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지자체 유지·운영 이원화, 조작법 알고 있던 하천보수원 작동 권한 없어…노조 “침수 피해는 인재”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의 한 축사. 300마리가 넘던 소가 열 마리도 남지 않았다. 외이리에 있던 다른 축사는 침수 피해 이후 아예 철거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가 물에 잠긴 이유는 황당했다. 당시 폭우로 섬진강 댐 수위가 오르자 수자원공사는 8월 7일 초당 328t(톤), 8월 8일 1396t을 방류했다. 평소 10배가 넘는 방류량이었다. 섬진강 본류는 부지불식간에 물이 불었다. 이때 외이리 마을에서 섬진강으로 흐르는 지류와 섬진강 본류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수문이 작동하지 않았다. 수문을 작동시켜야 하는 순창군 담당 공무원이 수문을 닫기 위해 현장으로 급파됐지만 해당 공무원은 수문 조작법을 몰랐다. 그렇게 섬진강 본류의 물은 지류로 흘러들어와 마을을 집어삼켰다. 한때 소 300마리가 넘던 축사는 텅 비었다. 수문을 제때 작동했다면 침수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
순창군 안전재난과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이 수문 작동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라 열쇠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수문 조작실을 열지 못했다. 작동 방법은 알고 있었다”며 “수문을 닫았더라도 당시 기록적인 폭우였기 때문에 마을이 어차피 침수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섬진강 물이 불어났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외이제 수문. 섬진강과 마을을 잇는 주요 수문으로 일대에서 가장 크다. 전기식이 아닌 유압식을 작동한다. 유압식 작동은 작동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에 평소 작동 방법을 익혀두지 않으면 유사시 작동하기 어렵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조작실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순창군 안전재난과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이 조작법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담당 공무원이 조작법을 몰랐다는 정황이 나왔다. 당시 현장에선 수문 조작실 열쇠를 가지고 가지 않았던 담당 공무원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간 흔적이 있었지만 수문은 끝내 닫히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은 물난리 이후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하천보수원에게 수문 조작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수문 조작법을 알고 있었던 건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소속 공무직 하천보수원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하천보수원은 왜 수문을 조작하지 않았던 걸까.
#국토부, 하천보수원 축소·업무 배제 주장
하천보수원은 수문 조작법을 알고 있었지만 작동 권한이 없었다. 물이 불었던 섬진강을 포함해 5대 국가하천은 국토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는 ‘이원화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다. 하천시설물 유지·보수 책임은 국토부가 지고, 하천시설물 조작·운영 책임은 각 지자체가 진다. 수문 또한 마찬가지다. 유지·보수는 국토부가, 조작·운영 지자체가 한다.
국가하천의 길이는 1199km다. 섬진강만 해도 173km. 강의 양쪽에 하천시설물이 있으니 관리해야 하는 길이는 그 두 배다. 현실적으로 각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수문 조작법을 알기는커녕 평소엔 현장을 살펴볼 여력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에 130명이 있어 매일 담당 10km 구간(왕복 20km)을 오가며 관리하는 하천보수원이 관행적으로 수문 유지·보수는 물론 조작·운영까지 해왔다.
외이제 수문 내부. 수문을 작동하는 기계는 크게 전기식과 유압식으로 나뉜다. 전기식은 처음 보는 사람도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유압식은 다르다. 유압식 기계 작동법은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사진=박현광 기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국토교통부지부 소속 하천보수원 노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8년부터 국토부가 하천보수원이 수문 조작을 못 하게 했다. 정확히 말하면 업무 지시를 하지 않으면서 배제했다. 하천보수원이 직무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내려진 조치였다.
하천보수원 노조는 국토부가 하천보수원의 직무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하천보수원의 업무를 축소·배제했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수문 조작 운영 업무 또한 누락됐다. 실제 폭우가 온 당일 하천보수원에게 관련 업무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다. 침수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한 인재였던 셈이다.
#하천보수원의 전문성을 둘러싼 갈등
하천보수원은 2012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국가하천을 정비하면서 만들어진 국토부 소속 국가공무직이다. 정원 130명의 하천보수원은 1199km 국가하천 따라 제방을 새로 만들 때 이를 측량하거나 지형을 조사하는 등의 일을 했다. 하천보수원은 제방, 체육시설 등 하천시설물이 완성된 뒤 하천시설물 안전점검·유지·보수 업무를 하며 9년째 국토부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하천보수원 한 사람은 평균 10km 구간(왕복 20km 구간)을 맡아 제방 등 하천시설물의 안전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직속 소속 기관인 국토관리사무소에 전달한다. 제방이 터지면 마을이 침수되기 때문에 홍수에 대비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전북 남원시 부근의 섬진강 전경. 강 따라 옆으로 길게 늘어선 길이 제방이다. 제방 너머로 마을이 있기 때문에 제방이 터지면 바로 침수 피해로 이어진다. 하천보수원은 평소 제방 등 하천시설물을 안전점검 하는 일을 한다. 제방은 강 양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제방의 길이는 강 길이의 두 배다. 사진=박현광 기자
하천보수원은 전체 인원의 80% 정도가 토목 분야 초급기술자 이상의 자격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베테랑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하천보수원을 국가공무직으로 채용하면서 직종직렬 편제를 하지 않았다. 하천보수원은 9년째 일하고 있지만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경력증명서 한 장 뗄 수 없다. 서류상으론 전문성 없는 잡부인 셈이다. 이에 반발한 하천보수원이 직무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해달라고 항의하자 국토부가 하천보수원들에게 전문성을 띠는 주요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상황이 막을 수 있는 홍수 피해를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하천보수원 노조의 주장이다.
