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홈쇼핑 인수 ‘실패한 로비’ 정조준
▲ 2006년 태광산업과 롯데그룹은 우리홈쇼핑을 두고 치열한 인수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사돈기업’ 롯데의 승리. |
한편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가 단순히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07년 태광과 롯데 간의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인수전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두 기업 간 치열했던 인수전에서 정치권으로 돈이 흘러들어갔을 만한 정황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의 새로운 줄기로 떠오르는 우리홈쇼핑 인수전 관련 의혹의 실체를 추적했다.
지난 2006년 태광산업과 롯데그룹이 우리홈쇼핑의 인수를 둘러싸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케이블 방송 등을 통해 방송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던 태광그룹은 매물로 나온 우리홈쇼핑에 가장 먼저 눈독을 들였다. 태광은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우리홈쇼핑 지분 45%를 확보하며 인수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런데 롯데가 향후 홈쇼핑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들어 경방 등으로부터 53%의 지분을 사들였다. 사돈기업이었던 태광과 롯데는 이후 피 말리는 인수전을 펼쳤다. 그러나 경방 측의 지분매각으로 하루아침에 우리홈쇼핑 경영권 확보 싸움에서 고배를 마신 2대주주 태광산업은 이후 완강하게 롯데와의 공조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 문제는 아직도 법정다툼 중이다.
지난 9월 24일 태광산업은 방송통신위원회(당시 방송위원회)를 상대로 ‘지난 2006년 롯데쇼핑을 우리홈쇼핑의 최다액 출자자로 변경한 처분은 무효’라는 내용의 소송을 행정법원에 냈다. 태광그룹 측은 “우리홈쇼핑이 보유했던 유원미디어 주식을 자산 총액 3조 원 이상 대기업인 롯데쇼핑이 소유한 것은 방송법에 위반하므로 방송위가 롯데를 최대 주주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태광은 2007년 2월 방통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롯데쇼핑에 우리홈쇼핑 인수를 승인해준 것은 당초 홈쇼핑 방송 취지(대형 유통업체 진입 금지)에 어긋나며 인수와 관련한 법률상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면서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위법하지 않다”며 방통위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처럼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인수전에서 패한 대가는 컸다. 특히 이때부터 이선애 상무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조카인 며느리 신유나 씨를 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상무가 이 회장의 가족과 분가한 것도 이 일이 있은 후라고 한다. 태광그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신유나 씨가 이 여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한 달가량 일본에 있는 친정에 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태광 입장에서는 우리홈쇼핑 지분 45%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 회장 일가의 분노는 더욱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치열했던 인수전이 이번 수사로 다시 주목받는 까닭은 당시 태광 측이 우리홈쇼핑 인수를 둘러싸고 전 방위적인 정치권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전은 태광과 롯데 간에 ‘자금력이 아닌 로비력 싸움’이란 말이 재계에 파다했다. 당시 우리홈쇼핑 매각과 관련해 최종적인 허가권을 가지고 있던 방송위원회에서는 롯데에 홈쇼핑마저 내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방송위원 간 무기명 투표에서 5 대 4, 단 한 표차로 허가가 떨어졌다. 때문에 방송위 주변에서는 롯데가 로비전에서 이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몇 년간 태광그룹과 관련한 대대적인 계좌 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당시 로비전과 관련한 수상한 자금 흐름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006년 12월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를 위한 정·관계 로비 의혹 이외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홈쇼핑 인수 과정에서 정치권으로 돈이 흘러들어간 여부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지난 18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와 관련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우리홈쇼핑 인수를 위해서 태광그룹이 접촉했던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도 하나둘씩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 말고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향후 수사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수사를 정· 관계 로비 의혹까지 가져간다면 그중에는 태광과 롯데 간의 우리홈쇼핑 인수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각의 분석이다.
한편 현재까지 이 회장이 아들에게 편법상속을 했다는 데 언론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지만 검찰과 태광 주변에서는 이 회장의 딸과 관련한 의혹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은 태광그룹 계열사인 E 사. 이 회사는 이 회장의 열 살짜리 딸이 지분율 49%를, 이 회장 부인 신유나 씨가 51%를 가지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향후 수사에서 E 사 역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이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네팔에 다녀왔을 때 E 사 고위 인사가 이 회장 지근거리에서 동행하며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E 사 고위 인사가 이호진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지면서 E 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