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테크닉스 사업 다각화 결실, 한솔케미칼 2차전지 특수 기대…조동혁·조동길 회장 지배력 강화는 숙제
한솔그룹은 1991년 삼성그룹과의 분리 및 독립 경영을 선포했다. 당시에는 ‘한솔’이라는 그룹명을 사내 공모로 결정할 정도로 젊은 이미지의 회사였다. 한솔그룹은 2000년 이동통신, 금융 등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재계서열 11위까지 올랐다. 이후 연이은 사업 축소로 2009년부터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에서 수시로 제외되곤 했다. 한때는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솔홀딩스, 한솔테크닉스 등 한솔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입주한 서울 중구 파인애비뉴 건물. 사진=최준필 기자
이처럼 한솔그룹은 어느새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지만 올해는 활력이 넘치고 있다. 제지업체인 한솔제지 외 이렇다 할 계열사가 없다는 과거 평가와 달리 올해는 한솔테크닉스와 한솔케미칼이 고속 성장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처음으로 한솔테크닉스와 한솔제지의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 측은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실적에 자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매출 1등은 한솔테크닉스, 이익 1등은 한솔케미칼
디스플레이 및 부품업체인 한솔테크닉스는 2016년까지만 해도 한 해 흑자를 내면 이듬해 곧바로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체력이 약한 회사였다. 한솔테크닉스는 2011~2014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015년 흑자를 거뒀다가 2016년 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액정표시장치(LCD) 부품 공급 사업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전방 산업의 영향이 너무 컸다는 지적이다.
한솔테크닉스는 그간 사업 다각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2017년부터 그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솔테크닉스의 2017년 3분기 영업이익은 114억 원으로 11년 만에 처음으로 100억 원이 넘는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후 한솔테크닉스는 성장을 거듭해 매출은 2018년 8419억 원에서 2020년 1조 1949억 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6억 원에서 324억 6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더 큰 폭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안타증권은 올해 한솔테크닉스가 매출 1조 6095억 원, 영업이익 515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불과 3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늘고, 영업이익은 3배 이상 늘어난다고 예측한 것이다. 안주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솔테크닉스에 대해 “해가 갈수록 성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실적 모멘텀이 계속 강화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호평했다.
같은 기간 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한솔제지는 뒷걸음질 쳤다. 2018년만 해도 매출이 1조 7390억 원이었지만 2020년에는 1조 4000억 원대까지 밀려났다. 한솔테크닉스가 올해 예상했던 만큼의 매출을 달성한다면 그룹 간판인 매출 1위 계열사가 바뀌는 셈이다.
한솔케미칼도 반도체와 2차전지 특수에 힘입어 고성장 중이다. 한솔케미칼은 조동길 회장의 형인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이 이끌고 있다. 한솔케미칼의 2017~2019년 매출은 5000억 원대에 머물렀지만 2020년에는 6190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600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7500억 원 수준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투자는 당초 한솔케미칼의 올해 매출을 7082억 원으로 예상했다가 최근 7514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솔케미칼의 매출은 한솔테크닉스나 한솔제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익의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용 과산화수소를 한솔케미칼에서 공급받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업계 내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한솔케미칼은 올해 2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매출 또한 3~4년 안에 1조 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 지배력 확대는 만만치 않은 과제
주력 계열사들이 고성장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한솔그룹 전체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조동혁 회장과 조동길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 지배력이 확고하지 않다. 소액주주연합의 반대로 주주총회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다. 한솔홀딩스 소액주주연합은 2019년 무상감자에 따른 자본금 조정과 이사 선임 등의 안건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사 선임 안건은 통과됐지만, 무상감자 계획은 결국 철회됐다. 이 때문에 한솔홀딩스는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되기도 했다.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2019년 1월 별세했다.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사진=연합뉴스
조동길 회장은 2020년 말 기준 지주회사인 한솔홀딩스 지분 17.23%를 보유하고 있어 안정적인 지배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주식 매수가 필요하다. 지주회사 전환 전 조 회장이 가진 한솔홀딩스(당시 한솔제지) 지분은 3.23%에 그쳤다. 조동혁 회장 또한 한솔케미칼 지분 14.47%만 보유하고 있다. 조동혁 회장의 딸인 조연주 부회장의 한솔홀딩스 지분율은 0.03%, 조동길 회장의 외아들 조성민 씨의 지분율은 0.76%에 불과하다.
민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