국토부 측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하천보수원의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 하천계획과 관계자는 “하천보수원이 제방 건설과 유지·점검 업무에 참여했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하천보수원의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다. 제방 등 하천시설물을 눈으로 보고 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하천보수원 노조는 이에 하천보수원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31조에 따르면 국가하천 토목시설물의 점검 또는 관리는 성능평가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 자(기술자)만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술자는 ‘건설기술진흥법’에서 말하는 ‘건설기술인’이다. 건설기술인은 토목 분야 등 10개의 직무로 나뉘는데, 관련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관련 학과를 나오거나, 특정 기관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한 사람이어야 자격을 갖는다. 국토부의 설명대로라면 국토부는 9년째 자격 없는 하천보수원에게 국가하천의 안전 점검을 맡긴 셈이다.
하천보수원들이 평소 쓰는 안전점검 체크 용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31조에 따르면 국가하천 토목시설물의 점검 또는 관리는 성능평가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 자(기술자)만 할 수 있다. 국토부는 하천보수원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법 위반 소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국토부 하천계획과 관계자는 “하천보수원은 건설기술인 자격에 미달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관계자는 하천보수원은 하천 보수·안전 점검 업무를 하지만 기초 자료를 모으는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적으론 하천 보수·안전 점검 업무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하천 보수·안전 점검 등과 관련해선 토목 분야 초급기술자 이상이어야 한다.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았거나 관련 국가자격증이 없는 등 자격 미달인 하천보수원을 토목 분야 건설기술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건설기술인 자격을 갖추지 않은 하천보수원은 기초 자료를 모으는 역할에 불과하다. 최종 판단을 하고 책임지는 건 국토부 내 토목 분야 건설기술인 자격을 가진 기술자 공무원이 한다. 결국 기술자 공무원이 하천 보수·안전 점검 등의 업무를 한다고 봐야 한다”고 보탰다.
국토부 설명과 달리 하천보수원 전체의 80% 정도가 이미 토목 분야 초급기술자 이상의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국토부가 건설기술인 자격 인증을 위탁한 한국기술인협회가 하천보수원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31조에 따르면 ‘국·공립 시험기관 또는 품질검사를 대행하는 건설기술용역사업자에 소속돼 품질시험 또는 검사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건설기술인 자격을 갖는다.
이때 ‘국·공립 시험기관 또는 품질검사를 대행하는 건설기술용역사업자’엔 지방국토관리청도 포함된다. 하천보수원 전원이 서울, 익산 등 5개 지방국토관리청 소속이고 길게는 9년째 일하고 있어 업무 전문성만 인정된다면 건설기술인 자격이 충분했다. 국토부와 국토부가 자격 인증을 위탁한 한국기술인협회가 하천보수원 업무의 전문성을 두고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린 셈이다.
#하천보수원 노조 파업 시작
하천보수원과 국토부는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하천보수원 노조는 직무 경력 인정과 토목직 편제 등을 요구하며 2월 2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국토부를 대표한 협상 주체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더불어 노조는 고용승계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정부의 물관리일원화 방침에 따라 2022년 하천유지보수업무가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되면, 직종직렬 편제가 되지 않은 하천보수원들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요구다.
하천보수원 노조는 직무 경력 인정과 토목직 편재, 고용승계 보장 등을 요구하며 2월 2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박종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국토교통부지부장은 “공무원 사회에선 직무 경력을 인정받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하천보수원은 1~2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과 달리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하천보수원이 다른 공무원과 비교해 비대칭적으로 전문성이 높아지는 걸 경계해서 하천보수원의 직무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종진 지부장은 “하천보수원 대부분은 관련 직종에 오래 종사하던 전문가다. 홍수 피해의 대부분은 제방이 무너지거나 수문을 제때 닫지 못해서 발생한다. 하천보수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제대로 업무를 배분한다면 지금 일어나는 홍수 피해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노조의 주장을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관련법을 토대로 노조가 주장하는 직무 인정 부분을 검토하고 있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라며 “환경부 이관 시 고용문제 관련해선 부처 간 협의된 바는 없지만 하천보수원이 무기 계약직이기 때문에 고용 승계는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