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 확실히 따돌릴 ‘돈보따리’ 마련중?
▲ 정몽구 회장 |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오랫동안 준비해왔지만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현대차그룹이 자금 동원 능력에서 우월한 데다 현대그룹이 지난 4월 재무구조 개선약정(재무 약정) 대상으로 선정된 이후 채권은행과 갈등을 빚어온 점 또한 커보였다.
그런데 법원이 재무약정을 둘러싼 현대그룹-채권단 갈등과 관련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 회장 측이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최성준)가 지난 9월 17일 현대상선 등 현대 계열사 10곳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 등 채권단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에 대한 신규여신 중단 및 만기여신 회수 등 채권단의 공동제재 효력이 중단된 상태다.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한 현대그룹은 최근 TV 광고를 통해 고 정주영 명예회장(왕회장)의 정통성 계승 홍보에 적극 나선 상태다. 왕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부자의 흑백사진을 보여주면서 왕회장의 혼이 깃든 현대건설이 현대그룹 품에 되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력한 현대건설 인수 후보로 평가받는 현대차그룹은 물밑에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법률 자문사로 김앤장법률사무소를, 재무 자문사로 도이치증권과 맥쿼리증권을 각각 선정해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그룹 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별도조직도 꾸려져 운영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와 더불어 현대건설 인수를 염두에 둔 계열사 상장 추진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인수 가격이 3조 5000억~4조 원으로 예상되는 현대건설 인수전의 승패가 결국 돈 보따리 대결에서 갈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대그룹을 확실하게 누르기 위한 자금 조달의 일환으로 우량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설이 거론되는 것이다.
재계와 금융권에선 지난 수년간 상장 관측을 낳아온 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엠코 등의 상장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부품 계열사 중 현대모비스 다음으로 규모가 큰 현대위아는 올 하반기 상장 예상 종목 중 최대어로 불려왔다. 현대위아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올 하반기 상장 가능성을 밝혀왔다. 현대위아는 지난 2007년부터 줄곧 연 매출액 3조 원 이상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영업이익 1226억 원을 올리는 등 이미 상장 여건을 갖췄다는 평을 받아왔다. 지난 2007년 상장이 추진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주식시장 위축 여파로 지금껏 상장이 미뤄지기도 했다.
현대위아의 최대주주는 지분 39.46%를 지닌 현대차다. 기아차도 현대위아 지분 39.33%를 갖고 있다. 상장될 경우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을 제외하고 매각하면 현대차나 기아차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그룹 안팎에선 “상장 준비가 거의 끝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현대건설 M&A(인수·합병) 진행상황에 따라 상장 일정과 방식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 정의선 부회장 |
현대건설 인수 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설 계열사 현대엠코의 상장 가능성 또한 주목을 받는다. 현대엠코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조 원 이상 매출을 달성하면서 상장 관측을 낳아왔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가 각각 지분 19.99%씩을 갖고 있어 상장될 경우 거액의 투자자금 유치가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엠코의 상장은 M&A 자금 조달 차원을 넘어 현대차그룹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부회장(지분율 25.06%)이다.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물류 계열사 글로비스 또한 현대엠코 지분 24.96%를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이 현대엠코 상장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엠코 상장 대박을 통해 정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 지분 확보용 실탄을 마련해 경영권 승계 절차에 가속을 밟을 수도 있다. 현대건설 인수와 정 부회장으로의 안정적 승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할 정 회장에게 현대엠코 상장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