박팔용·박보생 두 전 시장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적어도 김천에서는 전직 대통령이나 거물급 국회의원이 김천의 모 정당 지역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동급이라고 볼 수 있다.
김천 조마면 출신인 박팔용 전 시장은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이 통합되는 해 무소속으로 민선1기 시장에 당선된 후 연달아 3선을 거치며 전국자치단체평가 최우수, 경영대상 등 130여 회 다양한 분야에서 기관수상과 시장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한국지방자치최고경영자상과 21세기 한국인상 등 10여 회 개인수상을 받은 인물이다. 특히 2008년 제18대 총선 김천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박 전 시장은 상대 후보였던 이철우 당선인(현 경북도지사)에게 찾아가 당선을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안겨준 일화로 정치인의 도리를 아는 사나이라고도 불렸다. 또 재임기간 중 KTX김천역사·경북혁신도치를 유치하고 인구 13만명의 도시에서 2006년 전국체전까지 치렀으며 전국 행정평가에서는 130여 차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경쟁력 최하위에 있던 김천시를 현재는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어 전국자치단체 중 가장 성공한 자치단체로 평가받고 있을 만큼 지지자들에게 박팔용이라는 이름은 큰 가치를 지닌다.
역시 조마면 출신인 박보생 전 시장은 김천농림고, 경북대 행정대학원을 나와 김천시에서 총무과장, 사회산업국장, 행정지원국장, 경부고속철도 김천역 유치 행정지원단장, 예술단 부단장, 인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박팔용 전 시장이 김천시의 초석을 다졌다면 박보생 전 시장은 김천시의 폭을 넓히고 내부를 다졌다. 김천일반산업단지 조성, 경북드림밸리, 김천혁신도시, KTX역사 완성, 김천인재양성재단 설립, 스포츠 산업과 신설로 스포츠 산업 발전, 하수관 정비 등 그가 이룬 업적도 상당하다. 도농복합도시인 김천시를 지방자치단체 생산성대상에서 우수상을 거머쥐었으며 과일산업에 앞장서 샤인머스캣 등 고소득 작물 개발 등으로 시민 소득 증대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재임 초 3000억이던 예산을 1조원으로 증가시키는 등 김천시의 덩치를 크게 키웠다는 평을 받았다. 지금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이웃들과 소통하며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 집단권력화 드러내며 활동하는 시민단체…당사자는 알지도 못해
한편 강성건 김천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김천시민연대는 2019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회원 수는 ‘참여자치 김천 시민방’이라는 이름의 공개밴드의 1600여 명”이라며 “이는 밴드의 회원 1600여 명과 일치하고, 실제 13명의 운영진과 소수인원 외에는 모두 시민이며 회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박팔용·박보생 두 전 시장이 리더로 참여하고 있는 김천시민연대 밴드. 문제가 제기된 후 지금은 가입 명단에서 두 전 시장의 이름은 사라졌다 (사진=시민연대 공식밴드 캡처)
그러나 두 전직시장이 리더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김천시민연대의 활동은 권력의 오·남용에 대한 감시·견제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화해 시민단체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됐다. 시민단체의 순수성·도덕성·공익성·자발성이 훼손돼 허울뿐인 정치단체와 같아졌다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어진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박보생 전 시장이 이순식 대표나 김천시민연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리더로 돼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이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박 전 시장은 “김천시민연대가 발간한 인터넷 언론인 김천시민일보에서 올린 ‘시무(時務)7조 상소문’을 누가 보여줘서 한 토막 정도는 봤다”며 “리더로 참여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입장 표명을 질문에 황당해서 다음날 관계자에게 지우라고 이야기했다. 시장까지 한 본인이 할 일 없다고 (그런 곳에 연루되겠나)”라며 시민연대에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천시민일보가 지난달 24일, 22일, 29일 총 3회의 시무상소 중 2화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26일 박 전 시장과 근황 인터뷰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박팔용 전 시장 역시 인터뷰에서 “김천시민연대에게 듣기는 했으나 리더로 돼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며 “이순식 대표는 안면만 있지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다”고 단언했다.
박팔용 전 시장이 시킨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리더가 돼 있으면 안 되고 참여해서도 안 된다. 시민단체는 분명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건 분명하게 문제다”라며 “확실하게 얘기를 하겠다”고 격앙된 말투로 답했다.
