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민심 가감 없이 전달 사명, 검찰+영남 주로 등용…‘검찰 독립성 훼손’ DJ 정권 한때 폐지하기도
‘사의 파동’으로 정국을 뒤흔든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우여곡절 끝 복귀했다. 사진=연합뉴스
민정수석은 국민 여론과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가진다. 더불어 공직·사회 기강, 법률문제, 민원 업무 등에 대한 대통령 업무를 보좌한다.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에 대한 감찰도 민정수석 몫이다.
정권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민정수석 어깨는 무거워진다. 대통령 레임덕이 통상적으로 측근 친인척 비리를 발단으로 본격화되는 까닭이다. 민정수석은 청와대 밖 대통령의 눈과 귀가 돼 레임덕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다.
전두환 정부 첫 민정수석 ‘5공 실세’ 이학봉 씨.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에서 민정수석은 사정수석-법무수석 등 다른 수석 비서관들과 역할을 분담했다. 전두환 정부에선 육국사관학교 출신이자 ‘5공 실세’인 이학봉 전 육군 준장이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 전 민정수석을 둘러싼 책임론이 부상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 말기를 담당한 민정수석은 김용갑 국민의힘 상임고문이다. 김 고문 역시 육사 출신이다. 김 고문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민정수석 재임 당시 나의 직언으로 ‘땡전뉴스’를 없앴다”고 주장했다.
노태우 정부 때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민정수석에 등용되기 시작했다. 한영석, 정구영, 김영일, 이상연 전 민정수석은 모두 검사 출신 변호사다. 다만 노태우 정부 마지막 민정수석인 안교덕 전 민정당 의원은 육사 출신으로 전임자들과 그 궤를 달리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를 관통하는 민정수석 키워드는 ‘바른 말’이었다. 청와대와 정치권 외부에서 들리는 민심의 ‘쓴 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했다. 국민 여론과 민심을 파악하는 것에 민정수석 역할이 집중돼 있었던 셈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 흐름이 바뀌었다. 사정수석과 법무수석이 편제에서 사라졌다. 즉, 민정수석이 사정수석과 법무수석 권한을 흡수한 것이다.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민정수석이란 자리를 수식하기 시작한 때다. 민정수석은 사정 업무를 담당하게 됐고, 장·차관급 고위공무원 인사를 검증하는 임무도 유지했다.
김영삼 정부 민정수석 두 명은 모두 검사 출신이었다. 김영수 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과 문종수 전 인천지검장이었다. 검사 출신 민정수석 등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검찰 독립성 훼손 논란’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졌다. 검찰 출신 인사가 검찰을 감찰하는 상황에서 유착이나 부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 까닭이었다.
노무현 정부 1, 3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민정수석 출신 대통령이다. 사진=2012년 문재인 대선캠프 제공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정권을 잡자마자 민정수석 자리를 없앴다. 그러나 민정수석 편제가 부활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정타는 1999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권력형 비리의혹 ‘옷 로비 사건’이었다.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옷값을 대신 내줬다는 의혹이었다. 민정수석 부재가 뼈아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 청와대 조직도를 개편했다. 김성재 전 한신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검사도 육사도 아닌 인사를 민정수석에 앉힌 첫 사례였다. 그러나 김 전 민정수석 임기는 길지 않았다. 민정수석 취임 7달 만에 김 전 수석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김대중 정부 민정수석은 검찰 출신들이 차지했다. 신광옥, 김학재 전 법무부 차관과 이재신 변호사였다. 신광옥 전 수석은 민정수석을 마친 뒤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론 김대중 정부 3대 게이트 중 하나로 꼽히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수사 칼날을 맞아 구속됐다. 검찰을 감찰하던 실무자가 임기를 마친 뒤 검찰에 역공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김학재 전 민정수석은 신 전 민정수석과 반대로 법무부 차관 직을 맡다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전 수석은 2002년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난 뒤 법무연수원장을 지냈다. 그 뒤론 대검 차장검사를 지내다 2003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민정수석인 이재신 변호사 역시 검사 출신이었다. 김대중 정부 중·후반을 담당한 검사 출신 민정수석들은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진=최준필 기자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 초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검사 출신이 아닌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인사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민정수석 자리를 맡았다. 문 대통령 후임자는 박정규 변호사였다. 박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유일한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박 변호사 다음 민정수석은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맡았다. 