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상장 등 이커머스 업계 격변에 급선회…부실한 체력·치열해진 경쟁 등 극복 숙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가 급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 맞춰 당초 계획을 변경해 상장을 공식화했다. 사진=컬리 제공
3월 11일(현지시간)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2월 26일 김슬아 대표는 팀장급 이상 직원들을 모아놓고 IPO 추진을 공식화했다. 마켓컬리는 올해 초까지 상장에 거리를 뒀다. 2~3년 내 흑자로 전환한 이후 상장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불과 1개월 만에 입장을 급선회한 셈이다.
연내 상장 추진으로 방향을 튼 배경으로 최근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변화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1위 네이버(17%)와 2위 쿠팡(13%)은 최근 각각 추진한 합종연횡과 IPO를 성공시켰다. 3위 이베이코리아(12%)는 매각을 공식화했다. 3월 16일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이 주관한 매각 예비입찰에는 롯데, 이마트, 11번가 모회사인 SK텔레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IPO를 발판으로 국내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겠다는 계획이다. 3월 11일(현지시간)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성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40%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했다. 46억 달러(약 5조 22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전국 물류센터 등 인프라 강화에 투자하고 향후 5년간 5만 명을 추가로 직고용할 것”이라며 “당분간 국내 시장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유통·물류업계 1위와 ‘반쿠팡’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3월 16일 신세계그룹과 2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지난 1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회동한 지 2개월 만이다. 네이버는 신세계그룹의 7300여 개 오프라인 매장과 SSG닷컴의 물류센터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지난해 10월에는 CJ대한통운과 3000억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하며 약점으로 꼽혔던 배송·물류망을 보완했다.
마켓컬리 고위관계자는 “2016년 점유율 1~4위가 이베이·11번가·네이버·위메프 순서였지만, 지난해에는 네이버와 쿠팡이 독보적인 1~2위다. 급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투자 유치는 준비 기간만 6개월이 소요되고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며 공모시장이 활발한 상태다. 투자 유치보다 IPO를 통한 자금조달을 추진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과 네이버가 2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하며 결속력을 강화했다. 사진=신세계 제공
#마켓컬리 상장에 엇갈린 시선
상장과 관련 마켓컬리는 국내와 해외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 적자 기업도 코스닥이 아닌 코스피 상장이 가능해졌다. 3월 4일부터 한국거래소는 미래 성장형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코스피 상장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시가총액이 1조 원이면 적자 기업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됐다. 마켓컬리의 기업가치는 1조 원 정도로 평가받는다. 쿠팡을 따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마켓컬리 매출과 순손실은 각각 1조 원, 10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매출은 전년(4289억 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가운데 순손실은 같은 기간 대비 소폭 개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원 수는 700만 명에 이른다. 재구매율은 60%대로 업계 평균치(29%)보다 2배 이상 높고, 총 4개의 자체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다만 쿠팡처럼 뉴욕행을 택하기엔 아직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켓컬리는 수익성, 매출액, 현금흐름 등 뉴욕증시의 3가지 상장 요건 중 매출액만 충족된 상태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 서류와 2019년 마켓컬리의 감사보고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투자 재무 활동을 뺀 영업 현금흐름액에서 쿠팡은 3411억 원을, 마켓컬리는 마이너스(-) 754억 원을 기록했다. 이 밖에도 상장을 위해서는 투자금,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총자산, 총부채 등 재무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손을 잡고 신규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마켓컬리 기업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상장을 위해서는 손실을 줄이고 영업 현금흐름을 개선해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마켓컬리가 지난해와 같은 성장세를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켓컬리는 ‘샛별배송’이라 불리는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집중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쟁업체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SSG닷컴은 이마트의 강점인 신선식품을 배송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했고, 이마트 신선식품은 네이버 장보기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쿠팡은 IPO로 확충한 자금으로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를 강화할 예정이다. 3월부터 GS리테일 자회사 GS프레쉬몰은 11번가, 위메프 등과 손을 잡고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형마트가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해 온라인 전환을 가속화되고 있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이마트는 141개 점포 중 PP(피킹&패킹)센터를 구축한 점포가 110여 개에 달하고 추후 이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새벽·당일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풀필먼트 및 라스트마일 등 배송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140개 모든 점포에 온라인 물류 기능을 추가해 전국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오는 7월에는 GS리테일과 GS샵이 합병해 온·오프라인 시장을 통합하고 신선식품 플랫폼을 강화할 방침이다.
결국 마켓컬리 입장에서는 다른 승부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켓컬리가 네이버와 이마트의 협력처럼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연합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라리 상장보다는 글로벌 기업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기업공개를 추진하다 업계 경쟁 심화로 연기한 적이 있다. 이후 딜리버리히어로(DH)에게 인수돼 국내 배달앱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유통 대기업이나 덩치가 크지 않은 업체들까지 마켓컬리에 사업을 제안해보는 상황”이라며 “예전부터 마켓컬리에 제안이 많이 왔을 것이다. 상장을 공식화한 시점에선 제휴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마켓컬리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입장을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