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장’ 짓는다던 ‘공갈포’에 뒤통수
▲ 피해자들이 윤 아무개 씨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 배경은 예능프로 ‘천하무적야구단’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련없음. |
“매형에게 빌려줬다” 변명
지난해 11월 말, 다음(Daum) 카페에 사회인 야구팀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일산·하남 지역에 야간경기도 가능한 야구장을 마련했으니 더 좋은 시설에서 야구하고픈 팀들은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윤 씨가 낸 공고를 보고 총 260개 팀이 모여 일산·하남리그가 결성됐다. 팀원들은 280만 원의 가입비를 완납한 채 야구장 조성이 완료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기까지 운영자 윤 씨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적어도 2월까지 야구장 조성을 완료해 3월부터 리그를 개막하겠다던 그였다.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는 윤 씨의 행각에 야구팀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차곡차곡 모아 가입비를 내고 야구 장비를 마련해 야구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들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운영진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기다려 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4월 말, 일산 리그는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첫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토지 소유주, 건설사, 심판들이 운영진으로부터 약속한 돈을 받지 못했다며 항의를 했고, 결국 리그는 중단되고 말았다. 일산 리그 심판원 8명은 지금까지도 648만 원의 심판비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일산 리그 운영진 A 씨는 “야구장 조성을 하긴 한 건지 흙먼지 날리는 공터에 불과했다. 그마저 사용도 못하다니. 대체 5억 원에 달하는 가입비는 어디로 증발한 거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참다못한 야구팀들은 윤 씨를 찾아갔다. 윤 씨는 ‘매형에게 1억 5000만 원을 빌려줬는데 돌려받질 못했다’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매형 고 아무개 씨에게 시가 24억 원짜리 땅이 있고, 그 땅만 팔리면 공사대금과 운영비용을 마련할 수 있단 거였다. 하남 리그 운영진 B 씨는 의문을 제기했다. “고 씨 역시 그 돈이 공금임을 알고 있었다. 윤 씨가 건축 설계 일을 하는 매형과 야구장 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공금을 유용하겠단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팀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윤 씨는 ‘매형 땅이 곧 팔릴 것 같다’며 6월부턴 리그 재개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 하남리그 야구팀들은 수소문 끝에 윤 씨가 말하던 고 씨의 지번을 알아내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다. 건물엔 2006,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채권최고액 2억 3000만 원, 12억 3000만 원으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토지 역시 2009년 4월엔 토지 전부에 지상권이, 7월엔 1억 800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은행에서 채무를 갚지 않는 고 씨가 마음대로 건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지상권을 설정한 것이다. 하남리그 C 씨는 “등기부등본을 보면 고 씨가 실제 지불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이 간다. 윤 씨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또한 가입비로 낸 5억 원에서 고 씨에게 빌려준 1억 5000만 원과 공사비용을 제외해도 약 8000만 원의 금액이 남는다. 8000만 원에 대한 윤 씨의 변명을 듣고 싶다”며 윤 씨의 연이은 거짓말을 질타했다. 사회인 리그 운영진들은 운영비 내역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운영비 내역을 공개하라 요구하면 리그에서 제명당하는 분위기다. 불투명한 게 싫다면 나가란 거다. 운영진은 철저하게 갑의 위치에서 운영비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운영비 내역은 공개 안해
억울한 이는 또 있었다. 지난해부터 윤 씨와 리그 운영을 준비해 온 이 아무개 씨. 윤 씨와 함께 일산·하남 리그 운영진에 이름을 올렸다는 죄로 그는 사회인 야구팀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사실 이 씨가 윤 씨를 믿고 함께 일을 시작했던 건 다른 사연이 있었다. 윤 씨가 그의 누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던 것. 때문에 윤 씨를 철저히 믿고 있던 이 씨의 가족들은 총 1억여 원의 사업자금을 마련해줬고, 현재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물론 연락도 끊어진 상태다. 이 씨는 윤 씨 이야기가 나오자 울상을 지었다. “사람을 너무 믿은 내 잘못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공주에 자기 소유 땅 만 평이 있다면서 사업자금이 충분하다고 말해왔다. 리그 운영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더라. 내 통장 명의로 가입비를 받았고, 윤 씨가 그 돈을 맘대로 사용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윤 씨는 이 씨에게 리그 운영진으로 일하는 대신 연봉 40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간 이 씨가 받은 돈은 고작 100만 원에 불과하다.
급기야 일산·하남리그 팀원들은 피해자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윤 씨를 비롯한 운영진 2명을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수서경찰서는 윤 씨를 기소의견으로, 그 외 운영진 2명은 불기소(혐의 없음)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결국 1년 가까이 배트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가입비만 잃은 일산·하남리그 야구인들의 가슴엔 멍 자국만 남았다.
윤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장 관계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단 외상으로 공사를 재개했다. 일산 구장 공사는 마무리 단계고, 하남 쪽 구장도 곧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가입비를 당장 돌려줄 순 없지만, 야구장 조성을 완료해 내년부터라도 정상적으로 리그를 치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