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강원도 자택 칩거, 정호성·이재만·안봉근 만기 출소…김춘식·장성철 등은 정치권 활동
코로나19 확진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뒤 병원 격리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 1500일 가까이 수감된 박 전 대통령 사면론이 정치권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공개
정윤회와 십상시 문건이 처음 공개된 건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비선실세그룹 ‘십상시’ 국정 정보 교류·고위직 인사 간여” 제목의 보도를 하면서다. 민간인 신분이었던 정윤회 씨가 청와대 안팎 인사 10여 명과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국정 정보를 교류하고 고위직 인사에 간여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제시됐다.
이 문건은 당시 경찰 신분으로 청와대에 파견 나왔던 박관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 이 문건에선 청와대 정기 회동에 참석한 내·외부 인사 10여 명을 ‘십상시’로 지칭했다.
정윤회와 십상시 문건이 처음 공개된 건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비선실세그룹 ‘십상시’…국정 정보 교류·고위직 인사 간여” 제목의 보도를 하면서다. ‘세월호 7시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정윤회 씨. 사진=연합뉴스
십상시 핵심 멤버로 꼽힌 건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청와대 1부속 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2부속 비서관이었다. 문고리 3인방 위세는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대통령 참모나 각 부처 장관들은 물론 국가정보원장까지 이들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통령을 대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십상시 나머지 멤버는 신동철 청와대 정무 비서관, 음종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김춘식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전 선대위 전략기획 담당), 장경상 최경환 경제부총리 정책보좌관, 이창근 청와대 2부속실 행정관, 장성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보좌관, 이춘호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 등이었다.
세계일보는 최초 보도 당시 십상시 멤버 가운데 문고리 3인방 이름만 밝혔다. 나머지 멤버 이름은 박범계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16년 12월 14일 ‘최순실 국정감사’ 때 김영한 전 청와대 민성수석 비망록에 적힌 ‘십상시’ 명단을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당시 박 의원은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에게 “십상시 이름이 기재돼 있습니다. 김영한 수석 비망록입니다. 문고리 3인방 외 장경상 이창근 장성철 이춘호 음종환 신동철 김춘식입니다. 알고 계시죠?”라고 물었고 조 사장은 “네,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문건에 따르면 강원도 홍천에 거주하고 있던 정윤회는 매월 2회 서울로 올라와 강남에 있는 한 중식당과 일식당에서 십상시와 만났고, 국정 운영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안봉근 전 비서관에서 전달해 시행토록 했다. 정 씨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십상시와 회동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정 씨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은 구체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정 씨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축출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송년 모임에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친박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전 대통령)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다. (하지만)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며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김 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세계일보가 보도한 문건에 기록돼 있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이 검찰 내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들을 한꺼번에 지방으로 좌천시키던 때였다.
정 씨와 십상시는 이른바 ‘증권가 지라시’를 활용했다. 정 씨는 김 실장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비선라인을 가동해 증권가 지라시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 루머를 퍼트렸다. 이는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靑(청)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청와대 내부 문건에서 나온 내용이었다.
#십상시, 대통령 최측근 참모그룹
십상시라 불린 멤버들은 박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참모그룹으로 오래전부터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었다. 주간조선이 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3년 1월 7일에 보도한 ‘朴(박) 보좌그룹 10人(인) 청와대로?’라는 기사에 이들의 명단과 역할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이재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2015년 1월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전 보좌관, 정호성 전 비서관, 안봉근 전 비서관을 두고 기사에선 “이들은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부터 15년간 박 당선인(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한솥밥을 먹어온 ‘정치적 동지’들로 분류된다. 박 당선인은 국회의원 재직 당시 이들에게 정책(이재만), 정무(정호성), 일정(안봉근) 등의 업무를 맡겼다”고 말한다. 기사 중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한때 ‘십상시(十常侍)’로 불리기도 했던 박 당선인 보좌관 그룹은 박 당선인과 가장 가까운 참모그룹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 온 이들 보좌관 그룹은 작년(2012년) 8월 당내 경선이 실시되기 훨씬 이전부터 자체적인 정기모임을 가지며 경선 및 본선에 대비해 크고 작은 정무적 사안들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들이 서울 마포 인근에 비선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본선 때 이들은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후보 비서실 등에 합류했고 박 당선인에게 각 분야별 실무적 의견을 전달하는 핵심으로 기용됐다.”
