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블랙핑크 잇는 K팝 그룹 세계 시장이 원해…‘글로벌’ 내세운 프로그램 속속 시동
#‘프듀 사태’ 상흔 지우기?
트롯 오디션의 전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Mnet(엠넷) ‘프로듀스 101’ 사태와 함께 시작됐다. ‘프로듀스 101’은 비 연예인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오디션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었다. 장기간 아이돌 연습생으로 훈련받거나 이미 데뷔했던 이들은 빼어난 외모와 더불어 숙련된 춤과 노래 솜씨로 대중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이 시리즈를 통해 배출된 그룹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등이 곧바로 탄탄한 무대 매너를 뽐내며 정상권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다.
‘프로듀스 101’ 초창기 프로듀서였던 한동철 PD는 MBC와 손잡고 새로운 K팝 가수를 발굴하는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각 기획사와 학교로 지원자를 모집하는 공고문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즈원 공연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하지만 투표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면면이 엇갈렸다는 소식은 아이돌 오디션 시장에 청천벽력과 같았다. 대중의 불신은 커졌고, 10대 아이들의 꿈을 이용한 오디션이란 오명을 썼다. 결국 아이돌을 뽑는 경연의 장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트롯이 메웠다.
올해는 다르다. ‘프로듀스 101’ 초창기 프로듀서였던 한동철 PD는 MBC와 손잡고 새로운 K팝 가수를 발굴하는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각 기획사와 학교로 지원자를 모집하는 공고문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MBC ‘무한도전’을 이끌었던 여운혁 PD 역시 ‘친정’ MBC에서 아이돌 오디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SBS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2020년부터 아이돌 오디션 ‘LOUD:라우드’를 준비하고 있다. SBS ‘K팝 스타’의 심사위원이었던 박진영이 다시 한 번 합류하고, ‘강남스타일’로 미국 시장을 호령했던 싸이가 가세했다.
오디션 명가라 불리는 Mnet 역시 조심스럽게 행보를 재개했다. Mnet은 하반기에 걸그룹 결성 프로젝트인 ‘걸스플래닛 999’를 선보인다. 한국·일본·중국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오디션은, 일본 AKB48 소속사와 손잡고 론칭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둔 걸그룹 아이즈원을 모티브 삼아 아시아 전역을 누빌 수 있는 멤버 구성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아직 ‘프로듀스 101’ 사태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아이돌 오디션을 통해 아픈 곳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후죽순 격으로 돋아난 경연 프로그램 속에서 결국 아이돌 가수가 되길 꿈꾸는 젊은이들이 재차 상처받을 것이란 걱정이다.
반면 ‘프로듀스 101’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프로그램 조작을 주도한 두 PD는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단죄’가 이뤄진 상황에서 업계 차원의 자정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프로듀스 101’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돌 오디션을 삼가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공정한 오디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각 제작진들이 참가자들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며, 무엇보다 의혹 한 점 남지 않는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왜 다시 아이돌 오디션인가
TV조선이 ‘내일은 미스트롯’을 론칭할 때, 누구도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인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하며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줬다. 이후 각 방송사들은 다시 머리를 싸맸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오디션 장르를 개척하기 위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 다시 ‘아이돌’이다.
아이돌 그룹 팬덤의 응집력이 강한 것도 각 방송사들이 아이돌 오디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사진) 팬들은 아직도 해체된 그들의 재결합을 원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는 K팝 시장의 확장 및 이로 인해 파생되는 엄청난 부가가치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빌보드차트를 호령한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성공은 K팝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트롯이 아직까지 국내 시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반면, K팝은 해외 시장이 더 넓다.
그래서 각 방송사들이 새로 준비하는 K팝 오디션은 하나같이 ‘글로벌’을 외친다. 전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K팝 가수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요계 인사는 “지금은 모두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원하는데, 정작 그들을 섭외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빈자리를 메울 차세대 그룹이 필요한데, 프로젝트 그룹은 방송사와 손잡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새 얼굴을 발굴하고 정착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아이돌 그룹의 팬덤의 응집력이 강한 것도 각 방송사들이 아이돌 오디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아이오아이와 워너원 팬들은 아직도 해체된 그들의 재결합을 원하고 있다. 아이오아이의 경우 결성 5주년을 기념해 오는 5월 4일 라이브 방송 ‘I.5.I - Yes, I love it!’을 연다. 2017년 마지막 활동 당시 ‘5년 후에 재결합하자’고 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이벤트다.
가요계 관계자는 “과거와 비교해 아이돌 팬덤은 더욱 조직화됐다. 좋아하는 그룹을 위해 미국 타임스퀘어 광고판을 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응집력은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하는 비교적 어린 팬덤의 특징 중 하나”라며 “이렇듯 지갑을 여는 팬덤은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기 때문에 각 방송사들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기 위한 오디션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