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3년 연속 실적 하락세…승강기안전관리법 개정안 효과로 반전 예상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 빌딩. 사진=최준필 기자
현정은 회장의 아들인 정영선 씨가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현대투자파트너스, 최근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으로 상장을 완료한 현대무벡스 등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은 높지만, 아직까지 다른 계열사들은 매출이나 이익 규모 면에서 현대엘리베이터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16년 현대상선(현 HMM)과 현대증권(현 KB증권),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택배) 등을 떼어내면서 현대그룹은 어느새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됐다”면서 “현대엘리베이터가 다시 성장 스토리를 써 내려가야 이를 기반으로 외부 자금을 수혈한다든지 해서 M&A(인수합병)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영 외적 요인으로만 주가 출렁여
현대엘리베이터의 최근 수년간 실적은 신통치 못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7년 1조 9937억 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1조 7000억 원대까지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증권가 예상치는 1조 7000억~1조 8000억 원대를 맴돌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 3년 연속 역성장은 이미 확실해진 분위기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 여파가 컸을 당시의 수주 부진이 실적 악화의 주요 요인이다.
같은 시기 현대엘리베이터는 경영 외적 요인으로 주가가 널뛰었다. 2015년까지 이어진 쉰들러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현대그룹 분리, 대북사업 기대감 등으로 주가가 요동친 것이다. 2017년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기는 했지만, 이 당시 실제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대북사업 기대감 또한 높아졌지만, 이 역시 기대감일 뿐 실현된 것은 전혀 없었다. 이런저런 기대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실적은 뒷걸음질을 치고 주가만 출렁였던 셈이다. 이 당시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 “실적이 계속 나빠지는데 경영진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는 글을 연이어 올리는 등 내부 분위기도 좋지 못했다.
2009년 완공된 현대엘리베이터의 205m 초고속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 사진=연합뉴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15년 이상 된 노후 승강기는 24만 대로 전체의 33.9%에 달한다”면서 “2021년에는 신규 분양이 줄어들 수 있지만 강화된 안전관리법 시행으로 엘리베이터 교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엘리베이터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외국계 경쟁사들과 달리 할부 등 금융기법을 적용하고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라 교체시장에서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현대엘리베이터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2조 원을 돌파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다만 안전관리 차원에서 2인 점검 의무화가 도입됐는데, 이는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애널리스트 대상 간담회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해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도 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승강기안전관리법과 관련해 리모델링 현장이 확실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면서 “다른 경쟁사와 달리 국내 생산기지를 갖고 있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GBC 설계 변경에 아쉬움 내비치지만…
이런 가운데 현대엘리베이터 입장에서는 아쉬우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던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건설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 변경이다.
원래 GBC는 105층으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10조 5500억 원을 주고 사들인 삼성동 부지에 지상 105층(높이 561m) 타워 1개 동과 숙박·업무시설 1개 동, 전시·컨벤션·공연장 등 5개 시설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 높이를 대폭 낮추는 설계 변경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50층 높이 3개동 건물만 짓는 안이 가장 유력하다.
글로벌 10위 엘리베이터 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초고층 빌딩을 수주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초고층 빌딩은 수익성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미쓰비시와 오티스, 코네엘리베이터 등이 150~160층 높이의 최고층 신기록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각각 63층과 69층 높이인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과 서울 목동 하이페리온에 납품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같은 범 현대그룹이 짓는 GBC만큼은 수주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기대감이 컸다. 물론 현대차 입장에서는 초고층 엘리베이터를 실제로 납품한 기록이 없는 현대엘리베이터에 일을 맡기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현대엘리베이터는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최고층 엘리베이터 관련해서는 지난해 5월 세계 최초로 탄소 섬유 벨트 타입의 분속 1260m 엘리베이터 기술 개발에 성공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기술력을 자신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나 현대그룹은 GBC 수주를 통해 범 현대가와의 관계 회복, 현대엘리베이터의 기술력 과시 등을 꾀했던 것 같다”면서 “현 회장은 정몽구 회장과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크게 다투었고 최근 별세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는 경영권 분쟁마저 벌였다. 하지만 후계자들과는 잘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