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 맛 아니지만 얼큰, 달달…호떡집도 유명세, 촌스런 맛과 풍경에 추억이 아스라히~
#짬뽕+잡탕의 도시
100년 넘게 이민족이 드나들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흡수해야 했던 항구도시의 정체성이 짬뽕과 잡탕의 국물에서 우러나온다. 사진=이송이 기자
군산 구도심을 기웃거리다 보면 흔하게 만나게 되는 곳이 중식당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중국인들이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었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짬뽕으로 이름난 중식당이 여럿이다. 복성루, 쌍용반점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외지인에게 더 유명하고 영화원, 서원반점, 빈해원 등은 군산 시민들의 발길이 잦다.
복성루는 돼지고기 고명을 올린 짬뽕으로 유명하고 쌍용반점은 해산물 그득한 얼큰한 짬뽕으로 이름을 날렸다. 빈해원에선 고풍스러운 중국식 옛날 집 구경까지 덤으로 할 수 있다. 분위기가 남다른 빈해원은 화교가 운영한다. 적잖은 역사도 자랑한다. 1951년에 문을 열어 70년이 다 됐다. 안으로 들어서면 18세기 말 중국의 어느 식당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종종 영화촬영 장소로도 사용됐다.
빈해원에는 물짜장도 있다. 춘장이 들어가지 않고 잡채밥처럼 담백하면서도 중국요리 특유의 찰기가 있는 물짜장에는 버섯과 각종 야채가 가득하다. 삼선짬뽕은 얼큰하고 푸짐하다. 깜짝 놀랄 만한 맛은 아니지만 중국 스타일의 식당에서 맛보는 짬뽕 한 그릇이 이색적인 감흥을 가져다준다. 주인이 추천하는 메뉴는 탕수육. 피가 얇고 바삭하다.
군산 어른들이 짬뽕을 좋아한다면 아이들의 선호 간식은 잡탕이다. 잡탕은 떡볶이와 만두, 어묵, 달걀, 쫄면, 라면 등을 한데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후 깻잎을 고명으로 올린 탕이다. 군산까지 와서 웬 분식이냐 할 테지만 잡탕은 군산에서 나름 큰소리를 낸다. 짬뽕과 잡탕은 맥이 같다. 온갖 것을 다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잡탕의 맛은 걸쭉하면서도 진하다.
여기에 군산만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100년 넘게 이민족이 드나들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흡수해야 했던 항구도시의 정체성이 짬뽕과 잡탕의 국물에서 우러나온다. 어느 하나 재료가 튀지 않고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것이 군산을 닮았다. 잡탕은 군산의 여고생들이 즐겨 먹는 간식이자 어른들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군산의 명물이다. 커다란 뚝배기에 끓여 내는 것이 특징인데 깻잎의 향 때문인지 물고기만 들어있다면 매운탕과 비슷하다.
#100년 빵집 이성당
100년 빵집을 자부하는 이성당. 빵집이 세월을 관통하는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단팥빵과 야채빵이 유명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군산 하면 빵집도 떠오른다. 100년 빵집을 자부하는 이성당이다. 빵집이 세월을 관통하는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그래서 이성당 단팥빵은 군산에 가면 한번은 먹어봐야 할 간식이 됐다. 숱하게 매스컴도 탔다. 해방 후 역사만 76년이다. 해방 전 일본인에 의한 시간까지 따지면 100년 역사다. 이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빵은 단팥빵과 야채빵이다.
하루 몇 차례, 그날그날 정해진 시간에 빵이 나온다. 빵 나오는 시간을 기다린 손님들은 기다린 시간을 보상받으려고 한 번에 몇십 개씩 사가기도 한다. 그 통에 단팥빵과 야채빵 쟁반은 빵이 나오기 무섭게 바닥을 드러낸다. 빵이 채 식기도 전에 날렵한 손들이 다 채가고 만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호불호가 없는 빵이기에 더 그렇다.
드디어 맛본 따뜻한 단팥빵 하나는 기다림에 지쳤던 마음을 단숨에 위로한다. 담백하고 달달한 팥소가 가득 든 단팥빵은 몽실몽실 부드럽다. 그래도 단팥빵은 어디까지나 단팥빵이다. 기다린 시간 덕분에, 멀리서 찾아간 덕분에, 여행 중이라서, 더 맛있다. 어릴 적 시장에서 사먹던 아삭아삭 야채빵도 옛날 맛 그대로다. 맛은 촌스럽다. 그래서 더 희귀하다. 세련된 것으로 둘러싸인 삶이 왠지 헛헛해질 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는 맛이다. 맛으로 잠시나마 시간을 거스른다. 아날로그 타임머신이다.
몇몇 빵은 글루텐 함량을 낮춰 어른신도 쉽게 소화할 수 있게 쌀가루를 섞어 만든다. 100% 쌀가루로 만든 쌀빵도 있다. 오전에는 계란프라이와 스프, 커피와 샌드위치로 구성된 모닝세트를 판다.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나 ‘아메리칸 컨티넨탈’의 한국식 버전이다. 파스타, 피자 등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1943년에 생긴 ‘호떡 식당’
중동호떡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지지 않고 굽는다. 중국식 호떡이다. 담백하다. 보리가루를 섞어 반죽을 하는 덕분에 호떡은 텁텁하지 않고 쫄깃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군산에는 1943년에 생긴 호떡집도 명맥을 유지한다. 중동에 있는 중동호떡이다. 경암동 철길마을로 걸어가는 길에 있다. 이 호떡 하나를 맛보자고 군산에 오는 젊은 여행객도 있단다. 짬뽕 한 그릇 거하게 먹고 나면 입안에서 단 것이 당긴다. 이때 간식으로 중동호떡이 제격이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호떡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식당처럼 번듯한 가게 안에 먹고 갈 수 있는 테이블과 무료 커피자판기도 있다. 은행처럼 번호표 기계까지 있다. 호떡집에 불이 나니 주인은 건물을 올렸다.
중동호떡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지지 않고 굽는다. 중국식 호떡이다. 담백하다. 보릿가루를 섞어 반죽을 하는 덕분에 호떡은 텁텁하지 않고 쫄깃하다. 진한 갈색을 띠는 시럽은 흘러넘칠 정도로 흥건하다. 흑설탕과 각종 곡물 가루를 섞어 체에 친 것을 사용한다.
테이블에서 먹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집게 두 개씩을 준다. 중동호떡은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 가게에서 가르쳐 주는 방법에 따르면 집게 두 개로 호떡을 찢어서 호떡 윗면의 피를 벗겨내 안에 든 시럽에 찍어서 먼저 먹고 남은 피는 남은 시럽과 함께 돌돌 말아서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호떡 안에 든 시럽을 흘릴 일이 없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바로 한입 베어 물으면 입안을 델 수 있다. 두고두고 먹으려고 많은 양을 포장해 가는 건 ‘비추’다. 뭐든 그렇지만 현장에서 먹는 맛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