#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그리고 그 목적은?
만약 두 시장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이는 재기를 노리는 3선을 역임한 두 전직 시장의 단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천시민연대는 여론을 조작한 심각한 범죄행위로 시민을 기망한 것이 된다. 인터뷰도 하지 않고서 마치 한 것처럼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조작된 보도를 한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않은 전 시장의 내용을 쓴 것이라면 언론사가 맞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다.
게다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쟁한 박팔용 전 시장, 송언석 국회의원과 선거 막바지까지 물밑에서 치열하게 다툰 박보생 전 시장의 대립구도를 의식해 전직 시장을 날조하고 호가호위를 한 것이라면 시민연대 운영진 전원은 고개 들고 김천시민을 볼 수 없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것이 된다. 두 시장의 밴드 가입 일자인 3월1일은 이순식 공동대표의 가입일과 같은 날로,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대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아포읍이 포함된 가 선거구에 출마했다.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무소속 출마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철우 당시 국회의원을 고발한 적도 있다.
해당 문제뿐만 아니라 김천시민연대는 여타 시민운동으로 활동하는 곳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형태의 시민활동을 한다며 불만을 가진 일부 회원들조차 두 전직 시장들의 복심이며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단체로 침묵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시장 개인의 견제만이 목적인 양 국회의원·정당·해당 사안의 지역구 시의원조차 언급 없이 현 시장과 집행부만 집중 성토하면서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논하며 존립해온 이유 중 하나도 그 이름의 힘 덕이라는 여론도 적지 않다.
아포 폐기물 업체 설립 반대 입장 표명에 대해서도 현 시장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며 몰아세웠지만, 지난 2018년 국민의힘 공천을 받고 도의원 후보로 나섰던 해당 업체 대표와 지역구 시의원 등에 대해 언급한 일은 찾기 힘들다. 상무축구단 유치 반대 입장 표명도 마찬가지다. 취재 중 만난 지역 시민 활동가는 “김천시민연대는 현 시장의 집행부만 성토하는 총선 준비단체”라고 평했다.
# 누구를 위한 시무상소인가
김천시민연대의 공동대표가 김천시민일보를 창간하며 3회에 걸쳐 보도한 시무(時務) 7조 상소문은 의혹에 더욱 무게를 싣게 한다. 이 글은 공동리더인 두 전 시장을 칭송하며 현 시장과 집행부를 겨냥했다.
해당 글에서 김천시민연대는 ’박팔용 전 시장을 닮아야 하고 박보생 전 시장의 전철을 밟아야 한다‘며 쇼맨십에 능한 연기자와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해야 하는 정치인이 돼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끼 참형(斬刑)과 거열형을 작심하고 올린 상소를 올린 15세 기생 초월을 불러내면서까지 이치에 맞지 않는 형태로 행정기관을 질타하며 ’영감 나리, 공무원 출신이라‘로 시작해 공무원들은 꼬박꼬박 봉급 받으면서 세금만 축내는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고 있는 이 글의 작성자 A씨는 김천시민연대의 고문을 맡고 있는 전직 고위공무원 출신 이모 씨로 추정된다고 관계자들은 조심스레 밝혔다.
시민단체 공식밴드라는 이곳에서는 김천시민연대 운영진 소수와 다른 의견과 대립하는 회원들의 강제탈퇴가 비일비재하다. 마치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하나회처럼 구성원을 비밀로 하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며 폐쇄적인 집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그려진다. 게다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밴드에 가입하려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전직 시장의 명의를 도용해 리더로 가입시킨 것이라면 개인정보법과 주민등록법 위반, 사문서위조죄에 해당하는 심각한 범죄이고, 사칭했을 경우도 존립하기 힘든 비난에 처할 것이 자명하다.
이 사안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인가단체인 공직공익비리시민운동연합은 “시민단체 본연의 자세를 잃은 막후정치로 보인다”며 중앙본부 회의를 거쳐 “김천시민과 김천시를 생각한다면 박팔용·박보생 전 시장을 검찰에 고발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수 있는 명의도용문제를 흐지부지한다면 연석회의를 거쳐 법리적 검토와 도덕적 판단에 따라 두 전직 시장과 김천시민연대를 단체 명의로 고발 조치하고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부건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