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때 ‘세종역’ 공약 내세워…강 의원 “부친이 40년 전 취득한 땅, 그쪽에 역 건립 힘들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해찬 선거캠프 특보단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2014년엔 이춘희 세종시장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강 의원은 세종 토박이다. 그의 선친은 충남 연기군(세종시 전신)에서 ‘강약국 약사 선생님’으로 통했던 강기세 전 충남도 광역의원이다. 강기세 전 도의원은 1991년 6월 20일 펼쳐진 지방선거에서 충남 연기군 제2선거구에서 당선됐다. 소속 정당은 노태우 정부 집권여당 민주자유당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지역구인 충남 연기군은 세종특별자치시가 됐다. 하지만 세종시가 생기기 앞서 강 전 도의원은 별세했다. 2003년이었다. 생전에 강 전 도의원이 갖고 있던 땅이 있었다.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 소재 토지였다.
강준현 의원 모친이 소유한 토지 8필지 중 7필지가 위치한 곳. 사진=이동섭 기자
이 토지는 강 전 도의원이 별세한 뒤 배우자 이 아무개 씨에게 상속됐다. 강준현 의원 모친이다. 국회의원 재산공개에 따르면 강 의원 모친이 발산리에 보유한 토지는 1442㎡다. 총 8필지로 약 437평 규모다. 공시지가에 따른 토지 가격은 3억 1303만 8000원. 3.3㎡(약 1평)당 71만 6000원 정도의 평가를 받는 셈이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은 발산리 인근 개발 가능 지역 토지 가격이 공시지가보다 훨씬 높게 책정된다고 했다. 구매 수요가 넘치는 땅이라는 이유다.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발산리 소재 토지 공시지가는 거의 그대로”라면서도 “호가는 2017년 기준으로 3~4배가 높아졌다”고 했다. A 씨는 “최근엔 3~4배 높아진 호가에도 땅 주인들이 토지를 판매하지 않는다”면서 “그야말로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고 발산리 토지거래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토지 인근에 KTX 세종역이 들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 A 씨는 “지금까지 두 차례 예비 타당성 조사 용역을 2차례 거쳤는데, 모두 경제성 평가에서 1을 넘지 못했다”면서도 “KTX 세종역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A 씨는 “대전에서 세종으로 들어오는 큰 도로 기준으로 왼쪽이 그간 KTX 세종역 후보지로 꼽혔는데, 최근엔 대로 오른편 산 밑에 역사가 들어선다는 소문도 돈다”고 귀띔했다.
A 씨는 “발산리 일대 토지는 세종시가 들어선 뒤 줄곧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를 상회했다”면서 “KTX 세종역 이야기가 나온 2017년 기준으로 따지면 지금 호가는 2~4배 더 올랐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 땅값은 이미 많이 올랐다. 호남 고속철도 터널 인근(강 의원 모친 토지에서 300m 가량 떨어진 위치)에 밭 900평 부지가 있는데 평당 1200만 원을 쳐준다고 해도 안 팔았다. 평당 1200만 원에 900평이면 100억 원 정도인데도 안 판 거다.”
대전지역 다른 공인중개사는 “지금도 발산리에 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지역”이라고 했다. 그는 “만약 KTX 세종역을 짓는다는 방침이 최종 확정되면 토지 가격은 3~4배 정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에 위치한 발산1길. 도로 왼쪽은 그린벨트 지역이며 오른쪽 표시된 부분에 강준현 의원 모친이 소유한 토지 7필지가 위치해 있다. 사진=이동섭 기자
일요신문 취재 결과 강 의원 모친이 소유한 토지 8필지 가운데 7필지는 개발이 가능한 구역이었다. 길 하나 차이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빗겨나 있다.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1필지의 토지 면적은 10㎡로 강 의원 모친이 보유한 필지 중 가장 작은 규모였다.
3월 24일 취재진이 토지를 직접 방문했다. 그린벨트가 아닌 7필지 위엔 현재 창고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엔 크레인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그리고 2차선 도로인 발산1길을 건너면 나머지 1필지가 있었다. 이곳은 그린벨트로 묶인 곳인데, 강 의원 모친이 보유한 토지는 도로와 연결돼 있지 않은 맹지였다.
길 하나 사이를 두고 그린벨트와 개발 가능 구역이 나뉜 것에 대해 세종시청 관계자는 “(그린벨트로 묶여있지 않은 강 의원 모친 토지는) 원래부터 그린벨트로 묶여있지 않았던 토지로 보인다”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된 이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강 전 도의원이 생전 구매했던 토지는 배우자에게 상속된 이후 KTX 세종역 후보지 인근이라는 이유로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산리 인근 부동산 업계에선 ‘KTX 세종역 테마’ 바람을 불러일으킨 중심에 강준현 의원도 존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발산리에 KTX 세종역을 신설하자는 의견은 2015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강 의원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더불어민주당 세종시당 상임부위원장, 세종시 인재육성재단 상임이사,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등 직책을 역임했다.
