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무관 동해안 대표 서핑성지, 시원한 물회+뜨끈한 뚜거리탕 먹고, 휴휴암서 휴~휴~
억지가 아니다. 강원도 양양은 이제 속초나 강릉보다 먼 바다가 아니다. 갑자기 짙푸른 동해바다가 그리워질 때 흔히 떠올리던 속초나 강릉을 가다 말고 양양에 멈춰 노는 일이 흔해졌다. 2009년 7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만들어진 뒤 다시 춘천에서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져 2017년 6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속초나 강릉을 갈 때도 이제는 양양을 거쳐 가게 됐다.
#놀거리
고속도로 개통도 개통이지만 놀거리도 심심치 않다. 양양의 관광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양양이 ‘놀 만한’ 해변으로 진화하고 있다. 3~4년 전부터 양양은 조용한 바닷가 도시에서 최고의 서핑명소로 부상 중이다. 최근 2030 MZ세대들이 양양을 찾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서핑을 해봤거나, 서핑을 해보고 싶다로.
양양은 최근 3~4년간 한국에서 파도처럼 일어난 서핑붐을 타고 서핑 성지가 됐다. 사진=이송이 기자
그만큼 양양은 최근 3~4년 동안 한국에서 파도처럼 일어난 서핑붐을 타고 서핑 성지가 됐다. 제주도 중문해변과 부산 송정해변에서 시작한 서핑붐이 서서히 동해까지 올라왔다. 그중에서도 양양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서핑 성지다. 겨울이라 서퍼들이 있을까 했지만, 죽도해변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한여름처럼 초보와 고수가 섞여 바글거리지 않고 웬만큼 고수들만 나와 있는 모양새다. 바다 위 띄엄띄엄 떠 있는 서핑보드가 이국적 분위기를 풍긴다.
양양에선 6개의 해안권역, 15개의 해변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 각 거점마다 나름의 서핑스쿨과 서핑숍이 운영되고 있다. 거점에 따라 바다 지형과 파도의 위세가 달라서 서퍼의 실력과 취향에 따라 어디에서 서핑을 할지가 갈린다. 6개의 거점은 설악거점, 하조대거점, 기사문거점, 죽도거점, 남애거점, 원포거점 등인데 죽도거점이 제일 유명하다. 죽도해변은 2009년부터 서핑스쿨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양양에서 최초로 서핑이 활성화된 곳이다.
그렇다고 파도가 서퍼들만의 것은 아니다. 서퍼들은 파도를 타지만 구경꾼들에겐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까지가 하나의 바다풍경이다. 푸른 동해와 그 위를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무것도 넣지 않은 바닐라아이스크림 맛이라면, 파도 타는 서퍼를 얹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초코와 딸기 등 여러 토핑을 올려놓은 화려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느낌이다.
파도에 눕고 파도를 타고 파도와 노는 서퍼들의 모습을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멀리서부터 몸집을 키우며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서퍼들의 몸짓을 보면 양양이 서핑 성지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바다의 계획(?)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구경꾼들은 온몸을 패딩점퍼로 감싼 채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면서 영화를 보듯 바다를 스크린 삼아 파도에 몸을 적신 청춘들을 구경한다.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파도에 같이 젖어들 수 있다. 서퍼들과 함께 서핑보드에 올라탄다. 물론 마음만이지만.
구경꾼들은 온몸을 패딩점퍼로 감싼 채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면서 영화를 보듯 바다를 스크린 삼아 파도에 몸을 적신 청춘들을 구경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해안에 서퍼들이 모이다보니 해변 거리에는 카페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예전처럼 횟집이 즐비한 바닷가가 아니다. 한겨울 썰렁할 법한 해변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 서퍼들 덕분에 언제나 잔잔한 활기를 머금고 있다. 죽도해수욕장과 인구해수욕장 주변으로 하나둘 게스트하우스와 펍, 카페, 수제버거집, 서핑숍이 생겼고 해변의 거리는 서울 도심의 여느 카페 거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겨울엔 강릉이나 속초보다 한산한 바다다.
