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에 “15년 전 거물 방송인에 성상납 요구받아” 고백…넷상 떠들썩했지만 언론들 보도 안해 ‘고립무원’ 처지
마리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캡처. “용기 있는 발언 고맙다”는 네티즌도 있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에의 주장은 이렇다. 15년 전, 마리에는 거물급 방송인이었던 시마다 신스케와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첫날 늦어서 분장실로 인사를 가지 못했고, 신스케는 “너만 인사하러 오지 않았으니 다음에 사과하라”며 날짜와 장소를 지정해 호출했다. 장소에 도착해보니 “아치형 소파가 놓여 있는 방이었다”고 한다. 신스케가 중앙에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성인화보 그라비아 모델들과 예능인 여럿이 둘러싼 형태였다.
마리에는 “신스케가 ‘성관계를 맺자’고 당당히 말해왔다”고 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예능인들이 ‘신인 땐 다들 그렇게 한다’며 마리에를 재촉했다”고 한다.
당시 미성년이었던 마리에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요구를 거절하자 신스케는 마지못해 ‘다른 날로 하자’며 그녀를 보내줬다”는 설명이다. 이후 마리에는 소속사에 상담했지만, “앞으로 일이 없어져도 괜찮겠냐”며 되레 협박을 당했다. 마리에는 “베개영업을 거절해 결국 신스케가 MC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강판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커뮤니티 게시판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용기 있는 발언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부터 “과거 의문투성이였던 캐스팅이 이제야 납득이 된다”면서 일본 연예계의 성상납을 기정사실화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구독자 230만 명을 보유한 인기 유튜버 ‘멘탈리스트 다이고’는 이번 소동과 관련해 “마리에와 신스케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베개영업은 연예계에서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흔한 패턴은 소속 사무소의 사장과 관계를 가진 후 푸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NHK를 저격하는 유튜버로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도 “과거 사귀었던 여배우가 베개영업을 고백한 적이 있다”며 “마리에가 말한 내용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리에의 폭로가 인터넷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일본 TV 방송과 메이저 신문들은 관련 뉴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한 스포츠신문 기자는 “어차피 15년 전의 일인 데다 가해자로 지목된 시마다 신스케가 이미 연예계를 은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정적으로 “마리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는 충분한 뒷받침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확실히 현재 상황에서는 마리에의 주장 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고,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언론이 그냥 눈감아버리는 것은 문제다. 취재를 하지 않고 피해자 측에 증거 수집을 통째로 요구하고 있다면, 그 역시 보도 매체로서 실격이다.
저널리스트 마키노 요는 “오래된 이야기라서 밑도 끝도 없이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프레지던트’의 기고문을 통해 “마리에의 고발은 공익성이 높고 언론사가 최우선으로 다뤄야 할 주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여성이 여전히 피해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리에의 고발이 4년 전 미국 할리우드에서 불거진 성추행 사건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거물급 프로듀서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수십 년간 숱한 여성들을 성폭행·성추행한 사건이다. 하지만, 미디어의 대응은 양국이 백팔십도 다르다. 미국의 경우 대형 미디어인 ‘뉴욕타임스’와 ‘뉴요커’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모은 것과 동시에 면밀한 취재를 거듭해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고발했다. 이는 세계적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할리우드에서는 수년간 와인스타인을 둘러싸고 성희롱 의혹이 제기돼 왔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건 아니라서 의혹이 표면화되진 못했다. 상당수의 피해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참을 수밖에 없었을 터. 뉴욕타임스와 뉴요커가 권력자의 폭주를 파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론이 마리에의 폭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자 일부 대중들은 “증거 없이 떠든다” “허언증 아닌가”라며 마리에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마리에 인스타그램
일본 연예계도 오래전부터 ‘베개영업’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요시모토흥업을 대표하는 연예인 신스케를 둘러싸고 실명 고발에 나선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여러모로 와인스타인 사건과 비슷한 구도인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고발자 마리에가 ‘고립무원’의 처지라는 점이다.
언론이 방파제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고발자는 비방과 중상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마리에의 경우 처음엔 힘내라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증거도 대지 않고 일방적으로 떠든다” “허언증 여자에게 언급된 연예인들이 불쌍하다”는 비판론이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마리에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인스타그램에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저널리스트 마키노 요는 “대형 신문사가 특히 이번 논란에 소극적인 것은 성문제 감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 인권과 직결되는 주제인데도 단순히 저급한 문제로 치부하며 뉴스 가치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덧붙여 “조사 보도에도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문사들이 ‘마리에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 소송 위험을 피하려고만 한다”면서 “자체적으로 증거를 수집할 기개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니 “경찰이 움직이지 않고, 형사고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그는 “일본 언론이 여성의 성 피해에 무관심한 이유로 구조적인 문제”를 꼽았다. 일례로 유명 언론사들을 살펴보면 여성 임원을 도입한 회사가 없다. 요컨대 일본 언론사의 임원이 되려면 ‘남성·일본인·중장년·공채출신’이라는 4박자를 갖춰야 한다. 다양성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노 요는 “어찌 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메이저 언론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입장치가 되어 주지 못하는 한, 일본에서 마리에에 이어 침묵을 깨는 여성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