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10명 중 2명 유죄…“드디어 수사 정당성 확인” “과잉수사 방증” 엇갈린 해석
하지만 법원의 반응은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분위기다. 특히 재판 개입 등 1심에서 유죄로 나온 일부 혐의들에 대해서는 2심에서 피고인들의 법적 논리 전개 여부에 따라 무죄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4명의 피고인 중 2명(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은 무죄를 선고 받는 등 지금까지 1심 선고가 이뤄진 10명의 전·현직 판사 가운데 8명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강행했던 수사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법은 3월 23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사진)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윤종섭)는 3월 23일 오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시에 시작된 1심 선고는 방대한 사건 혐의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3시간 40분의 설명 끝에 양형 선고가 이뤄졌을 정도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모임 활동을 방해한 것과, 국회의원이 피고인인 사건 결론을 알아내기 위해 재판부 심증을 파악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또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와 헌재 파견 법관들을 동원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에 대해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도하던 소모임을 해소시키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의견에 동의해 (소모임) 중복가입 해소 조치 공지를 게시하게 했다”고,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 대해서는 “헌재 파견 법관에게 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헌재 사건 정보와 자료를 전달하게 했고,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재판 독립에 반하는 위법 부당한 보고서를 3차례나 작성·보고하게 했다”고 유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두 명 모두에게 실형 선고는 하지 않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또,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통진당 의원 선고 판결 누설 혐의)와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통진당 의원 항소심 특정 재판부 배당 지시)은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 임종헌 전 차장의 직접 지시를 받은 핵심 고위법관의 유죄 선고는 양 전 대법원장 등 수뇌부들에게도 유죄가 나올 것임을 보여주는 재판부의 판단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날 판결은 검찰 입장에서는 뜻 깊은 판단이었다. 사법 행정권 남용 수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던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전·현직 법관 14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 10명에 대한 1심 결과가 나왔는데, 유죄 판단은 이날 2명이 처음이었다. 나머지 8명은 모두 무죄였다. 그동안 법원 안팎에서 ‘수사권 과잉 사례’라는 비판이 나왔던 것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게 해준 법원의 판단이었다는 얘기다.
실제 수사팀은 재판 결과 직후 “사법행정권자의 위헌적인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유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법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한 사법행정권 남용 등 다수의 범죄사실에 대해 다양한 법리적, 사실적 쟁점이 심리됐고 그 판단 결과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다. 판결문 등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1심 결과가 잇따라 무죄가 나오면서 법원 내부에서 ‘검찰이 너무 과잉으로 수사한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던데, 이번 핵심 고위법관들의 유죄 판단으로 수사의 정당성을 확인받았다고 볼 수 있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 임종헌 전 차장의 직접 지시를 받은 핵심 고위법관의 유죄 선고는 양 전 대법원장 등 수뇌부들에게도 유죄가 나올 것임을 보여주는 재판부의 판단이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은 23일 선고를 진행한 재판부가 맡고 있어, 그만큼 유죄 판단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힘을 받는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1심 재판 결과가 예상대로 나왔지만 2심 재판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재판 개입 의혹 등의 경우 유무죄 판단 등이 엇갈린 것도 아니기 때문에 2심에서 다퉈볼 여지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며 “방 전 부장판사와 심 전 서울고법원장이 무죄를 받은 혐의인데, 이규진 전 상임위원는 유죄를 받은 부분들을 보면 다소 법적으로 판단이 달라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직권남용 의혹 중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유죄와 함께 집행유예 정도가 선고될 것으로 다들 예상했고, 예상대로 선고 결과가 나왔지만 개별 혐의에 대해 판단이 바뀌면 얼마든 양형도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전 상임위원과 이 전 실장은 일부 유죄 판단에 대해 항소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당시 전·현직 법관 14명을 기소해 10명에 대한 1심결과가 나왔는데, 유죄 판단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처음이다. 나머지 8명은 모두 무죄였다.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강행했던 수사가 ‘검찰권 남용’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일요신문DB
특히 대대적인 검찰 수사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사건을 처음 배당한 뒤 특수부 3개 부서를 동원, 8개월 넘게 이뤄진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했지만 여태껏 1심 판단이 나온 10명의 판사 가운데 2명만 집행유예로 유죄를 선고받는 데 그친 ‘과도한 검찰 수사권 남용’이라는 비판이다.
최근 옷을 벗은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침묵하고 있지만, 진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수사권을 과도하게 남용한 사건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특수부를 대거 동원해놓고 대부분 무죄가 나오고 있는 이번 사건”라며 “10명 가운데 2명만 유죄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수사가 곁가지, 불필요한 요소들까지 억지로 수사해 기소했다는 방증인데 여권이 윤석열 총장을 비판하면서도 법원 사건은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에 연루됐던 한 법원 관계자는 “당시 법원 판사들의 이메일이나 연락 기록 등을 확인해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찾아낸 것에 대해 ‘과하다’는 생각을 한 판사들이 많다. 특수 수사를 이렇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 학을 뗀 판사들도 있다”며 “대법원까지 모두 선고가 나려면 앞으로 2~3년은 더 걸릴 것 같다. 그 정도 시간이 흘러야 법원행정처 남용 검찰 수사에 대한 진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