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차림 중년남 주로 가해, 유모차 미는 여성 타깃 악질도…“스트레스 사회가 낳은 괴물” 분석
일본 신주쿠역에서 여성만 치고 지나가는 남성. 유튜브 캡처 이미지로 이 남성은 40초의 짧은 시간 동안 4명의 여성을 치고 지나간다.
‘#일부러 부딪치는 사람’ 해시태그 글들을 살펴보면, 피해자는 주로 여성으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에게 부딪혔다는 내용이 많다. 이로 인해 ‘#부딪치는 아저씨’라는 해시태그도 곧잘 함께 올라온다. 그 가운데는 유모차를 밀고 있거나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여성, 임신한 여성이 표적이 된 악질적인 케이스도 있었다.
다만, 관련 글이 올라올 때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자의식 과잉이 아니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도쿄 신주쿠역에서 한 남성이 여성에게 고의로 부딪치며 걸어가는 모습이 동영상에 포착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남성은 40초의 짧은 동영상에서 무려 4명의 여성을 치고 지나간다.
2020년에는 가마타역에서 여성들에게 고의로 몸을 부딪친 혐의로 4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SNS 괴담인 줄 알았던 ‘부딪치는 아저씨’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당시 전철회사 JR동일본 측은 “보안요원의 경계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피해자들에 의하면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피하려고 했는데도 부딪혔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가족 생일케이크를 조심히 들고 가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중년의 샐러리맨 남성이 앞쪽에서 다가오길래 옆으로 비켰는데도 부딪치면서 케이크 상자를 엉망으로 만들고 가버렸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일본 매체 ‘위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체험담을 들려줬다. “지난 3월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눈앞에 어떤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남성이었다.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왠지 느낌이 이상해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성과 스쳐지나가는 찰나였다. 무언가가 오른쪽 팔을 강하게 내리쳤다. 우연히 부딪힌 느낌이 아니라, 주먹처럼 단단한 것이 고의로 세게 친 듯한 충격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보니 계단을 올라가는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주저하게 됐다. 팔의 통증은 반나절 이상 욱신거렸다. 여성은 “‘왜 내가 맞아야 하나’라는 분노가 들끓었다”고 한다.
‘일부러 부딪쳐 오는 사람’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순 없을까. 사카노 신이치 변호사는 “고의적으로 타인에게 부딪치는 행위는 형법상 폭행죄(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만일 부딪쳐서 부상을 당한 경우라면 상해죄(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가 적용될 수 있다. 고의가 아니라, 부주의로 부딪쳐 부상을 입힌 경우라도 과실상해죄로 간주한다.
아무래도 표적이 되기 쉬운 사람은 부딪쳐도 아무 말 하지 않을 것 같은, 수수하고 체구가 작은 여성이 많다고 한다. 사카노 변호사는 “해결책이라기엔 미흡하지만 상대방이 일부러 부딪치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스마트폰을 만지며 걷는 등의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느닷없이 누군가 몸을 ‘퍽’ 치고 지나간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부딪치는 아저씨’의 심리는 대체 어떤 것일까. 자유기고가 요시카와 반비는 “자신보다 힘이 약한 상대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육체적인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우월감’과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고 분석했다. “본인들이 그걸 자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른바 ‘스트레스 사회가 낳은 괴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익명사이트 ‘하테나 익명다이어리’에는 일부러 여성들만 노려 부딪쳤다는 남성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는 “직장에서 매일같이 상사에게 매도당하여 심신이 지쳐 있던 중 우연히 (여성과) 부딪혔는데 쾌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하루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여성을 부딪치고 지나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노인에게는 하지 않았다. 크게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할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특히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성들과 고의로 자주 부딪쳤는데 ‘길을 막고 방해가 되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남성은 “많이 반성하고 있으며 ‘흑역사’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이 글의 진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상적인 불만,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 몸을 부딪치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에 대해, 위드뉴스는 “체격 등이 강하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엄연한 폭행 범죄”라며 “지속적으로 실태를 가시화하는 것이 억제책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현재 ‘#일부러 부딪치는 사람’ ‘#부딪치는 아저씨’와 관련된 체험담을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툭 치길래 날려버려” 여자 프로레슬러의 일격 여성 프로 레슬러 마쓰모토 히로요 트위터 프로필 사진. “거리에서 어떤 사람과 스쳐 지나칠 때 악의적으로 부딪쳐온 사람이 있었다. 태클을 당하면 반사적으로 튕기는 버릇이 있어서 무심코 날려버렸다! 죄송해요, 버릇이라 나도 모르게…. 이번 기회에 그런 부딪치는 수법은 그만뒀으면 좋겠네요.” 여성이라 부딪쳐왔을지 모르지만, 상대는 하필 ‘파괴녀’라는 별명을 지닌 프로레슬러. 트위터 프로필 사진만 봐도 강렬한 포스가 느껴진다. 마쓰모토 글에는 “여성만 노리는 악질적인 사람이 있다” “날려버렸다니 너무 통쾌하다” “좋은 약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등등 여성들의 코멘트가 쇄도했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