그 뒤로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자리는 ‘비검사 출신’이 도맡았다. 친문계 핵심을 일컫는 ‘3철’ 중 두 명이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을 지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호철 노무현 기념관 추진단장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다시 검사 출신이 민정수석으로 줄줄이 기용됐다. 이종찬 전 서울고검 검사장, 정동기 전 법무부 차관,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정진영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는 현행 대통령제에서 민정수석을 가장 많이 교체했다. 총 6명이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은 ‘문재인 정부 저격수’를 자처하는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다. 홍경식 변호사, 김영한 대구대 교수가 곽 의원 후임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네 번째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이가 바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우 전 수석은 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박근혜 정부 최장수 민정수석이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게이트 묵인 논란을 비롯해 수많은 논란 중심에 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초래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민정수석 자리에서 이른바 ‘우병우 사단’을 거느리며 막후 권력을 형성해 비판받았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게이트 책임을 지고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탄핵 정국’을 전후해서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으론 최재경 변호사와 조대환 변호사가 활동했다. 그러나 이미 레임덕의 둑이 무너진 상황에서 두 민정수석은 별 다른 존재감을 과시하진 못했다. 박근혜 정부를 관통한 민정수석 6명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비검사 출신’ 민정수석 기조를 형성했다. 초대 민정수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을 지내다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됐고, 이후 각종 논란이 불거지며 서울대 교수로 복직한 상태다. 조 전 장관 후임자인 김조원, 김종호 전 민정수석은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이다.
흥미로운 점은 2007년 12월 21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약 1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은 영남 출신 인사가 독점했다. 노무현 정부 이호철 전 민정수석부터 문재인 정부 김종호 민정수석까지 14명 전부가 영남 출신이다. 부산·경남 출신이 8명, 대구·경북 출신이 6명이다. 그리고 13년에 걸친 ‘민정수석 영남 독점 체제’를 깨뜨린 이가 2020년 연말 임명된 신현수 민정수석(서울)이다.
신현수 수석은 문재인 정부 ‘비검사 출신 민정수석’ 임명 기조를 타파한 이다. 그러나 신 수석은 취임 두 달 만에 사의를 표명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신 수석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와 조율 없이 검찰 인사를 발표하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민정수석은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맡아 왔다. 정권 말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레임덕 골키퍼 역할을 자처하다 되레 게이트 핵심 인물로 연루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현수 민정수석 거취 논란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1990년대 청와대 비서관으로 활동한 한 인사는 “그간 민정수석은 대통령 오른팔로서 역할을 다해왔다”면서 “특히 정권 막판엔 측근 비리를 엄격히 감시하며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이 인사는 “그런데 이번 신현수 민정수석 거취 논란에선 그간 보지 못했던 정반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민정수석이 레임덕 골키퍼가 아닌 레임덕 방아쇠를 당긴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들의 공통점은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다는 점”이라면서 “당정청이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서 핵심 조력자 역할을 했던 셈”이라고 했다. 관계자는 “신현수 민정수석은 검찰과 당정청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위해 임명됐다는 점이 조국-김조원-김종호 민정수석과 다르다”면서 “그런데 연결고리 역할을 하다 오히려 청와대 내부 균열이 발생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상황이 뜻대로 흐르지 않아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이렇게 부연했다.
“민정수석에겐 레임덕 골키퍼란 수식어가 붙는다.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레임덕과 가장 가까운 곳에 민정수석이 있다. 민정수석이 레임덕을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민정수석이 단초를 제공하는 순간 레임덕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민정수석이 옷을 바꿔 입으면 레임덕 공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