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송명근 심경섭도 징계…프로축구 사례 이어 감독들 폭로까지 나와
이재영(왼쪽) 이다영 자매에 대한 중징계 이후에도 학교폭력 관련 폭로는 계속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팀 내 불화에서 시작된 폭로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쌍둥이 자매가 과거 학창시절 배구부 내에서 돈을 빼앗거나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온 후 당사자들의 사과와 중징계가 이어졌다. 앞서 이다영은 흥국생명 팀 내 불화의 중심으로 지목을 받았다.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 ‘배구여제’ 김연경이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불화설의 시작은 소셜미디어였다. 이다영은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고 호소했다. 웹툰 등의 대사를 인용해 ‘나잇살 좀 먹은 게 벼슬도 아니고’라는 저격성 발언도 있었다.
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과거 학폭을 최초 폭로한 글에서는 ‘소셜미디어의 글을 보고 폭로를 결심하게 됐다’는 뜻이 담겼다. 적극적인 소셜미디어 활동이 아니었다면 최근의 폭로전을 피해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폭로는 1회에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의 부모나 주변인까지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쌍둥이의 어머니인 1988 서울올림픽 배구 대표팀 출신 김경희 씨에게도 여파가 미쳤다. 쌍둥이의 성장 과정에서 학교 배구부에 김 씨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구협회는 지난해 연말 김 씨에게 시상한 ‘장한 어버이상’을 취소했다.
#‘학폭 게이트’로 번진 폭로전
이재영 이다영에서 시작된 학교폭력 폭로의 불똥은 다양한 방면으로 튀어 나갔다. 먼저, 같은 종목 내 선수들이 대상이 됐다. 남자부 OK저축은행의 송명근 심경섭도 학창시절의 폭력 행위가 드러나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됐다.
여자부 선수들과 관련한 폭로도 이어졌다.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 선수 신원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기에 다수 선수들이 가해자로 지목받았지만 곧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가해자가 특정되는 상황이다. 다만 비교적 빠르게 사과문을 발표했던 이재영 이다영 송명근 심경섭과 달리 당사자들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아직 없다.
앞서 4명의 선수에게 국가대표 선발 제외 징계를 내린 배구협회는 추가 폭로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징계가 내려진 선수들은 즉각적으로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그래서 징계를 내렸다. 추가적으로 학폭 전력이 거론되는 선수들은 피해를 주장하는 측과 소통을 하거나 소송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폭이 사실로 드러나면 징계를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배구에서 시작된 파장은 다른 종목으로 번져나갔다. 프로축구 K리그는 1, 2부리그 22개 구단이 모두 유스팀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대다수가 기존 학교를 지정한 상황이다. 학폭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6일 전 구단에 폭력방지를 위한 현황 파악을 요청했고 프로 선수들에 대해서도 면담 과정에서 과거 학폭 사례 확인을 추가하기로 했다.
프로야구 KBO는 학폭으로 이미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신인 선수 선발 과정에서 과거 학폭 전력이 공개돼 선수가 징계를 받거나 구단의 지명이 철회되기도 했다. 최근 학폭 논란이 이어지자 KBO는 신인 드래프트 단계에서 과거 기록을 미리 확인하는 방안을 계획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이미 지난해 고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큰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떨고 있는 스포츠계
이어지는 폭로전은 대규모 ‘폭력 게이트’로 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오랜 기간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큰 화제가 됐던 트라이애슬론과 같은 아마추어종목뿐 아니라 오랜 기간 발전을 거듭해온 프로스포츠도 폭력 이슈에 떨고 있다.
현역 프로농구 감독과 관련한 폭로도 나왔다. 한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폭력은 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 감독의 과거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대학 감독 시절, 슬리퍼 각목 등으로 선수들에게 체벌을 가했다는 내용이었다. 가해 감독의 현재 별명 등을 거론해 신원을 쉽게 특정할 수 있게 했다. 구단이나 당사자의 공식적인 대응은 없었다. 최초 폭로 이후 4일이 지난 현재 게시판의 글은 삭제된 상태.
한 전직 지도자는 “과거를 빠짐없이 모두 들춰낸다면 폭력에서 자유로운 지도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자신도 학창시절 선배였던 현역 지도자에게 구타를 당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결국 과거의 피해자가 폭로에 나서지 않는다면 폭행 전력이 있더라도 현재 상황에 영향이 없다. 운 좋은 사람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과거 피해 사실이나 가해자를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학교가 아닌 프로 무대에서도 종종 폭력이 논란이 됐다. 이따금 선수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프로팀에서 선후배간 ‘기강 확립’을 위해 어느 정도 구타가 있었음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로 남기기 마련이다.
되레 폭력은 재미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스포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일부 관계자들이 영상에 출연해 과거 폭력 경험을 흥미롭게 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스포츠계 폭력이 이슈로 떠오르며 당시 거론되던 현역 코칭스태프의 이름이 재조명되는 상황이다.
#징계 수위 놓고 찬반양론
국내 스포츠계 ‘폭력 게이트’를 촉발시킨 이재영 이다영 자매에 대한 징계는 소속팀 무기한 출전 정지, 국가대표 선발 제외 등의 선에서 멈출 전망이다. V리그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은 학폭 관련 징계 조항을 추가하더라도 조항을 만들기 이전 일들에 대해 징계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에게 내려진 징계에 대해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추가 징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구제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자배구 선수들에 대한 ‘엄정대응’을 촉구하는 청원이 등장했다. 영구제명을 언급한 청원에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반대 목소리도 있다. 과거 일로 현재에 너무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잘못을 했지만 영영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앞서 과거 구타 경험을 전했던 지도자는 “물론 잘못에 대한 징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폭력 등으로 인해 영영 선수생활이나 지도자생활을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 번의 기회는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