기사에선 ‘십상시’로 문고리 3인방 외 신동철 선대위 여론조사단장, 백기승 선대위 공보위원, 조인근 메시지팀장,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이창근 일정기획팀장, 장성철 공보상황팀장, 음종환 공보기획팀장 등이 꼽혔다. 위 명단은 정윤회 문건에 공개된 명단과 백기승, 조인근 두 명 빼곤 일치한다.
#위세 떨쳤던 십상시 근황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십상시에 거론 됐던 인물들 행적은 묘연하지만 정치권을 벗어나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십상시 좌장이었던 정윤회 씨는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할 당시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정식 보좌진이 아닌 무급 입법보조원 신분이었지만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정 씨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아내 최서원과 이혼한 뒤 박 전 대통령 곁을 떠났다. 현재 정 씨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자택에서 칩거하고 있다. 횡성군 삽교리에 목장을 만들기 위해 다지던 땅을 밭농사 주민에게 임대 줬다(관련기사 [단독] 정윤회 “최서원 책 안 읽어, 앞으로도 볼 일 없다”).
정호성 전 청와대 1부속 비서관이 2018년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문고리 3인방은 수감 생활을 끝마치고 칩거 중이라고 전해진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청와대 비밀문서 47건을 최순실에게 넘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형기를 마친 뒤 2018년 5월 4일 만기 출소했다. 특별한 직업 없이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를 만나는 것이 대외활동 전부로 방송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 손사래를 쳤다고 전해진다.
이재만 전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은 뇌물수수와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각각 징역 1년 6개월, 2년 6개월을 받았다. 이 전 비서관은 형을 마치고 출소한 뒤 자택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비서관은 만기 출소일이 지났지만 출소 여부가 밝혀지진 않았다. 안 전 비서관이 수감됐던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음종환 전 행정관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춘호 전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은 20대 국회에서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장경상 전 최경환 경제부총리 정책보좌관은 국정 농단 사태 이후에도 최경환 전 의원을 도왔지만 현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여전히 정치권에 몸담은 이들도 있다. 김춘식 전 행정관은 나경원 전 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는 조수진 의원 보좌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장성철 김무성 전 의원 보좌관은 현재는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이창근 전 행정관은 한국지역발전센터원장을 역임한 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하남시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다가 낙선했다.
십상시 명단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해당 문건이 보도됐을 때 이를 ‘지라시’로 규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며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고 잘랐다.
2015년 1월 5일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비선개입 논란을 불러온 ‘정윤회 문건’ 내용의 진위, 유출 경로 등과 관련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검찰도 수사에 곧바로 착수했고, 특수1부와 특수2부를 연합한 수사팀을 꾸려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 정윤회 문건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회동 장소로 지목된 음식점에 정 씨와 십상시로 지목된 비서관이나 행정관이 들른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허위로 작성했고, 모두가 이에 속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던 박 경정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에 십상시로 적시된 청와대 당시 행정관들은 2014년 12월 세계일보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십상시 문건의 진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1년 8개월 만에 고소를 취하하면서 미궁으로 빠졌다. 이창근 전 행정관은 2018년 8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정윤회 씨를 만난 적도, 일면식도 없다”며 “당시 (문고리) 3인방이 고소 취하를 독려했다. 지금 생각하면 국정농단 관련 취재가 시작되고 하나둘 밝혀질 즈음인데, 각자 명예도 걸린 일이었던 만큼 취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