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지원금 목숨과 맞바꿨다
▲ 윤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곳은 여의도 공원 내 생태보호지역으로 사람의 발길이 뜸한 연못 근처였다. 작은 사진은 출입금지 안내 푯말. |
지난 10월 6일 오전 8시 25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에서 윤 아무개 씨(52)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생태보호지역’으로 사람이 발길이 뜸한 연못 근처였다. 그 곳에는 빈 소주병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신고를 한 공원 청소용역업체 박 아무개 씨(64)는 “아침에 산책하던 시민이 ‘시신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윤 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 씨의 주머니에서는 유서가 나왔다.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에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이 도와주길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유서와 가족, 주민들의 진술을 토대로 생활고에 시달려온 윤 씨가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나 장애아동부양수당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 주민인 김 아무개 씨(58)는 기자에게 “윤 씨가 최근 종종 내가 죽으면 팔 한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열두 살 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고 털어놨다.
윤 씨는 고아로 자랐다.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던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1988년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돼 6년간 복역한 뒤 1994년 출소했다. 그 이후 용접공으로 여러 업체를 전전했다. 어려웠지만 그는 성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혼인신고는 안 했지만 부인 김 아무개 씨(54)를 만나 아들(12)까지 얻었다. 하지만 윤 씨의 가정은 2005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윤 씨가 일자리를 잃으면서부터다. 다른 기술이 없는 윤 씨는 날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부인 김 씨는 가사 도우미가 됐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남의집살이를 거듭하다 호적도 주민등록도 등재하지 못한 상태가 됐다. 급기야 가족은 해체됐고, 아들은 윤 씨가 돌보기로 했다.
이런 와중에 윤 씨는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갔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팔이 종종 마비되곤 하던 아들의 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300만 원의 수술비가 청구됐다. 아들은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았고, 보호자가 있는 탓에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가 없었다. 부인 김 씨는 “(남편이) 5일 오전 아무런 말 없이 집을 나가고서 연락이 끊겼다”며 “우리는 장례를 치를 돈도 없어 시신이 보관된 병원에서 시신을 인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윤 씨는 유서 말미에 “아들아, 사랑한다. 내 뼈는 화장해서 그냥 공원에 뿌려달라”는 슬픈 당부를 남겼다. ‘주민등록상 고아’가 된 아들 윤 군은 이제부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활고라는 ‘늪’에 빠진 장애인 가족은 비단 윤 씨만이 아니다. 안양시 안양동 덕천마을에 사는 박 아무개 씨(52)는 30여 년 전, 문 틈으로 새어든 연탄가스를 마시고 뇌병변 장애가 생겼다. 몸 반쪽이 마비되고, 잦은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당시 스테인레스 접시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박 씨는 곧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 후로 그를 고용하려는 회사는 없었고,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어느덧 여든 줄에 접어들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인 재산이 있어 정부 지원을 ‘일절’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소유의 비좁은 주택 때문이었다. 박 씨는 “수급은 커녕 자원 봉사자들이 해주는 밑반찬 지원도 못 받는 실정이다. 하나밖에 없는 보금자리를 팔아 생활비를 대라는 것이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성남시 단대동에 사는 이 아무개 씨(여·28)는 혼자 네 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발바닥이 당기고, 허리가 아팠지만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가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무거운 것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을 무리하게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일을 안하면 어떻게 살까요”라며 “복지사와 상담했지만 정부 지원은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월세가 밀리면 쫓겨날 텐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측은 10월 8일 성명서를 통해 “장애인 가족의 자살 사건은 윤 씨 이외에도 지난 5년간 수십여 차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며 “자살 사건의 대부분은 양육과 재활치료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08년 부모연대 주도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을 부양하는 가족의 29%는 월가구 소득이 1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장애아동 가족은 장애아동의 의료비, 재활치료비 등 추가비용을 한 달 평균 34만여 원씩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15만 원에 불과한 장애인 연금은 월 수입이 45만 원 이하인 경우에만 지원된다. 자택 등 부양 가족에게 자산도 없어야 한다. 더불어 의료급여 혜택 역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게만 지급된다. 또한 장애아동의 경우, 부모의 부양 능력 여부에 따라 혜택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윤 씨와 같은 사각지대의 장애인들이 늘고 있다. 정부 지원의 문이 매우 좁은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장애인들의 고된 현실이 실질적으로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많기로 소문난 강남구청 사회복지과 담당자는 “주민들 생활실태는 우리가 조사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금액 책정을 위해 서류 조사를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구청과 동사무소 복지정책과 담당자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로 다른 기관에 전화해 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의 강철 사회복지사는 “현 복지제도는 매우 형식적이다. 일정 기준표에 점수를 매겨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기에 현실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 실제로 수급자인지 아닌지도 파악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다수 복지 전문가들은 소액의 지원금만으론 생활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취업 지원’ 등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