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박찬구 회장과 사실상 결별 선언, 늦게나마 권리행사 나섰다는 시각도…3월 주총이 분수령
금호석유화학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 시그니쳐타워. 사진=최준필 기자
박철완 상무는 금호그룹 3대 회장인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이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은 아들 다섯을 뒀는데 고 박정구 회장이 둘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넷째로 박철완 상무에게는 박찬구 회장이 삼촌이다. 그동안 박 상무와 박 회장 일가가 지분 공동보유 관계로 금호석유화학을 지배하고 있었다.
박 상무는 공시에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나 경영 참여가 아닌 ‘주주권 행사’라고 명시했다. 개인 최대주주로서 이사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회사 합병 분할 등에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실제 박 상무는 공시를 낸 당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금호석유화학에 배당 확대와 이사 교체 등의 내용이 담긴 주주제안서를 보냈다.
금호석유화학 총수이자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동일인은 박찬구 회장이다. 다만 지분율은 6.7%로 박철완 상무(10%)보다 적다. 박 회장이 총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박 상무와 박 회장의 아들 박준경 전무(7.2%), 딸 박주형 상무(0.8%) 등이 함께 특수관계인으로 묶여 있었던 덕이다.
이번 지분 공동보유 관계 해지 공시에 따라 박철완 상무는 금호석유화학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박 상무를 제외한 박찬구 회장과 자녀들의 지분율을 합치면 약 14%인데, 앞으로 박 상무가 5%가량 우군을 확보하면 이를 넘어선다. 박 상무의 지분율 자체가 금호석유화학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박 회장 측이 느끼는 타격감이 클 수밖에 없다. 재계와 증권가에선 박 상무가 사실상 삼촌과 완전히 결별해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박 상무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는다. 박 상무 역시 공시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법률대리인 측은 외부와 접촉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석유화학은 박 상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이 때문에 박 상무의 ‘독립선언’ 배경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어려울 때 품어준 삼촌에게 비수를 꽂았다는 날선 비판과 최대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박 상무 측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금호그룹과 재계,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상무는 한때 금호그룹의 다음 세대 후계자로 꼽혔다. 그러나 그가 25세이던 2002년, 아버지 박정구 전 회장의 작고 이후 승계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상속받고 추가 지분도 매입하면서 최대주주에 올랐으나 부친이 없는 상황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앞의 관계자들의 말이다.
박철완 상무는 아시아나항공 차장으로 일하던 2010년 그룹 와해 사태로 확대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형제의 난’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 측에 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 상무는 같은 해 그룹이 워크아웃 등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서자 채무 상환 문제와 아시아나 경영권 등을 둘러싸고 박삼구 전 회장과 갈등을 빚었고, 이후 KDB산업은행(산은) 등 채권단에 경영권을 요구했다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때 박 상무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박찬구 회장이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과도 금방 사이가 틀어졌다. 2010~2013년 금호석유화학의 채권단 자율협약 경영 시절 공동경영을 주장하고, 박 회장이 독단적으로 회사를 경영한다며 산은에 항의서한을 보낸 일화는 재계에 잘 알려져 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제. 사진=임준선 기자·금호석유화학
갈등이 수면 위로 오를 때마다 박 상무가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그의 시선에선 상황이 달리 보였을 것이란 목소리도 최근 나오고 있다. 금감원 공시를 보면, 박 상무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금호석유화학의 최대주주다. 2011년 산은의 전환사채 청구 등의 이유로 지분율이 다소 떨어진 적은 있지만 최대주주 지위는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박 상무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오너일가 중에선 박찬구 회장만 금호석유화학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에 둥지를 튼 이후 박철완 상무는 최근까지 10여 년간 고무해외영업담당 임원을 맡고 있다. 합성고무 부문은 금호석유화학의 핵심 사업부지만 통상 기업 후계자들은 기획·전략·재무부문 등도 두루 경험하면서 경영수업을 받는다. 지난해에는 1978년생 동갑내기 사촌이자 박찬구 회장의 아들 박준경 전무만 승진했다. 박 상무와 박 전무는 2010년 함께 상무보로 승진했지만 이번에 완전히 격차가 벌어졌다.
2015년 경영에 참여한 박 회장의 딸 박주형 상무 역시 지분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고, 최근 금호석유화학의 금호리조트 인수와 박주형 상무의 향후 거취가 연관 지어지고 있다. 박 회장이 아들과 딸을 중심으로 승계를 추진할 경우 박 상무의 지분 희석이 불가피한데, 이를 아무런 동의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데 불만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호그룹 사정을 잘 아는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시 이후 금호석유화학은 박 상무가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개인 최대주주 임원과 회사가 얼마나 소통이 없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공시와 주주제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확정된 내용은 없지만 신중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계와 증권가에선 박철완 상무의 다음 행보를 주목한다. 오랜 기간 준비해 승부수를 던진 모양새지만 반대로 실패할 경우 이제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질 수도 있어서다. 박 상무는 최근 외부에서 우호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와 비교해 7배가량의 배당 확대 카드를 꺼낸 것도 세력 결집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이후에도 임시 주주총회 소집 등을 요구하는 등 장기전을 치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자사주 등을 포함하면 박찬구 회장 측의 실질 지배력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래 전부터 금호석유화학을 이끌며 성장해온 박찬구 회장은 국내외 주주들에게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본격적인 지분 다툼이 시작되면 박 회장 측도 세 결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향후 벌어질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공식적인 ‘조카의 난’이 선언되고 지분 다툼이 본격화하는 것과 물밑 협상을 통해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라며 “이는 먼저 포문을 연 박 상무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