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 농구 열정은 승부 안나요
▲ 문송애 씨가 문태영의 부인인 둘째 며느리 그리고 예쁜 손녀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
“Come on. You can do it! (힘내라 우리 아들. 잘할 수 있어!)”
문태종, 문태영 형제의 두 번째 대결이 벌어진 지난 12월 12일 오후. 문송애 씨는 코트 위를 질주하는 두 아들을 향해 연신 응원 메시지를 던진다.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반짝인다. “첫 대결 때 직접 보지 못한 게 얼마나 한이 되던지. 이번엔 바쁜 일정 다 뒤로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창 경기에 몰입해있는 그에게 ‘누굴 응원하느냐’고 묻자 “첫 대결 땐 형이 이겼으니 이번엔 동생이 이겼으면 좋겠다”란 유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열아홉 어린 나이, 문 씨가 한국을 떠나 미국 땅을 밟게 된 사연 속엔 아픔이 서려 있었다. 소방대원으로 재직하던 아버지가 마을 곡식창고에 난 화재를 진압하던 중 순직하고 만 것.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아가던 문 씨는 하루아침에 혼자가 돼버렸다. 그때 당시 문 씨의 나이 열다섯.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친구 언니의 소개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인연을 맺게 된 문 씨는 그와 일찍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외국인과의 혼인은 그 당시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미군 부대에서 일했던 아버지 덕분에 평소 외국인과 스스럼없이 지내던 문 씨에겐 보통의 자연스런 만남이었다고. 어린 나이에 낯선 미국 땅을 밟은 그에겐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자상한 남편과 늠름한 세 아들이 있기에 문 씨는 웃을 수 있었다.
▲ 혼혈인 최초 형제 농구 선수인 문태종(전자랜드·35), 문태영(LG·32)이 지난 12일 경기에서 뜨거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한 남자의 아내, 세 아들의 엄마, 어엿한 사업가. 문 씨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발 더 악착같이 뛰었다. 10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음식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시행착오도 있었다. 야심차게 미국·중국 퓨전 레스토랑을 열었으나 생각만큼 수익이 나지 않았던 것. 그러나 문 씨는 포기하지 않고 작은 일식집을 열었고, 벌써 9년째 일을 해오고 있다. 문 씨는 “만두만큼은 자신 있다”며 웃음을 보인다. 세 아들이 학교에서 ‘우리 엄마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끊임없이 자랑했던 것. 당시만 해도 생소한 음식이었던 만두는 문 씨로 인해 그 학교의 명물이 됐다고 한다. 문 씨는 “일하는 어머니로서 세 아들을 위해 시간을 많이 내지 못했던 점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속 한 번 안 썩이고 저렇게 훌륭하게 커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에 좀 더 일찍 들어오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남편이 심장 수술을 받아 회복 중이었고 문 씨 역시 일식집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태영이 “어머니 나라에서 농구를 하겠다”며 먼저 KBL의 문을 두드렸고, 이듬해 문태종까지 뒤따라오면서 문 씨는 30년 넘게 바라만 보던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내년엔 일식집을 정리한 뒤 남편과 함께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라고.
문태종, 문태영 두 형제의 같은 듯 다른, 그들만의 색깔이 궁금했다. 문 씨는 “성격도 취향도 농구 빼곤 다른 부분이 참 많다”며 입을 연다. “태종인 아빠를 닮아 침착하고 묵직한 타입이고 태영인 날 닮아 활발하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도 다르다. 태종인 어릴 때 입맛이 까다로웠다. 고기도 야채도 안 먹고 밥만 먹었다. 반면에 태영인 뭐든 잘 먹었다.”
성적에서도 차이를 보였단다. “태종인 학교 우등생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 반면 태영이는….” 문 씨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보이며 말을 줄인다. 그러나 농구에 대한 애정만큼은 두 형제 모두 서로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오면 두 아들을 꼭 빼닮은 손주들 보는 낙에 산다. 가장 예쁜 손주는 문태종의 첫째 아들.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얼마나 살갑게 구는지 모른다.
문 씨는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설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항상 한국에서 함께 설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이번 설엔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을 계획이다. 며느리들에게 송편 예쁘게 빚는 방법을 빨리 가르쳐주고 싶다.”
두 형제가 가능한 한 한국에서 오래도록 농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문 씨. 그의 바람처럼 KBL 코트 위에서 앞으로도 쭉, 종횡무진 활약할 두 형제들의 화려한 날갯짓을 기대해보자.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