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고 표 잃고… ‘삼수’도 모자라나
▲ 07년 당시 2014평창동계올림픽유치성공 다짐 간담회에 참석한 이건희, 박용성 IOC 위원.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미지 구기고 실리 잃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 그것도 특히 독일의 견제가 맞고 또 논리상 한국은 할 말이 없는 ‘자충수’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은 지난 10월 28일(한국시간) ‘어스타임스’라는 인터넷 미디어가 IOC총회가 열리던 멕시코 아카풀코 발 기사로 ‘IOC 윤리위원회가 평창을 조사하고 있다(IOC ethics commission to probe Pyeongchang bid)’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내용은 ‘최근(10월 말) 대한항공과 국제빙상연맹(ISU)이 쇼트트랙월드컵 후원계약을 맺고,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도 국제조정연맹(FISA)의 스폰서를 맡았는데 이는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IOC의 규정위반이다’라는 것이다. ISU의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과 데니스 오스왈드 FISA 회장은 동계올림픽 유치 결정에 투표권이 있는 현역 IOC 위원이고, 조양호 한진그룹(대한항공의 모그룹) 회장은 평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윤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조사한다는 보도였다. 이 기사는 올림픽 유치 전문사이트인 ‘게임스비즈닷컴’이 인용 보도했고, 이를 한국 언론이 즉시 비중 있는 뉴스로 다뤘다.
흥미로운 것은 어스타임스에 있다. 이 매체는 영국에 기반(UK Limited Company가 운영)을 두고 있지만 이용자의 80% 이상이 북미권(주로 미국)이다. 특히 편집장을 비롯 주요 필진은 독일의 유명한 뉴스 에이전시인 GMBH 출신들이다. 실제로 이번 어스타임스의 기사는 독일의 유명 통신사 dpa가 소스임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통상 IOC는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위원회 내부 정보가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누군가 ‘언론플레이’를 위해 흘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럽계 IOC 위원이 IOC내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크게 보도됐다는 사실이다.
IOC 윤리위원회는 ‘대한항공이 최근 국제빙상연맹(ISU)과 맺은 후원 계약이 규정에 어긋난다’며 평창유치위원회에 IOC 규정을 준수하라는 경고를 보냈다(11월 4일 AP통신 보도). 또 IOC는 ‘대한항공과 ISU는 2018년 유치 도시를 결정하는 2011년 7월 IOC 총회 이후로 후원 계약을 미루기로 합의했고, FISA와 후원 계약을 체결한 삼성전자는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한국은 이번 사건으로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돈으로 IOC의 표를 사려고 한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생채기를 입었다.
또 문제의 중심에 있던 데니스 오스왈드 FISA 회장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더반의 개최지 결정투표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귀중한 지지표 하나가 날아갔다. 결국 한국은 정작 돈을 쓰면서 이미지도 구기고, 실리도 잃은 것이다.
현재 권력 vs 미래 권력
이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IOC에 대한 한국(정부, 기업, 평창 모두 포함)의 대응이 서투르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의 사면 결정과 관련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 자체가 엄청난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앞서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그런 말은 안 했어야 했다. 올림픽유치 경쟁을 하는 상대가 이런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오히려 창피스러운 일 아니냐”고 지적한 바 있다. 김운용 IOC 전 부위원장도 “IOC에는 삼성을 포함해 11개의 TOP스폰서가 있다. 그리고 스폰서십을 통해 올림픽 유치 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IOC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국 정부의 이건희 회장 사면 이유에 유럽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 스폰서 계약으로 다시 구설에 올라 안타깝다. IOC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2014 평창유치위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에 따르면 현재 114명의 IOC 위원 중 아프리카는 16개국 18명, 미주 14개국 20명, 아시아 21개국 24명, 유럽 26개국 47명, 오세아니아 3개국 5명 등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과거 유럽의 식민지로 유럽의 영향력을 직접 받고 있고, 심지어 영연방 국가에 속한 경우가 많다. 오세아니아와 캐나다도 경향이 비슷해 기본적으로 유럽세가 뭉치면 당해내기가 힘들다. 총력을 기울여 제대로 대응해도 평창의 3수 성공이 낙관적이지 않은데 이번처럼 자충수를 두면 패배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에서는 당시 약점(자격정지)이 없었던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해외법인망을 적극 활용하고, 직접 전면에 나서기도 했지만 푸틴(당시 대통령, 현 총리)이 이끄는 러시아에 패했다. 평창의 라이벌인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세는 이같은 한국의 유치활동 방식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운용 위원은 “요즘 IOC의 내부에는 현재 권력(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미래 권력(독일의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평창의 상대가 2007년에는 푸틴이었지만 내년에는 바흐(뮌헨을 의미)인 것이다. 뮌헨 측은 이번 대한항공-ISU 파문에도 겉으로 신사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로게 위원장이 이건희 회장의 IOC 위원 자격 회복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처리한 것을 바흐는 물론 모든 IOC 위원들이 다 알고 있다. 한국이 보다 주도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