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위원장 여성 비하 한 달여 만에 개·폐회식 총괄책임자 여성 코미디언 돼지에 비유해 비난 세례
와타나베 나오미. 사진=와타나베 나오미 인스타그램
이번에는 개·폐회식의 총괄책임자,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66)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3월 17일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은 “사사키 디렉터가 여성 코미디언의 용모를 비하한 일이 있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사키 디렉터는 작년 3월 인기 코미디언인 와타나베 나오미를 돼지에 비유하고 모욕하는 연출안을 메신저 라인(LINE)을 통해 담당 팀원들과 공유했다.
올림픽이 일본어 발음으로 오린핏구인데, 핏구와 유사한 발음 피그(pig)를 연계해 ‘와타나베가 돼지로 분장하고 익살스럽게 연기토록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계획안은 팀원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 폐기됐다”고 한다. 당시 여성 팀원은 “용모를 그렇게 비유하는 것이 기분 좋지 않다”고 지적했고, 다른 남성 팀원 역시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사사키는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반성하고 있다”고 주간문춘에 밝혔다.
기사가 보도된 후 일본 포털사이트에는 사사키를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사람을 동물에 비유한 것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표현”이며 “농담일지언정 총괄책임자가 올림픽 최대 행사인 개막식 무대 연출안을 그처럼 말한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는 것이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3월 18일 사사키 디렉터는 조직위를 통해 사죄문을 발표하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올림픽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일본은 개·폐회식 총괄책임자까지 교체하는 이례적인 사태를 맞게 됐다. 일본 언론들은 “코로나로 국민들의 지지가 저조한 상황 속에서 3월 25일부터 성화봉송이 시작된다”며 “이처럼 중대한 국면에 대회관계자의 ‘설화’가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고 질타했다.
파문은 해외로까지 일파만파 확산되는 양상이다. 외신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올림피그(돼지)’라는 단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며 잇달아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먼저 워싱턴포스트는 “도쿄올림픽 개·폐회식 연출 디렉터가 여성 코미디언에게 경멸적인 멘트를 한 것으로 드러나 사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리 전 회장이 여성 멸시 발언 논란 끝에 사임한 지 한 달여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문춘이 공개한 라인 대화 내용. 사사키는 와타나베를 어떻게 하면 귀엽게 보여줄까라고 운을 뗀 후 돼지 이모티콘과 함께 그를 돼지로 분장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뉴욕타임스는 “체형과 연계해 ‘돼지’ 분장을 하도록 제안한 것은 결코 위트 있는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논평을 실었다. 덧붙여 신문은 “주간문춘의 폭로 후 하루 만에 사사키가 사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컨대 “모리 전 회장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매체는 “83세의 모리 전 회장은 당초 자신의 성차별 발언은 사과했지만 ‘사임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또 일본 정부 고위층 누구도 ‘그에게 떠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서명과 야당 여성 정치인들의 항의, 올림픽 스폰서로부터 염려가 나온 후에야 모리 씨는 사임했다”고 되돌아봤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빗대어 ‘고령 남성들의 모임’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에 조직위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로잡고자, 올림픽 개최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여성을 리더에 배치’하는 등 부랴부랴 힘쓰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는 “사사키의 신속한 사퇴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아니겠느냐”며 조직위의 자세를 분석했다.
이밖에도 로이터, AF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은 “스캔들에 휩싸인 도쿄올림픽” “국민 지지가 낮은 도쿄올림픽에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기다” “대회 4개월을 앞두고 개최 불확실성 하나가 더 추가됐다”며 논란을 상세히 전했다.
올림픽이 코앞인데, 자국의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최근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 절반은 대회 개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 ‘다양성과 조화’를 내세운 도쿄올림픽의 이념에 어긋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점점 국제사회에서도 여론을 끌어들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