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 몹쓸짓 그들 지도자 생활은 계속
▲ 연합뉴스 |
지난 6월, 국내 빙상계가 떠들썩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후보코치가 9년 동안 가르친 여제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A 코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 지도하던 제자 B 양을 4~5년 간 간헐적으로 성폭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빙상장 옆에 마련된 개인 사무실로 B 양을 불러들여 성적 수치심을 주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참다못한 B 양이 부모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고 B 양의 부모가 A 코치를 고소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수 은퇴 이후 실력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던 A 코치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B 양 역시 A 코치와 9년 동안 사제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실력을 쌓아 단거리 유망주로 성장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 B 양은 내리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던 B 양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 부상이 찾아오고 말았다. 다리가 지끈거려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 날을 세우기 힘들 정도였다. 현재 B 양을 지도하고 있는 C 코치는 “전문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니 예전에 강남 모 정형외과에서 받았던 무릎 수술이 잘못됐다고 하더라. 꿰매지 말아야 할 부분을 꿰매 무릎에 피가 안통해서 연골이 나갔다고 들었다. 지난 9월 재수술을 받았다”며 B 양의 근황을 전해왔다. 다행히 재수술 결과가 좋아 B 양은 웃음을 되찾고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동안 스케이트를 타지 않던 B가 ‘다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되도록 빨리 복귀해 나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다면 지난 4월 20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조사를 받던 A 코치는 어떻게 됐을까. 안양지법 관계자는 “기소 이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봤다. 강제추행죄는 친고죄라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더 이상 재판할 수 없다.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한 뒤 A 코치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공소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A 코치를 오랜 기간 지켜봐 온 한 쇼트트랙 관계자는 “A 코치는 풀려난 이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태권도 지도자를 하고 있다. A 코치 집안이 워낙 태권도로 유명한 집안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된 것 같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걸음마할 때부터 가르쳐온 여제자에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도 외국에서 버젓이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스포츠계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지난해 8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사이클 국가대표팀 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북 영주 경륜원 트랙에서 합숙 훈련 중이던 국가대표 D 선수가 “대표팀 E 감독이 자신을 트랙으로 불러내 가슴을 만지고 과도한 신체접촉을 했다”며 피해사실을 연맹 측에 알린 것. 게다가 당시 함께 훈련하던 선수들이 “E 감독이 ‘올 때 아무도 안 보게 내려와라. 올라갈 때 비상구로 올라가라’는 지시를 했다”고 폭로하면서 파장이 더욱 거세게 일었다. 반면 E 감독은 “어깨에 손을 얹었을 뿐이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연맹 측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였고, E 감독이 “이런 소리를 들어가며 자리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며 사표를 내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사건은 그렇게 덮이고 말았다.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던 D 선수는 이듬해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에서 탈락했고, 허리 부상으로 이후 열린 타 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D 선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다른 실업팀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며 다소 밝은 목소리로 근황을 전해왔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컸다. 그때 일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 E 감독은 현재 지자체 소속 실업팀에서 전무 및 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16일 기자와 통화한 그는 “내 업보고 내 운명이라 생각한다. 대표팀 감독에 대한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다만 사이클 선수들이 당당히 세계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2007년 여자프로농구는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의 성추행 사건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박 감독이 10년간 국가대표팀을 이끈 영향력 있는 농구계 인사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는 소속팀 선수들을 호텔 방으로 불러내 “옷을 벗어라”하고 강요하고, “너의 벗은 몸이 보고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등 여제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일삼았다. 게다가 그는 법정에서 “선수 스스로 옷을 벗었다”, “술에 취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해 보는 이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그러나 형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난이 일었다.
박 감독을 잘 아는 농구계 관계자는 “박 감독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으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아 국내에서 감독을 맡을 수 없다. 현재 중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며 그의 근황을 전했다. 다행히도 피해 선수들은 소속팀 이적 이후 국내외 시합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WKBL에서 운영하는 성폭력상담소엔 허점이 많았다. 선수들이 24시간 상담할 수 있는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통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WKBL 관계자 역시 “3년 전 성추행 사건 이후 단 한 차례도 성폭력 상담이 이뤄진 사례가 없다”고 밝혀 여자 선수들에 대한 보호가 여전히 미흡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