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파든 퓨전파든 ‘뚝심’ 끓여내야
▲ 왼쪽부터 일본보다 일본적인 라멘 전문점 ‘나고미라멘’, 한국 입맛에 맞춘 북해도식 요리 ‘시찌린’ |
◇ 라멘전문점 ‘나고미라멘’
“일본 음식이 왜 세계화가 가능했을까요? 바로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와사비(고추냉이)가 빠진 초밥을 상상해보세요. 변형된 초밥이었다면 과연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일본에서는 한국식 김치를 내놓는 음식점이 인기입니다. 제대로 하는 집이라는 인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일본 라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일본라멘전문점 ‘나고미라멘’을 운영하고 있는 이강우 씨(35)는 외국 음식은 현지보다 더 현지의 맛을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씨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40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큐슈지방의 돈코츠라멘 프랜차이즈 본사에 입사, 7년 동안 경력을 쌓은 라멘 전문가다. 돈코츠라멘은 돼지 뼈를 우려낸 국물에 삶은 돼지고기 고명인 차슈를 얹어내는데 무엇보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가 특징.
그는 일본에서 매출이 떨어지는 점포를 맡아 전국 2위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단다. 5년 전 일본 직원들과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라멘전문점에 들른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지나치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라멘을 맛보고 제대로 된 일본 라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그리고 2008년 7월, 일본 음식이 가장 먼저 들어온 홍대 앞. 25평 규모의 식당에 부드럽다는 뜻의 일본어인 ‘나고미’라는 간판이 붙었다. 이 씨는 면을 직접 뽑고 일본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현지 라멘을 그대로 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에서도 지역마다 라멘 맛이 다릅니다. 관동 지방에서는 깔끔한 맛의 소유(간장), 미소(된장)라멘이 인기가 있지 걸쭉한 국물의 돈코츠라멘은 잘 안되거든요. 서울도 관동지방과 비슷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제대로 된 돈코츠라멘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다. 일매출이 4만~5만 원에 불과했던 것. 손님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맛있다와 못 먹겠다는 반응으로 분명히 나눠졌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독성이 있다”며 다시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골손님이 점점 늘어났고 식사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까지 연출됐다. 일매출은 1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도 계획 중인데 가맹점은 한국보다 일본에 먼저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자신이 일했던 일본 라멘 프랜차이즈 관계자가 홍대 점포를 방문, 그가 만든 라멘 맛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일본 지역에 가맹점을 내기로 계약을 맺었단다. 일본에서 배워온 음식을 역수출하는 셈이다. 이 씨는 “외국 음식의 경우 무엇보다 제대로 된 맛을 구현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가지고 운영하다보면 입지가 좋지 않아도 결국 손님이 스스로 찾아오는 맛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북해도식 요리 전문점 ‘시찌린’
“일본인들이 현지에서 부담 없이 즐겨먹는 대중음식이 왜 한국에 들어와서는 고급 요리라는 인식으로 비싸게 팔리고 있을까요? 잘못 형성된 고정관념 때문이죠. 맛과 가격이 모두 정직한 일본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가로수길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시찌린’을 운영하고 있는 고광형 씨(43)는 올해 5월, 일본인 주방장 노기 아키라 씨(62)와 손을 잡고 북해도식 일본 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노기 씨는 일본 음식 전문가로 한국 음식과 자신의 고향인 북해도 음식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 수십 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일본 대중 음식의 한국화를 시도해왔다고 한다.
시찌린의 메뉴는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 참숯화로구이, 샤브샤브와 스키야키(불고기와 전골의 중간 형태인 볶음 요리), 가마솥밥과 가쯔(튀김)정식, 면 요리가 그것. 모든 음식은 일본 전통의 방식으로 만들되 양념이나 재료 등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새롭게 구성했다.
대표 메뉴인 참숯화로구이의 경우 일반 고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을 낸 테이블이 아니라 일본식 화로인 시찌린(숯불을 일으키거나 취사할 때 쓰는 흙으로 만든 간편한 화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석쇠를 얹어 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고기의 경우 일본에서는 양념을 한 고기(야키니쿠)를 선호하지만 생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해 생고기와 양념고기를 고르게 구성했다.
가마솥밥 역시 일반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돌솥밥과 다른 형태다. 보통의 경우 밥에다 은행이나 대추 밤 등을 넣은 영양솥밥의 형태이지만 이곳에서는 불린 쌀에 일본식 간장 소스 양념을 넣고 그 위에 장어 굴 날치알 김치불고기 등 다양한 토핑을 얹는다. 샤브샤브도 다른 곳과 달리 육수에 처음부터 간을 해서 속 재료가 다 익지 않아도 국물을 떠먹을 수 있도록 했다. 북해도에서 인기인 돼지고기 샤브샤브는 한국인의 입맛과도 잘 맞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뉴 중 하나라고 한다. 음식 값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게 책정했다.
이렇듯 독특하지만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한 음식에 인근 주민들과 직장인들, 가로수길 관광객들이 좋은 반응을 나타내면서 고 씨의 점포는 월 평균 4000만~5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단다. 점심에는 가마솥밥과 정식 종류가 많이 나가고 저녁에는 화로구이 샤브샤브 등이 많이 나가는 편이라고. 손님은 지역 특성상 젊은 층이 많은 편인데 인근에 광림교회, 중대형 아파트와 사무실 병원 등이 혼재해 있어 10대 청소년과 중장년층의 고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사실 그는 이전에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서 유명 프랜차이즈 분식점을 10년 정도 운영한 외식업 베테랑이다. 장사는 잘 되었지만 같은 메뉴를 오래 취급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됐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 음식을 택했다고 한다. 2층 점포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업 후 2만~3만 부의 전단지와 1만 장 정도의 10% 할인 쿠폰을 인근 지역에 배포하기도 했다. 고 씨는 “외국 음식의 경우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는 작업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의 방식이 그 바탕이 됨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