강 의원은 2017년 1월 세종시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됐다. KTX 세종역 건립에 대한 첫 번째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했던 해가 2017년이었다. 강 의원은 4월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KTX 세종역 관련 사안은 국회의원과 시장의 업무였으며 나와는 상관이 없다”면서 “나는 부시장으로서 정무직만 하고 보좌 업무를 담당했다. 나는 초선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2018년 7월까지 정무부시장을 지내던 강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져 세종을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최측근’인 강 의원이 출마하는 것은 세종시 지역구가 분구되기 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종을을 지역구로 둔 강 의원은 선거 유세 때 KTX 세종역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KTX 세종역 후보지로 꼽히는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는 세종갑 지역구에 해당한다.
강 의원은 2020년 4월 7일 테마별 릴레이 정책발표회에서 행정수도 기능 제고를 위한 KTX 세종역 설치 공약을 발표했다. 공공기관과 세종시민이 인근 도시역(오송역)을 이용해야 하는 비효율성을 보완하고 수도권-호남권-영남권 등 세종시 접근성을 향상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강 의원은 “KTX 세종역은 인구증가 및 중앙기관 추가이전 등 수요 환경변화로 다시 타당성 조사가 추진되고 있다”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해 호남고속철도에 역사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여의도에 입성한 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KTX 세종역 건립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KTX 세종역은 ‘지역 갈등’을 촉발한 매개체로 남아 있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KTX 세종역 신설을 두고 충청권 지자체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반발 사유는 KTX 운행 속도 저하와 편의성 하락이다.
당선 이후 강 의원은 2020년 7월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KTX 세종역만 보면 개인적 생각이지만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KTX 세종역이 들어서는 경우 상시 정차가 아니고 혼잡시간대에만 정차하는 것으로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 의원은 “지역 국회의원들과 만나 대화를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강 의원은 국토교통부 등 공공기관 업무 관계자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사전 심사를 거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역 정가에선 오래전에 사놓은 땅이니 ‘투기 논란’은 피해갈 수 있지만, 모친이 보유한 땅 인근에 공공 교통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하고 이를 추진하는 건 이해충돌 사유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한 야권 관계자는 “가족이 가진 땅에 KTX 세종역 설치를 추진하는 건 ‘권력형 재테크’ 아니냐”고 반문했다.
의혹과 관련해 강 의원은 4월 2일 “기술적으로 거기(발산리)엔 KTX 역이 안 생긴다”면서 “해당 부지가 터널과 터널 사이기 때문에 열차 감속이라든지 정차 등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역을 건설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20대 총선 당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 공보물. KTX 세종역 추상도가 나와 있다. 사진=국민의힘 세종시당
강 의원은 “모친이 갖고 있는 대지는 부친이 40년 전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취득해 상속한 땅이다. (KTX 세종역 예정 부지는) 대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총선 당시 ‘KTX 세종역 신설’을 공약한 것에 대해선 “이해찬 대표님이 공약을 했고, 주민들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공약했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KTX 역이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세종시가 앞으로 행정수도가 되면 상징적으로 역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얘기가 있었다. 역사 위치를 바꿔서라도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꼭 그곳(발산리)에 KTX역을 짓겠다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KTX 역 위치가 결정된 건 아니다. (KTX 세종역 입지 선정)에 가장 중요한 건 안전과 기술(적인 요소)이다.”
강 의원을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KTX 세종역 신설은 주변 지자체 반대를 딛고 사업을 추진할 여력을 갖춰가고 있다. KTX 세종역 경제성 분석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 수치는 2017년 5월 사전 용역 조사에서 사업 추진 요건인 1에 한참 못미치는 0.59를 기록했다. 그러다 2020년 7월 발표된 2차 사전 용역 조사에서 KTX 세종역 B/C는 0.86으로 올랐다. 여전히 사업 추진 요건엔 못 미치지만 세종시 정가에선 ‘KTX 세종역 추진까지 6, 7부능선은 넘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춘희 세종시장. 사진=박은숙 기자
이춘희 세종시장은 2020년 7월 9일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사전 용역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B/C가 높아진 것은 세종시 인구가 늘어나고 행정수도로 발전함에 따라 미래 통행량이 증가해 국가교통수요 예측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면서 KTX 세종역 건설 계획을 구체화한 바 있다.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예비타당성 조사 사전 용역에서 두 차례 점수가 미달됐지만, KTX 세종역은 언젠가는 들어설 것이라 본다”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사전 용역 점수가 점점 오르고 있다. 머지않아 ‘커트라인’인 1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 이곳(발산리) 땅을 구매할 기회”라고 했다. 지금까지 KTX 세종역 타당성 조사 용역은 발산리 인근 부지만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용역을 해봤더니 부정적인 결론이 나왔다”면서 발산리 인근에 KTX 세종역이 들어설 가능성을 다시 한번 일축했다.
이제 관심은 정부가 발표할 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초안에 쏠린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철도망 구축 계획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초안 공개는 기존 2월 공개 예정이었다가 연기됐다. 공개 시기는 ‘상반기 내’가 유력하다.
한편, 세종시는 최근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에서 발산리 땅을 제외해 빈축을 샀다. 세종시 연서면 소재 ‘스마트국가산업단지’ 예정지 1933필지에 대한 전수조사는 이뤄졌지만, 연기비행장(연기리·보통리 일대)과 KTX 세종역 예정 부지(발산리) 인근 토지 거래에 대한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류임철 세종시 부동산투기 특별조사단장은 3월 18일 취재진에 해당 지역과 관련한 2차 전수조사와 관련해 “조금 더 검토해보겠다”면서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세종=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