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공항 장악 외국인에 ‘왕바가지’
▲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 13일 인천공항에서 일명 ‘조폭 콜밴 기사’들의 불법 영업 증거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인천공항을 세력의 거점으로 삼아온 이들 일당은 무려 10년 동안 고객과 다른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단속원들까지 상습적으로 폭행, 협박을 했다. 더군다나 이들의 불법적 행각에대해 인천공항공사 측이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폭’ 콜밴기사들의 쇼킹한 불법영업 실태를 들여다 봤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3팀은 지난 12월 1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사실상의 조폭’으로 군림하던 정 아무개 씨(52) 등 콜밴 기사 일행 28명을 검거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인천공항의 여객운송 영업권을 장악해 수년 동안 독점 수익을 챙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은 외국인들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웠고, 단속 공무원과 일반 콜밴 기사들을 폭행·협박해 입을 막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정 씨 등은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시작한 2001년부터 운송 사업을 하던 콜밴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영업하는 콜밴이 너무 많아지자 이들의 영업은 부진해지고 수익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밥그릇 챙기기’ 경쟁도 치열해졌다. 정 씨 등은 궁여지책으로 과거 김포공항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운전자 50여 명을 규합, ○○파라는 이름을 붙여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조직 이름과 활동 내용을 밝히지 않는 등 은밀하게 움직였다. 정규적인 단합 대회로 결속을 다졌고, 조직원 중 공항공사 직원과 내통이 의심되면 통화내역을 요구하는 등 조직 관리도 엄격했다.
이들은 공항입국장을 장악한 뒤 우선적으로 다른 기사들의 공항 영업을 막기 시작했다. 입국장 안 내부를 맡는 ‘안방’, 외부를 담당하는 ‘건너방’, 주변도로를 따라 돌면서 호객하는 ‘돌밴’ 등 세 무리로 나눠 ‘단속’을 벌이며 콜밴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2007년 6월 20일 ○○파에 속해 있지 않은 콜밴기사 이 아무개 씨(64)가 인천 공항에 들어오자 정 씨 일행 3명은 욕설을 하며 그를 저지했다. 양팔을 잡아 그를 차에 강제로 태워 주차장으로 데려간 뒤 “공항에 들어오지 말라니까 왜 들어왔냐. 한 번만 더 들어오면 죽여서 산에 묻어 버리겠다”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는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라며 이 씨를 차에 20분간 감금했다.
공항에서 영업을 하다가 이들에게 폭행당했던 조 아무개 씨(당시 60)가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조 씨가 폭행당한 후 경찰에 신고하자 정 씨 일행은 집까지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고소를 취하할 때까지 협박은 끊이지 않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조 씨는 결국 지난 2007년 2월 “인천국제공항 조직폭력배 두목 정○○, 부두목 박○○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겨놓고 자살했다.
정 씨 일행이 벌인 천인공노할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 씨 일행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불법 호객을 하며, 바가지요금을 씌워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2006년 2월 26일 파키스탄 국적의 A 씨(당시 30세) 는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북적거리는 게이트를 지나 택시가 즐비하게 서 있는 역사 앞까지 나가자 호객꾼들이 그를 붙잡았다. 정 씨 일행이었다. 정 씨 일행이 이끄는 콜밴 한 대를 잡아타고 목적지인 서울 서초동 소재 모 호텔에서 내리려는 순간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기사가 요금으로 800달러(한화 100만 원 상당)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거리에 비례한 정상요금이 1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10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2008년 미국 국적으로 국내 한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던 B 씨(당시 41세)는 콜밴 기사 정 씨 일당이 인천공항 승강장 앞에서 외국인 C 씨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C 씨는 한국말을 모르는 듯 정 씨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이를 말리려던 B 씨에게 정 씨 일당은 “네가 뭔데 말리느냐”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B 씨를 공항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가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로인해 B 씨는 중상을 입었고 한 달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인천경찰청은 “이들은 2001년과 2006년, 2007년 총 세 번에 걸쳐 처벌됐지만 영업이 잘되다보니 계속해서 불법 행위를 한 것”이라며 “진술 당시에도 조폭으로 처벌되는 것이 두려운지 조직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12월 15일 기자와 통화한 강력 3반 문중규 형사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 외국인의 숫자가 꽤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들 일당은 단속 공무원들에게까지 폭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8월 20일 김 아무개 씨(28)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위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 씨 일행이 불법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김 씨는 이들에게 경고를 했다. 그러자 조직원들이 총출동했다. 정 씨 등은 김 씨를 에워싸고 많은 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눈을 확 파버리겠다”는 욕설을 하며 폭행했다. 현행법에는 운전자가 공항에서 호객 영업을 할 경우 항공법에 의해 과태료 (500만 원 이하)를 부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이미 법의 힘이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문 형사는 “정 씨 일행은 상습적으로 단속원들을 폭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하자 일각에서는 인천공항공사의 ‘관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 씨 일당이 10여 년간 인천공항을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을 동안 공사 측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김 아무개 씨(44)는 “인천공항을 담당하고 있는 인천공항경찰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속원들이 장기간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면 경찰대 쪽에서 이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었을텐데 본격적인 단속에 나서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공항공사가 정 씨 일행에게 10만 원을 호가하는 정기 주차권을 발급해준 것으로 알려져 ‘묵인’ 수준을 넘어 ‘비호’까지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공항공사는 “정기 주차권에 대해 모 언론사에서 나온 얘기는 잘못된 것”이라며 “콜밴 영업은 공항 밖에서 하는 것인데 주차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콜밴 단속은 경찰대에서 하고 우리는 안내와 계도만 할 뿐”이라며 “단속 권한이 없는 우리 요원이 불법 영업을 저지하자 (기사들이) 수차례 폭행한 것으로 본다. 이를 우리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