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 출석, 수사 자문단·심의위 소집 요청…박준영 공개 ‘김학의 자료’ 불리, 기소 가능성 약점
하지만 해당 의혹 관련해 이규원 검사로부터 시작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사건 관련자 진술 허위보고서 작성 및 언론 유출, 불법 출금 과정 등에 대해 구체적인 폭로가 언론에 나오고 있는 점 등은 이 지검장에게 불리하다. 이 지검장 개인 사건도 기소가 유력하다. 수사팀 역시 이성윤 지검장 처벌에 대해 ‘자신 있다’며 기소 입장을 계속 대검찰청에 보고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사의 다음날인 3월 5일부터 4월 말까지, 한 달 넘게 공석인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이성윤 지검장 변수’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4월 17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원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돌발 출석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4월 16일 오후부터 서울중앙지검 안팎에서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원지검에 출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사건’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외압을 가한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그동안 네 차례의 소환 통보에도 일절 출석을 거부했다. 언론에 입장문을 내고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게 전부였다.
하지만 17일 이 지검장은 돌연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오전 11시에 출석해, 9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이 지검장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던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을 수사하려 하자 외압을 넣어 무산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지검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소환 조사 없이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대검에 보고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언론에 알려졌고, 이 지검장은 “기소 의견이라는 얘기가 언론에 먼저 나와 불쾌하다”며 검찰에 출석했고, 수사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검찰총장 인선을 앞두고, 이 지검장의 기소 가능성이 약점으로 거론되자 줄곧 소환에 불응했던 이 지검장이 자발적으로 출석한 것은 총장 인선을 앞둔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이번 출석은 수사팀의 요청이 아니라, 이 지검장이 먼저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통상 소환 조사가 이뤄지면 그동안 확인한 사실관계와 피의자의 진술을 비교하느라 짧게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검찰총장 인선이 자꾸 미뤄지고 사건이 다시 공수처로 재재이첩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약점’으로 거론되는 부분을 해결하는 듯, 적극적인 대응 차원에서 출석한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시간을 벌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실제 이성윤 지검장은 소환 조사 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최근 언론에 기소 가능성 보도가 나오기 시작해 해명할 필요가 있어 출석했다. 수사에 외압을 가한 사실이 없다”며 공수처가 관련자를 직접 수사하고 추가 대질 조사 등을 실시하면 무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성윤 지검장은 22일 대검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수원지검에는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각각 요청했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을 때를 대비한 ‘출석’이었다는 해석도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수사팀은 이 지검장 혐의가 명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 지검장 입장에서 검찰총장이 됐다고 가정했을 때, 검찰 수사를 불신하던 검사가 총장이 된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나, 아니며 수사에서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기소가 돼 검찰이 아닌 법원에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나. 총장 임명 가능성도 염두에 둔 한 수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 지검장 희망대로 흘러갈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미 수사팀은 조사 없이 기소하겠다고 판단할 정도로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 현재 기소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대검에 전달했지만,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찰총장 대행)은 차기 총장을 뽑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면 곧바로 기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불필요하게 논란을 먼저 일으키지 않겠다는 판단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간접적으로 이성윤 지검장 수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를 원치 않고 있다는 사인을 계속 보내고 있다. 4월 2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총장 인선과 관련,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여러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며 검찰의 수사 및 기소 방침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시사했다. 박범계 장관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 일정을 대략 잡으려 하고 일정을 여러분께 소상히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러저러한 총장 인선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현상들이 있다”고 언급했고, ‘영향을 주는 현상이라는 것이 이 지검장 수사를 말하느냐’는 질문에는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말을 아꼈다. 간접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성윤 지검장을 총장으로 원한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보냈지만,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해 기소할 것이고, 기소된 검사가 총장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셈”이라며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도 의견을 굽히지 않다 보니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이 장기화 되는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다만 검찰 기소 방침 이후, 1순위였던 이 지검장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검찰총장 추천위원 사이에서는 실제 이 지검장의 기소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검찰개혁 과정 ‘잡음’ 변수
문재인 정부가 이성윤 지검장을 총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명분 중 하나는 ‘검찰개혁 완수’. 하지만 불법 출금 의혹 핵심 이규원 검사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때 저지른 잘못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청와대와 이 지검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박준영 변호사는 한국일보와 SBS 두 언론사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당시 조사단이 작성한 1200여 쪽 분량의 최종보고서와 성접대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등에 따르면 이규원 검사는 왜곡된 면담보고서를 바탕으로 최종보고서를 작성했고, 왜곡된 보고서는 언론에 고스란히 유출됐다.
특히 당시 조사단의 이규원 검사는 출국금지 요청의 법적 하자에 대한 내부 지적에도, 불법 출금을 강행했고 “징계 먹으면 할 수 없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변필건 부장검사)는 당시 조사단이 몇몇 사건을 의도적으로 띄워 이슈화하려 했다는 ‘기획 사정’ 의혹까지 수사하고 있다. 청와대 개입 의혹도 수사할 계획인데, 해당 자료를 토대로 한 보도와 수사 흐름에 따라 법조계에서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조사단으로 대표됐던 검찰개혁 명분이 지지를 잃을수록, 검찰총장에는 개혁보다는 검찰 내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존경 받는 인물을 총장에 앉힐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이규원 검사가 관여된 조사단 이슈가 커질수록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앞세워 ‘검찰개혁 완수’를 강조할 이성윤 지검장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