#볼거리
더 남쪽으로 가볼까. 죽도해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만 강릉 쪽으로 내려가면 바다를 낀 불교사찰 휴휴암이 있다. 사찰 안으로 들어가서도 바닷가 해안을 만날 수 있는, 해안가에 세워진 암자다. 부산의 해동용궁사나 양양 낙산사도 바다를 끼고 있는 사찰로 유명하지만 그에 비해 휴휴암은 소박하고 아늑하다. 휴휴암으로 들어가는 길도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라기보다는 시크릿 해변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바다를 끼고 들어앉은 휴휴암은 ‘쉴 휴(休)’자를 두 번이나 써서 마음까지 쉬고 또 쉬어가라 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휴휴암은 ‘쉴 휴(休)’자를 두 번이나 써서 쉬고 또 쉰다는 의미다. 단순히 몸만 쉬어가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마음과 시기, 질투, 증오, 갈등 등 온갖 마음의 번뇌를 내려놓고 마음을 쉬어가라 전한다. 한숨소리와도 닮았다. “휴우~휴우” 길게 숨을 뱉어본다. 휴휴(休休)암에서는 한숨도 체험이다. 휴휴암 경내로 들어가면 바다에 자연스럽게 놓여있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다. 이 위에서 독특한 해안경치를 감상하며 고요히 명상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휴휴암은 오래된 사찰이 아니다. 몇백 살이 흔한 국내 사찰들에 비하면 별다른 역사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휴휴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다 속에 누워 반쯤 얼굴을 내보이는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명물이 됐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들이 파도에 부딪혀 깎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바위상이다. 사람들은 그것에 관세음보살상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덕분에 불자들의 명소가 됐고 1999년쯤부터 바다 앞에 암자를 지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양양군에서 가장 큰 항구인 남애항이 있다. 남애항은 강릉 심곡항, 삼척 초곡항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미항이라고 불린다. 동해는 어디나 그렇지만, 남애항은 강릉 정동진, 동해 추암과 함께 동해안을 대표하는 일출명소이기도 하다. 동해이면서도 남쪽을 향해 항구가 열려 있어 일출은 물론 일몰까지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항구다. 남애항 위판장에서는 새벽마다 경매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남애항 수산물 경매에서는 계절에 따라 제철 생선과 해산물이 거래되는데 그 중에서도 문어가 특히 유명하다.
남애항에는 높은 전망에서 항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있다. 발 아래로 훤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투명 유리 발판의 길이는 10m 내외로 길지 않지만 남애항의 전망을 360도로 내려다 볼 수 있다. 송이버섯으로 유명한 양양답게 등대 모양도 송이버섯을 본 따 만들었다. 남애항 일대는 1984년에 만든 한국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남애항에는 항구를 360도로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발판의 스카이워크가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먹거리
양양에는 뚜거리탕이란 것이 있다. 강바닥에 붙어사는 민물고기인 ‘뚜거리(꾹저구)’를 갈아 탕으로 끓인 것인데 추어탕과 비슷하다. 양양에서는 고추장을 풀어 더 얼큰하게 끓인다. 호불호가 있는 추어탕보다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바닷가에서 웬 민물고기 탕인가 하겠지만 양양은 은어와 연어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이 연어의 회귀천이다. 국내 회귀 연어의 70% 이상이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양양에선 남대천에서 잡히는 여러 물고기를 탕으로 끓여먹는 문화가 익숙하다. 양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뚜거리도 남대천에서 잡히는 순수 토종 생선 가운데 하나다. 시내의 양양대교 인근에 5~6개의 뚜거리탕집이 몰려있다.
양양별미인 메밀국수, 뚜거리탕, 물회 한 사발(왼쪽부터). 사진=이송이 기자
양양도 메밀이 많이 나는 강원도이니 메밀국수도 유명하다. 순메밀을 갈아 국수를 만드는 식당도 있다. 메밀국수는 뚝뚝 끊기는 투박한 맛이 별미다. 입맛 없을 땐 구수한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부담 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속도 편하고 지갑도 편하다.
양양 물회도 가성비 끝판왕이다. 물회로 유명한 포항에서 1년을 살며 이틀에 한 번꼴로 물회를 먹었던 기자지만 양양의 푸짐한 물회에 눈이 동그랗게 떠질 만큼 놀랐다. 계절과 어획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 생선이 들어가는데 굳이 회를 시키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물회 안에 회가 많이 들어있다. 각종 잡어와 뼈째회(세꼬시)가 들어간다. 잘게 썬 회가 많이 들어가니 처음부터 양념에 비벼 먹지 말고 회를 따로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다가 지겨울 때쯤 비벼먹는 것을 추천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