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대결 불사’ 외쳤는데 ‘계단식 단일화 성사’로 머쓱…가덕도 찬성·해저터널 검토 발언 두고 갑론을박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한 불만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분출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자 ‘3자 대결 불사’를 외치던 김 위원장의 호언장담은 이제 헛말이 될 상황에 놓였다. 김 위원장이 꺼낸 가덕도 신공항 발언을 놓고도 PK(부산·울산·경남)와 TK(대구·경북) 간 집안싸움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2월 3일 오전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동안 힘만 낭비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와 관련, 안철수 대표가 2월 3일 무소속 금태섭 전 국회의원의 제3지대 경선 제안을 전격 수락했다. 안 대표 측은 금 전 의원과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 협의에 들어갔다. ‘제3지대 경선→국민의힘 후보와의 경선’이라는 계단식 단일화 모델이 성사된 것이다.
안 대표는 수락 기자회견을 통해 “금태섭 후보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 교체에 동의하는 모든 범야권 후보들이 함께 모여 단일화하고 1차 단일화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와 2차 단일화 경선을 통해 범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룬다”고 말함으로써 계단식 단일화를 확약했다.
안 대표는 이날 ‘뼈 있는 한마디’도 했다. 그는 “저희가 범야권 후보 단일화 예비경선 A조라면, 국민의힘은 예비경선 B조가 될 것”이라면서 “야권 후보 적합도나 경쟁력 면에서 가장 앞서가는 제가 포함된 리그가 A리그”라고 했다. 끈질기게 자신을 거부해온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섭섭함을 강하게 표시한 것으로 읽힌다.
자신이 ‘A조’라는 안 대표 자신감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안 대표가 나서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모두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월 3일 나왔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 의뢰로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사흘간 18세 이상 서울시민 8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4%포인트), 안 대표와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양자대결을 벌이면 각각 39.7%, 33.5%로 안 대표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야권 단일후보 적합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안 대표가 31.7%로 국민의힘 소속인 나경원 후보(16.8%), 오세훈 후보(12.0%)를 크게 앞섰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 위원장 고집과는 다르게 판이 흘러갈 것이라는 당내 경고는 김 위원장 리더십을 향한 직격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성중 의원은 2월 2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수많은 고민 끝에 글을 올린다. 현재 우리 당은 지지율, 조직, 인물 3중고를 겪고 있어 승리가 불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믿는 것은 인물을 통한 바람인데 그 인물을 뽑는 경선조차 서울시민들에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가 한마디 하면 바로 공격하고 때리기 시작한다. 안철수 대표는 단일화로 우리 당의 후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비난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 당은 김종인 위원장 1인 개인기에 의존하는 형태인데 현재 상황은 비대위원장이 대선주자인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을 직격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지난 언사도 겨냥하면서 “당내에는 주자가 없다, 70년대생 경제전문가, 지난 인사는 시효가 끝났다, 3파전이 돼도 승리한다 등등 실수도 잦고 타이밍도 고개가 갸우뚱하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빠지고 이참에 범야권 단일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윤상현 무소속 의원이 2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등이 참여한 비상시국연대가 이미 출범했으니 1단계 안-금 단일화 경선 및 2단계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결선에서 컨벤션효과를 이끌어내는 부싯돌 역할을 비상시국연대가 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나마 계단식 경선이 성사된 게 다행이지만 안 대표의 당초 주장처럼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야권 대통합 ‘원샷 경선’이 날아갔다는 것은 정말 아쉽다는 시각이 많다. 안 대표를 지렛대로 삼아 중도를 향해 한발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카드가 사라졌으니 국민의힘으로서는 큰 장애물을 안고 달리게 됐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이 변했고, 대통합이라는 확실한 모습을 조기에 보였어야 했는데 김 위원장의 고집으로 인해 원샷 경선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김 위원장이 ‘따로 국밥식’ 야권후보 단일화를 고집해 결과적으로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당의 의지가 퇴색됐다. 김 위원장은 계단식 경선이 확정된 이후인 2월 4일이 되어서야 안 대표 등을 향해 이제 우리가 한 식구라고 얘기했다. 이럴 거면 왜 이리 다투면서 힘 낭비를 했나.”
2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PK 안으려다 TK 발끈
김 위원장은 2월 1일 부산을 찾아 여당이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섰던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우리도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시장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부산에 대한 선물 공세였다. 부산 민심은 다독였지만 국민의힘 최대 지지 세력인 TK가 발끈하고 나섰다. 특히 김 위원장의 이날 부산에서의 발언은 상식을 벗어났다는 비판이 TK에서 쇄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부산 방문에서 “TK 등 반발 여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덕도 공항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다른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TK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해석으로 이어졌고 TK 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TK 한 초선 의원은 초선이 봐도 도저히 이해 못하는 막무가내 리더십이라고 김 위원장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부산시장 선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당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을 TK 주민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TK와의 소통 행보를 하면서 부산에 가기 전에 진정성을 갖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였어야했다. 여당의 PK·TK 갈라치기 전략은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매번 여당의 노림수에 뒤통수를 맞고 핵심 지지기반 유권자들에게 상처를 준다. 지금의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상황논리를 설명하면 TK 민심도 보듬을 수 있는데 김 위원장은 이런 기본적 과정조차 생략하고 마구잡이 행보를 한다.”
여러 경로로 ‘이 같은 행보는 안 된다’는 얘기가 들어갔지만 김 위원장에게 이런 말이 안 통한다는 하소연도 당 내부에서는 쏟아진다. 중요한 정치적 국면마다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김 위원장 소통 방식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소귀에 경 읽기 같은 상황에 지쳤다는 푸념까지 쏟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부산 방문에서 안 맞아도 될 매까지 사서 맞았다.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여당이 하는 포퓰리즘 행태를 국민의힘까지 따라하느냐”는 비판 세례가 쇄도한 것이다. 공사비만 10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인데 제1야당 비대위원장이 ‘툭 던지듯’ 꺼냈고 ‘무책임한 언동’ ‘포퓰리즘’ 비판 기사가 보수 언론에서조차 줄을 이었다. 관료 출신 한 국민의힘 의원 말이다.
“우리 당이 민주당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유능하고, 계획성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명색이 경제학자 출신이라는 김 위원장이 10조 원 넘게 들어가는 공항도 오케이, 100조 원 넘게 들어가는 해저터널도 오케이하고 있다. 이래서야 우리가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 결국 민주당 꽁무니 쫓아가는 격인데 이 과정에서 TK와 PK 집안싸움까지 만들고 있으니 분열된 야당이 선거 이기는 거 봤느냐. 이러면 내년 대통령선거는 볼 필요도 없고 무조건 진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