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통기한을 논하지 말라
▲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
전화벨이 몇 번 울리다 끊어지더니 이내 ‘딩동’ 하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남편이다. 오늘 저녁 회식이 있어 좀 늦겠다는 내용이다. K 씨는 전화를 받지 않고 소파에 앉아 남편이 남긴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요즘 그녀는 집에 있어도 남편 전화를 잘 안 받는다. 빤한 몇 마디가 오가는 전화를 받기가 귀찮은 것이다. “저녁 먹고 들어오겠다”는 말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원 가느라 이른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나갔고 이럴 때 남편 저녁 차려주느라 부산떠는 것이 달갑지 않은 때가 많다.
K 씨가 남편 등 뒤로 눈을 흘기는 때가 많아졌다. 빨래를 개다가 뒤집어진 남편 속옷만 봐도 속이 뒤집어지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현관의 신발도 못마땅하다. 남편이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럴 때면 혼잣말을 한다.
“내가 권태기인가.”
그녀 추측이 맞다. 그녀 부부에게서 권태기 조짐이 보인다. 흔히 이유 없이 상대가 미워지거나 상대의 행동이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 상대 없는 생활을 상상해본다거나 다른 커플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 자주 들 때를 권태기라고들 한다.
어디 부부뿐이겠는가. 올해로 남자친구와 연애 4년째 접어드는 27세의 L 씨도 비슷한 상황에 빠져있다. 한창 서로에게 몸이 달아있을 땐 친구들은 뒷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친구들 모임에 빠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모임이 데이트 약속과 겹칠 땐 데이트를 미루기까지 한다. 친구들은 ‘우정의 놀라운 승리’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L 씨는 권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한다.
♥권태기는 감기와 같은 것
연애하는 커플들을 보면 처음의 열정이 식어 서로 식상하게 지내게 되면서 ‘사랑이 아니다’고 판단하고 헤어졌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나 연애를 하게 되면 눈을 멀게 했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상대의 실체를 보게 되고, 그러면서 실망하는 시기를 겪게 된다. 그것이 권태기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식어가는 자신이나 상대의 모습을 발견할 때 괴로워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더 깊고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필자도 그런 과정을 거쳐 결혼했으며 결혼 후에도 그런 위기 상황에 처한 적도 있다.
결혼생활에 대해 회의가 든다거나 상대의 말과 행동이 자꾸 거슬린다면, 사랑을 의심하기 전에 권태기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권태기는 감기와 비슷하다. 잘 다스리면 쉽게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질병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예전 같지 않은 상대를 무조건 원망하거나 화만 내지 말고, 나에게는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보라. 함께 풀어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권태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어가는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상대방 탓만 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괜찮아질 거야…’ 하는 자기 위안으로 상황을 피하려 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고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두 사람 관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상황을 받아들이면 해결책이 눈에 보인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독일 영화가 있다.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한 노부부가 마법에 걸려 잉어가 되는데, 3년 동안 변치 않는 사랑을 지키는 커플을 만나야만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마법을 풀 수 있는 주문이 3년 동안의 변치 않는 사랑인 것을 보면 사랑을 오래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애인을 만나기가 귀찮아지고, 만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면, 단점만 눈에 띈다면, ‘애인과 헤어진다면…’이란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면 권태기에 접어든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애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