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한계 극복 아시아 작품·배우·감독 주요 상 수상…할리우드에서도 영어 능통 한국배우 수요 급증 전망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각본상, 감독상, 그리고 국제장편영화상(과거의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고, 93회 아카데미에선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가 감독상을 받고 그가 연출한 ‘노매드랜드’는 작품상을 받았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두 개의 오스카상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양성’으로 포장된 세계 제패 프로젝트
이런 변화에 가속 페달이 된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다. 92회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최초 사례다.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아카데미는 로컬 영화제의 자부심 때문인지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기생충’ 이전에 세계 3대 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사례는 1955년 개봉작인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가 유일했는데 이 역시 미국 영화였다. 그리고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작인 ‘노매드랜드’는 77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2년 연속 세계 3대 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1993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안이지만, 요즘 분위기에선 가장 강력한 트렌드다. 마치 아카데미가 3대 국제 영화제 작품상 가운데 한 편을 골라서 작품상을 주는 듯한 모양새다. 변화하는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계에서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작품성이 뛰어난 예술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대중적인 미국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다는 기존 인식을 깨고 아카데미가 세계 3대 영화제보다 더 영향력을 가진 국제 영화제로 거듭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각본상, 감독상, 그리고 국제장편영화상(과거의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고, 93회 아카데미에선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가 감독상을 받고 그가 연출한 ‘노매드랜드’는 작품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나리’의 윤여정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런 흐름은 로컬 영화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화제에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어쩌면 다양성으로 포장된 세계 제패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대신 기존 아카데미의 로컬적인 특성은 미국인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한 골든글로브가 대체하는 분위기다.
#주목받는 국내 거장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 감독들
이런 아카데미의 변화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영화에 대한 아카데미의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한국 영화계는 2022년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기생충’과 같이 한국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미나리’처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미국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지름길은 세계 3대 영화제다. ‘기생충’과 ‘노매드랜드’처럼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으면 아카데미 작품상에 근접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선 이미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거나 공식 초청작을 자주 낸 국내 거장 감독들이 아카데미까지 석권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최근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영화인은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다. 홍상수 감독은 ‘도망친 여자’로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선 ‘인트로덕션’으로 은곰상 각본상을 받았다. 김민희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세 편의 영화를 모두 함께한 홍 감독과 김민희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아 만약 이들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다면 ‘기생충’ ‘미나리’ 때와는 다소 온도 차가 날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에는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 외에도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산드라 오가 주연한 영화 ‘엄마’의 심경미(아이리스 K. 심 감독) 감독 등 한국계 미국인 감독들이 여럿 활동 중이다. 이들에게도 향후 아카데미 수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미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정이삭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1순위 후보다. 게다가 정이삭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할리우드 실사판 리메이크 영화의 감독으로 확정돼 기대감이 크다.
이병헌과 비 등 이미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들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한국 배우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 ‘기생충’을 통해 한국 배우의 저력을 확인한 터라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배우 러브콜도 쏟아질 전망
이병헌과 비 등 이미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들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한국 배우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이미 ‘기생충’을 통해 한국 배우의 저력을 확인한 터라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되고 있다. 마블 신작 영화라는 자체로도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데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받아 더욱 눈길을 끄는 ‘이터널스’에 출연한 마동석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게다가 OTT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 영화 시장이 더욱 요동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할리우드는 영어가 가능한 한국 배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한류 바람을 타고 스타성이 입증된 한국 배우는 물론이고, 윤여정과 같이 연기력이 입증된 한국 배우에게도 러브콜이 이어질 전망이다. 러브콜이 많아야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영화 출연이 잦아지고 그래야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도 올라간다. 요즘 분위기만 놓고 보면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해 아카데미에서 상까지 받는 상황도 더 이상 희망사항으로 그치진 않을 것 같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