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개봉 연기 끝 ‘제작비 회수’ 자구책…넷플릭스도 한국 콘텐츠 투자 적극적
‘승리호’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지만 영화계에서는 이미 넷플릭스와 대략적인 협의를 마치고 세부 사항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승리호’ 홍보 스틸 컷
‘승리호’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승리호’ 측이 이미 넷플릭스와 대략적인 협의를 마치고, 현재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둘러싼 영화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극장 개봉을 통해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을 것이란 회의적인 전망, 어떻게든 많은 관객에 작품을 공개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극장 상영 환경이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황에서 ‘손해’가 뻔히 보이는 데도 무작정 극장 개봉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제작진의 판단도 공감을 얻고 있다.
다만 문제는 ‘승리호’라는 영화가 갖는 상징성이다. 텐트폴로 꼽히는 200억 원대 블록버스터의 OTT 직행은 향후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쉽사리 개봉 일정을 정하지 못한 또 다른 블록버스터들은 물론 이른바 ‘코로나 시대’에 물량공세를 퍼붓는 대작 제작의 의미를 짚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영화계 지각변동 본격화
‘승리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우주배경 SF대작으로 주목받았다.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쓰레기 청소선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을 발견하고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송중기와 김태리, 진선규는 물론 극 중 로봇 역을 맡은 유해진까지 주연 배우들의 면면으로도 관심을 더했다. 당초 올해 여름 개봉을 계획하고 후반작업을 해왔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9월로 개봉을 변경했다가, 다시 12월로 연기한 상태였다.
이미 올해 4월 이제훈 주연의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하면서 영화계 안팎에서 시장 변화가 감지됐다. 사진=‘사냥의 시간’ 홍보 스틸 컷
‘승리호’ 제작진은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한 데다, 극장도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극장 상영만으로 24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넷플릭스와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개봉 성적은 물론 향후 해외 판매를 통한 매출 확보가 절실한 블록버스터란 점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전 세계 극장 상황이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해외 판매에도 기대를 걸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왜 넷플릭스인가
OTT 가운데 왜 하필 넷플릭스일까. ‘승리호’뿐 아니라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계약은 철저한 보안으로 이뤄지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 파악에는 한계가 있지만, 영화계에서는 “제작비 대부분을 보전해줬을 것”으로 예측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사 대표는 “117억 원이 투입된 ‘사냥의 시간’ 역시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저히 극장 개봉으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 공개는 결과적으로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회수하는 신의 한 수가 됐다”며 “‘승리호’와 넷플릭스 논의도 비슷한 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극장 개봉 이후 상영 환경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에 소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조건을 두루 감안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올해 개봉을 준비했던 제작비 200억 원대 블록버스터들이 12월로 자리를 옮긴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공유·박보검 주연의 ‘서복’을 비롯해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은 당초 여름 개봉 계획을 수정해 겨울 공개를 타진 중이다. 축소된 극장에 대작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 그렇다고 또 다시 개봉을 연기할 수도 없는 빡빡한 현실에서 찾은 협의라는 분석이다.
한국 영화 서비스에 넷플릭스도 적극적이다. 그동안 서비스 이용 회원 등 수치에 관련해서는 철저하리만치 ‘비공개’ 원칙을 고집한 넷플릭스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OTT 시장의 확장에 따른 ‘호재’ 덕분인지 실적 발표에 적극적이다. 실제로 20일 넷플릭스가 발표한 2020년 3분기 실적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인 63억 800만 달러(약 7조 1600억 원)를 뛰어넘는 64억 4000만 달러(약 7조 3000억 원)를 기록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 증가의 일등공신으로 “한국과 일본”을 꼽았다. 한국 콘텐츠 투자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극장 관람료 인상…자구책인가 자충수인가
‘승리호’의 넷플릭스 직행 여부를 둘러싸고 영화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CJ CGV가 10월 26일부터 상영관에 따라 관람료를 최대 2000원까지 올리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CGV는 3년 내 전국 직영점 119곳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35~40곳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2000억 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타파하기 위한 결정이다.
실제로 9월 한 달간 극장을 찾은 누적관객은 290만 명에 불과하다. 2019년 9월 극장 관객 수인 1174만 명과 비교해 무려 79% 줄어든 수치다. CGV는 관람료 인상과 직영점 축소에 대해 “뼈를 깎는 자구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견은 분분하다. 가뜩이나 극장 관객이 줄어든 상황에서 관람료 인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CGV를 시작으로 또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체인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관람료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살아남으려는 자구책이 오히려 관객의 반감을 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