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시기 ‘갓’ 끈 고쳐매 구설수
이철휘 전 사장이 전격 사퇴한 것은 지난 9월 1일. 그는 금융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며칠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 전 사장의 임기는 올 12월까지로,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전 사장의 사퇴는 캠코 내부 직원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이 전 사장은 사직서 제출 후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원래는 지난 6월 말쯤 사임할 계획이었지만 저축은행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인수와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등 시급한 사안을 마무리 짓기 위해 사임 시기를 늦췄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이 밝힌 사퇴 이유를 금융권에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던 그가 현안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사장 자리에 물러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 전 사장의 사퇴는 향후 있을 금융권 수장들의 물갈이 시기와 맞물려 더 많은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올 연말과 내년 초는 금융권 수장들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고되어 있다.
가장 먼저 윤용로 현 기업은행장이 올 12월 20일로 임기가 끝난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현재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이른바 ‘빅3’가 모두 교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3월에는 산업은행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우리은행장, 하나은행장이 줄줄이 임기가 만료된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개각에서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바뀔 것이란 소문도 파다하다.
이처럼 대대적인 물갈이를 앞두고 있는 금융권에서 이철휘 전 사장의 거취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융권 수장 자리에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현 정권 실세인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후광으로 인해 정권 초부터 여러 기관장 하마평에 꾸준히 거론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전 사장은 김 총무기획관의 처남이다.
이 전 사장은 지난 6월 KB금융지주 회장직에도 도전했다 인선 과정에서의 불공정을 이유로 중도하차한 바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KB금융지주 인선 때와는 달리 앞으로 있을 금융권 수장 인선에서는 이 전 사장이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향후 금융기관장들의 배치 구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전 사장이 캠코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금융권에서는 ‘이 전 사장이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도전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해 물러났다’는 추측이 기다렸다는 듯 흘러나왔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경영진 간의 불화로 인해 라응찬 회장 등 신한 빅3 동반 퇴진론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KB금융지주 회장직에 응모했던 이 전 사장은 ‘포스트 라응찬’ 1순위로 거론되어 왔다. 이 전 사장이 일본 히도츠바시대 대학원에서 금융 석사학위를 받았는가 하면 주 일본대사관 재경관을 지낸 ‘일본통’이란 사실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사장이 신한은행의 재일교포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이 전 사장은 지난 7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나는 관계가 없다.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짜증이 나고 곤란하다”면서 “신한지주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설사 그가 신한금융지주 회장직에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나 연말연초 개각에서 교체가 유력시되는 금융위원장이나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전 사장 거취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 제기하는 ‘김백준 후광론’과 같은 경우 실제 청와대에서는 금융권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총무기획관실의 한 관계자는 “김백준 기획관은 이 전 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전 사장이 김 기획관과의 특수 관계로 인해 국세청장, KB금융지주 사장 등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오히려 비토를 놓았다. 이번 건도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김 기획관이 크게 화를 냈다”고 말했다. 실제 김 기획관은 이 전 사장이 KB금융지주 회장직 후보에 올랐을 때 진동수 금융위원장에게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사장이 사퇴한 이유를 놓고 일부에서 구설이 나오는 것도 그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최근 캠코는 이 전 사장 재직시 제기된 광고선전비 관련 의혹에 대해서 자체 감사를 벌였다. 캠코 자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이 전 사장의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실제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캠코뿐만 아니라 감사원과 청와대 등에서도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전 사장이 떠난 캠코의 후임 사장 자리에 누가 임명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3일 마감된 캠코 사장 공모에는 장영철 미래기획위원회 실무단장(행시 24회)을 비롯해 김성진 전 조달청장(행시 19회), 최수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행시 25회) 등 10여 명이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인호 캠코 현 부사장, 김경호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행시 21회) 등은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장영철 단장이 거론되고 있다. 행시 출신으로 기획예산처에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 정부하에서 기획재정부와 미래기획위원회를 거쳤다. 재정부 시절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인 공기업 개혁 작업을 잘 이끌면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알려진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 정부의 숨은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이번 공모는 장 단장을 사장으로 앉히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캠코 임원추천위원회는 서류심사를 거쳐 11월 20일경 면접심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추천위원회가 서류와 면접심사를 통해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금융위원장 후보 제청과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달 중에 차기 사장이 선임될 전망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