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들이 일본 망친다’ 부글부글
▲ 초식남을 다룬 일본 영화 <초식남자>. |
일본 젊은이들의 ‘높은 지위를 목표로 하지 않는’ 경향은 이미 청소년 시기부터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재단법인 일본청소년 연구소에서 실시한 ‘고등학생 의욕에 관련된 조사(2007년 4월)’에 따르면 “높은 지위를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은 단 8.0%뿐이었다.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을 합하면 52.9%다. 일본 고교생 과반수가 높은 지위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이 한국은 22.9%, 중국은 33.4%, 미국은 22.3%가 나와,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러한 경향은 고교생의 희망 직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미국은 ‘의사’, 중국은 ‘기업의 경영자 혹은 관리직’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은 것에 비해 일본은 ‘영업, 판매 및 서비스업’이 주를 이뤘다.
일본 신입사원들이 해외근무를 피하려는 것에서도 소극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민간 기업에서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9.0%가 “해외근무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미덕인 기성세대가 보기엔 충격적인 결과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해외근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수가 2001년 29.2%, 2004년 28.7%, 2007년 36.2%로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변화는 젊은 직장인들의 출세의욕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고 가늘고 길게 직장생활을 지속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71.1%의 일본 청년들은 종신계약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10년 전 50%에 비해 크게 상승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남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소비실태 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의 독신 남녀의 월 소득이 여성이 남성보다 2600엔 많은 21만 8100엔(약 2743만 원)이었다. 이는 일본이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면서 여성이 약 80%를 점하는 간호와 의료분야에서 급여수준의 상향 조정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일을 잘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대기업 부동산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이에 대해 “한 예로 회의에서 상사가 제안한 건에 대해 여성사원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만, 남자사원은 실실 웃으며 ‘찬성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라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취업활동에 임하는 자세부터 남녀 사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아사히 방송 경영기획실 국장으로 현재는 오사카국제대학에서 신소쓰(갓 졸업한 대학생)세대에 대해 연구한 나가사와 아키히코 교수는 “일찍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여학생들이 많다. 남학생들은 4학년이 돼서도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를 성장시켜 줄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지가 아니라, 내가 그 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먼저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라며 답답한 듯이 말했다. 실제로 여성 종업원 비율을 높였을 때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나가사와 교수는 “학업성적부터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밀리고 있다. 2009년 토익시험 결과만 해도 여성 평균이 545점, 남성 평균이 459점으로 차이가 약 100점 정도로 벌어져 있다”며 “이미 의료 분야에서는 여성 종사자 비율이 남성을 훨씬 앞서 있으며, 세무사나 약제사 등 고소득 업종에서도 여성 종사자 수가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실시한 대학졸업예정자의 취업 내정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과에서는 남성이 41%, 여성이 36%, 이과에서 남성 49%, 여성 41%로 남성 취업률이 앞서 있다. 이러한 결과의 배경에는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에 의한 퇴직 리스크를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는 면도 있지만, 공정한 평가를 진행할 경우 남성들이 여성들을 이길 수가 없어 실기전형의 비율을 줄이고 면접을 중요하게 보는 등 ‘남성 편향적 시험’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대기업 상사 인사부 담당자는 “면접을 본 학생 중 다섯 명을 뽑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원 여학생을 뽑아 인사부에 전달하자 상부에서 ‘그렇게는 안 되니 두 명은 남자로 뽑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기업은 아직도 남성 편향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남성 쪽에서는 되레 ‘남녀평등’을 외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들만 받아오던 육아휴직을 남성들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올해 6월부터 ‘육아 및 간호휴업법’이 개정돼, 이전보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받아내기가 쉬워졌다. 간사이대학 사회학부의 조사에 의하면 20대 미혼 남성의 70%가 “육아휴직이 필요하다”고 대답해, 실제로 12세 이하의 자녀를 가진 기혼자들의 대답보다 20% 높게 나왔다. 이 결과는 단순히 젊은 남성들의 육아 분담 의욕이 더 높기 때문에 나온 결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식품회사의 과장은 “부하가 어느 날 곧 아이가 태어나서 1년 정도의 육아휴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유인즉슨 돈을 더 잘 버는 부인이 일을 하고 자신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일본 남성들이 야망을 포기하고 소극적으로 변한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평론가 모리나가 다쿠로 씨는 “남자는 어떤 세상에서든 언제나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한다. 예전에는 돈 잘 벌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니며 여성을 리드하는 남자가 인기 있었지만, 지금 일본의 20~30대 여성들은 부모님 세대를 보고 자라면서 마초적인 남성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남녀평등이 당연하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욕구도 변했다. 이제 그들은 차분하고, 겸손하며 최대한 존재감이 옅은 남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주장 등 눈에 띄는 행동은 피하는 식으로 삶의 방식을 바꿔온 것이라는 얘기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