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비리 시장이 경찰·조폭 장악 ‘악용’…중대사건 국가경찰이 맡는 자치경찰제가 되레 답일 수도
‘경이로운 소문’의 중진시 경찰은 정상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덮기에 급급했다. 매스컴의 관심이 집중된 연쇄살인 사건이 불거졌지만 시체를 조작해 용의자가 자살한 것으로 처리하고 경찰이 동료 경찰을 죽인 사건 역시 자살로 조작한다. 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홈페이지
#“검찰이 보강수사 지시했을 것”
드라마는 7년 전에 벌어진 두 개의 사건에서 시작된다. 중진시 시장 신명휘(최광일 분), 태신그룹 회장 조태신(이도엽 분)과 상무 노항규(김승훈 분), 다정이엔씨 대표 노창규(전진오 분), 그리고 살인청부업자 지청신(이홍내 분) 등이 김영님 살인사건과 불법 쓰레기 매립지 수사를 담당하던 형사 두 명을 살해한다. 당시 살해당한 두 형사는 소문(조병규 분)의 부친 소권 형사(전석호 분)와 코마 상태에 빠져 카운터가 되는 가모탁 형사(유준상 분)다.
기억을 잃고 카운터로 지내던 가모탁은 소문을 만난 뒤 자신의 사건에 관심을 갖게 돼 당시 수사기록을 찾아보게 되고 담당 형사 김정영(최윤영 분)을 만나는데 자신의 사건과 소권 형사 사건에서 모두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가모탁의 경우 칼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많았지만 투신자살로 사건이 종결됐다. 신명휘 시장과 조태신 회장에게 매수된 중진시 경찰서장 최수룡(손강국 분)과 그 휘하의 비리경찰들이 사건을 축소 은폐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7년이나 지났음에도 가모탁은 손쉽게 김영님의 집에서 가해자의 피로 보이는 혈액을 확보했지만 당시 경찰은 정상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덮기에 급급했다. 게다가 지청신이 연쇄살인범으로 매스컴의 관심을 집중시켰음에도 시체를 조작해 자살로 처리하고 경찰이 동료 경찰을 죽인 사건 역시 자살로 조작한다.
‘경이로운 소문’을 즐겨 봤다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실제 상황이었다면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에서 추가 수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7년 뒤 가모탁이 그렇게 쉽게 수사의 허점을 발견할 만큼 당시 수사 자료가 부실했다면 검찰이 보강수사를 지시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에는 사건 종결을 검찰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올해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돼 이제 ‘불기소 의견 사건송치’는 사라졌다. ‘불기소 의견’이면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고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시점이라면 충분히 중진시 경찰서장 의지대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물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기까지 오랜 기간 그 필요성이 강조됐고 검찰의 기소독점이 갖는 폐해도 거듭 거론돼 왔다. 비록 드라마일 뿐이지만 경찰의 수사종결권 역시 잘못 활용되면 검찰 기소독점만큼 폐해가 많아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렇다고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지적하려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한 드라마 업계 관계자는 “드라마에 검찰까지 등장하면 얘기가 너무 복잡해지고 검사 역할의 배우까지 더 캐스팅해야 한다”라며 “악귀와 카운터의 대결이라는 드라마의 애초 의도를 살리기 위해 검찰을 생략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경이로운 소문’의 중진시에서 다양한 비리와 범죄가 이뤄진 결정적인 배경은 신명휘 시장의 지역 경찰과 조폭 장악이다. 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홈페이지
#자치경찰제가 답이 될까
중진시에서 그런 다양한 비리와 범죄가 이뤄진 결정적인 배경은 신명휘 시장의 지역 경찰과 조폭 장악이다. 이런 까닭에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하는 자치경찰제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중진시의 경우 경찰청장의 지휘를 받는 경찰서장도 시장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는데 자치경찰은 아예 시장 지휘를 받는 편제다.
반면 ‘경이로운 소문’의 중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오히려 자체경찰제라고 볼 수도 있다. 자치경찰제는 자치경찰이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경비 등 지역밀착형 사무와 민생치안 밀접 수사만 담당하게 되고 광역범죄와 국익범죄, 일반형사 등의 사건 수사는 국가경찰이 맡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중진시장이 자치경찰을 쥐락펴락할지라도 연쇄살인 사건까지 터지는 상황에선 국가경찰이 수사를 담당하게 돼 사건을 자살 등으로 축소 은폐하기 어려워진다. 할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면 뉴욕시장이 자치경찰인 NYPD(뉴욕경찰)를 장악했는데 FBI(연방수사국)가 출동해 곤란해지는 상황이다.
‘경이로운 소문’에선 학교폭력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신명휘 시장의 아들 신혁우(정원창 분)라 학교는 물론이고 경찰까지 무조건 쉬쉬하려 든다. 학교가 가해자 보호에 급급하다 보니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홈페이지
#학폭 가해자가 영식이라면?
‘경이로운 소문’에선 학교폭력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가해 학생이 신명휘 시장의 아들 신혁우(정원창 분)라 학교는 물론이고 경찰까지 무조건 쉬쉬하려 든다. 학교가 가해자 보호에 급급하다 보니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신명휘 시장이 유력 대선후보가 되자 신혁우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영식’(대통령 아들)이 될 거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중고등학생인 영식이나 영애를 둔 비교적 젊은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영식이나 영애가 학폭 가해자라면 ‘시장 아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보호를 받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야당 정치인과 언론사에서 그런 상황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현실에선 여러 차례 영식과 영애를 둘러싼 논란이 야당과 언론을 통해 불거진 바 있다. 요즘엔 정권마다 반복될 정도다. 실제로 잘못이 있건 없건 논란은 계속됐다. 그런데 영식이 학폭 가해자라면 정말 난리가 날 것이다. ‘시장 아들’보다는 ‘영식’이 더 큰 권력자의 가족이긴 하지만 그만큼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도 많아지는 셈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