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통 큰 투자 이어 디즈니 상륙 예정…국내 제작사 종속 우려, 도리어 기회 늘었다는 반론도
넷플릭스발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국내 진출에 토종 OTT들이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 5500억 원 투자에 국내 OTT들 ‘긴장’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13편 제작을 위해 올해 약 55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투자한 금액이 7700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 투자금액에서 넷플릭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독점 드라마 ‘스위트홈’, 영화 ‘승리호’ 등 넷플릭스가 내놓은 K콘텐츠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자 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시장에서도 지난해 가입자 수 2억 명을 넘겼다. 이번 대규모 투자는 K콘텐츠의 연이은 흥행을 발판으로 아시아 미디어 시장을 잡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넷플릭스의 아성에 국내 OTT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통신사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KBS, MBC, SBS)가 연합해 만든 웨이브는 올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8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으로 2024년까지 3900억 원을 쓴다. CJ ENM과 JTBC스튜디오의 합작법인 티빙은 향후 3년간 4000억 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입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현재 점유율 차이도 극명하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OTT 월평균 이용자 수는 넷플릭스가 637만 5000명, 웨이브 344만 2000명, 티빙 241만 명, KT 시즌 206만 명, LG유플러스 U+모바일 184만 명, 왓챠 92만 6000명 순이다.
한국OTT포럼 회장인 성동규 중앙대 교수는 “넷플릭스는 과거 실시간 방송에서 스트리밍 패턴으로 미국에서도 성공했고, 글로벌 기준을 만들어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여러 소비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선도적으로 만들어냈다”며 “제작부터 마케팅,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국내 OTT가 따라가기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했다.
여기에 콘텐츠 공룡인 디즈니플러스가 올해 국내 통신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상륙한다. 토종 OTT는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의 물량 공세까지 막아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해외 플랫폼의 미디어 성장에 통신사들이 합세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선도 감지된다. 통신사들이 자사 IPTV와 모바일 가입자 신규 고객을 늘리고 기존 고객 이탈을 막고자 마케팅 차원에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손잡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디즈니플러스 파트너사는 KT와 LG유플러스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업체들이 국내 진출하면 OTT 시장이 커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국내 OTT 입장에선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를 보강하면서 점유율을 높이듯 다른 업체들도 현지화 전략을 잘 펼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넷플릭스발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위협에 국내 미디어 시장이 흔들린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프레스 컨퍼런스가 2일 오전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가운데 배우 송중기가 포토타임을 갖는 모습. 사진=넷플릭스
#국내 미디어의 해외 플랫폼 종속 시작되나
미디어 산업이 해외 사업자에 종속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내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결국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앞서의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사업 구조는 제작비를 많이 주는 대신 콘텐츠 소유권을 보유해 콘텐츠 유통에서 얻는 수익도 다 가져가는 방식으로, 기존 방송사와 제작사가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와는 다르다”며 “국내 제작사들이 글로벌 유통에 따른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제작 측면에서도 한국형이 아닌 넷플릭스적인 콘텐츠만 요구할 수 있어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K콘텐츠로 발생하는 수익이 국내에 돌아와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넷플릭스의 투자 전략에 따라 국내 콘텐츠 시장 규모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에선 국내 제작사들에게 기회가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사 투자를 늘리면서 제작사들이 방송 미디어시장의 하청업체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사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게 됐다는 것. 미디어업계 다른 관계자는 “본래 콘텐츠의 가격이 제작비의 30%밖에 안 됐었는데 넷플릭스 투자로 제작 규모도 더 커지고 콘텐츠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해주는 환경이 마련됐다. 넷플릭스에 제공하면 콘텐츠가 넷플릭스가 진출한 전 세계 190개 국가에 방송돼 해외 진출도 용이하다”라고 했다.
토종 OTT가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 차별화에 성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TV에서 모바일기기로 바뀌었는데 케이블과 지상파들은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OTT뿐 아니라 지상파에도 위협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좋은 영화와 드라마 등을 끌어와 공급에 힘쓰는 플랫폼 경쟁이 아니라 제작비에 더 투자해 직접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하는 플랫폼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토종 OTT들이 글로벌화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기반을 만들어주며 뒷받침할 수 있다. 극본 공모 등을 통해 경쟁력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본력에 한계가 있는 제작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