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깨고 타 구단 입단·입단 타진한 축구스타…의리 대신 ‘룰’ 지킨 추신수
4개월간 침묵을 깨고 개막한 2021 K리그1, 전국 각지에서 6경기가 열리며 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하지만 수원 삼성과 광주 FC의 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누군가를 겨냥한 ‘저격성 걸개’가 걸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걸개에는 ‘은혜를 아는 개가 배은망덕한 사람보다 낫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걸개와 글귀는 백승호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걸개 글귀 중 ‘사람’ 부분이 ‘승호’로 변형되기도 했다.
신세계 구단 합류를 결정한 추신수가 지난 2월 25일 입국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신세계 유니폼을 들어 보이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백승호는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K리그 입단을 추진했다. 예상 행선지는 전북 현대였다. 김상식 감독을 비롯한 구단 구성원들도 관심을 인정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백승호는 성인무대로 올라서며 스페인 독일 등의 2부리그 무대에서 활약해왔다. K리그 입성이 실현된다면 그의 플레이를 국내 팬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유스 시절의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백승호는 국가대표 자원이다. 팬들로선 또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를 볼 수 있어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백승호의 이적은 암초에 부딪혔다. 2010년 바르셀로나 유학 당시 적을 두고 있던 수원 삼성과 계약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백승호는 유학을 떠나며 3년간 매년 1억 원씩 수원의 지원을 받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바르셀로나와 장기계약을 맺으며 스페인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백승호와 수원은 2차 합의서를 작성한다. 추가 지원이 이뤄졌고 합의서에는 ‘복귀시 수원 삼성 입단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북과 협상 소식이 알려지자 수원 구단은 백승호 측에 연락을 취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팬들이 백승호를 향해 ‘배은망덕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수원 구단과 마찰을 빚고 있는 백승호를 겨냥한 걸개가 등장했다. 백승호는 10여 년 전 했던 수원과 합의를 깨고 전북 입단을 추진한 바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2020년 12월 30일 FC 서울 입단이 발표된 박정빈의 사례도 유사하다. 고교 재학 중 독일 무대로 떠난 박정빈은 볼프스부르크, 카를스루헤 이외에도 덴마크, 스위스 무대를 거쳤다. 유소년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던 자원이다.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입단을 조율했던 백승호와 달리 일찌감치 서울에 합류해 기대치도 높았다.
하지만 박정빈은 전남 드래곤즈가 운영하는 유스팀인 광양제철고등학교 재학 중 무단으로 볼프스부르크 테스트를 받고 입단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남 구단은 유소년 선수임을 감안해 입단을 가로막지 않고 위약금을 낮추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었다. 다만 K리그 복귀시 전남에 우선 입단하는 합의서를 남겼다.
하지만 박정빈과 전남 간 합의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박정빈은 전남 구단에 공지 없이 서울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 입단 협상 중이었던 백승호와 달리 박정빈은 서울 입단이 완료된 상황이다. 박정빈 측이 전남 구단에 위약금을 내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박정빈은 FC 서울 입단 과정에서 ‘우선 입단’을 약속했던 전남 드래곤즈 구단 측에 연락조차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1990년대에 태어난 젊은 두 선수의 아쉬운 행보와 달리 커리어 최초 KBO리그행이 결정된 추신수는 ‘슈퍼스타’로서 품격을 보이고 있다. 약 20여 년간 미국 무대에서 활약한 추신수는 지난 2월 신세계 야구단 입단이 확정됐다.
추신수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부산수영초, 부산중, 부산고를 거칠 때까지 부산에서만 야구를 했다. 선수생활 내내 자신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만약 한국 무대에 뛴다면 부산에서 뛸 것”이라는 뜻을 수 차례 밝혔고 “부산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발언까지 했다. 부산은 학창시절 함께 성장했던 절친 이대호(롯데)가 활약 중인 곳이다. 또 외숙부 박정태를 보며 야구선수로서 꿈을 키웠던 배경도 있다.
그러나 추신수는 부산이 아닌 인천으로 향했다.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에서 당시 SK가 추신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추신수가 부산에 대한 애정을 수없이 드러내 왔기에 일각에서는 신세계 측의 지명권 판매나 추신수 영입 이후 트레이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세계는 편법 없이 인연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추신수도 롯데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신세계의 간절함에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고 ‘룰’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K리그 입단을 타진했거나 입단을 확정지은 두 스타와 대조되는 선택이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