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회의보다 더 많은 주의 필요” 재택근무자 98%가 집중력 저하·심리적 불안 호소
‘줌’이 편한 이유는 여러 명이 동시에 원격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잦은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 이른바 ‘줌 피로(Zoom Fatigue)’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진=줌 홈페이지
독일 함부르크에서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미하엘 호프는 “화상 회의는 에너지 소모가 많고, 창의적인 흐름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화상 회의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그는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더욱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상 회의로 나누는 모든 대화들과 간간히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을 때의 시선을 생각하면 끔찍한 기분이 든다. 마치 두 팔을 묶고 입을 테이프로 칭칭 감고 있는 것만 같다”며 언짢아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동료들이나 고객들과의 대화를 사무실 대신 가상공간에서 하기 시작한 후부터 이런 피로감은 더 쌓여갔다. 호프는 “화상 회의를 하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뿐만 아니라, 종종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런 건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바로 ‘줌 피로’다. 호프가 이런 ‘줌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때는 봄부터였다. ‘줌’은 스카이프(Skype), 마이크로소프트 팀(Microsoft Team), 구글 미트(Google Meet) 또는 짓시(Jitsi)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 새로운 심리적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얼마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와 관련, 루드비히샤펜대학의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화상 회의를 통해 집중력 저하나 심리적 불안 등의 ‘줌 피로’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답해서 주목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 직장 조사(Global Workplace Survey)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원격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98%가 화상 회의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특히 나쁜 음질 상태와 함께 재택근무 특성상 주변 환경에 대해 신경 써야 하는 점이 부담스럽게 작용했다.
호프가 화상 회의를 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호프와 그의 동료 직원, 그리고 고객들은 각각 자택 컴퓨터 앞에 앉아서 회의를 개최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호프는 “내가 말을 할 때면 화면의 얼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는 내 얼굴을 화면에 고정시키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나는 카메라를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둬야 하는 걸까”라고 불편해 했다.
호프에게 이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다. 지금까지 그는 사람들과 마주앉아서 활발하게 토론을 하거나, 그 분위기를 느끼거나, 혹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을 더 선호했다. 요컨대 대면하는 데 더 익숙해 있었다. 호프는 “그렇게 하려면 꼭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즉, 인간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생존 여부는 동료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단 몇 초 만에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언어, 표정, 몸짓, 자세, 타이밍의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의사소통의 대가다. 우리는 이 신호들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그 신호들에 적절하게 반응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순식간에 반응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영역에서는 재치와 공감이 필수적이다. 가령 아날로그 세계에서 무용수들은 서로 눈을 마주보고, 서로의 신체적인 표현을 느끼고, 같은 노래를 듣고,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무용수들은 VR(가상현실) 안경을 쓰고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으며, 때때로 음악이 중단되거나 박자가 바뀌는 등 전혀 다른 환경에서 교감해야 한다.
이와 관련, 행동심리학자인 지안피에로 페트리질레리는 “화상 회의는 대면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집중력과 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프랑스 경영대학인 INSEAD의 연구원들은 화상 대화를 할 경우 우리의 뇌는 누락되거나 결함이 있는 신호를 정확히 포착하고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훨씬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단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불안하게 만든다.
독일의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화상 회의를 통해 집중력 저하나 심리적 불안 등의 ‘줌 피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답했다. 사진=일요신문DB
이와 관련, 페트리질레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거짓으로 꾸밀 때는 불안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유발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피로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화면 앞에서는 긴장을 풀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그런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꼭 화상 회의 때문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시 근무 환경으로는 알맞지 않은 홈오피스 주변 상황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원치 않은 멀티태스킹 때문은 아닐까. 만일 직장에 출근을 했다면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고, 놀아주지 않아도 되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로감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30년 전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했다면 어땠을까. 유선전화, 팩스, 전보, 편지 등으로 얼마나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원격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쇼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을까.
실제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화상 회의는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인기 TV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이 엔터프라이즈호에 “화면 띄워!”라고 명령을 내리자 먼 행성에 있는 스팍 중령이 모니터에 등장하는 장면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비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효과적으로 화상 회의를 진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 위기로 인한 노동계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루드비히샤펜대학의 유타 럼프 교수는 지난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약 300명의 경영진과 인사 담당자들을 상대로 화상 회의 앱의 효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들의 60% 이상이 집중력 저하 및 내적 긴장 상태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화상 회의 내내 무료함을 느낀다고도 답했다. 사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아주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럼프는 회의를 진행할 때는 내용의 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다른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회의를 주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럼프는 “재미있고 생생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소통하는 사람만이 주목을 받는다. 이는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비대면 만남은 앞으로도 지속될까. 당분간은 그럴 확률이 높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독일인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업무용이든 개인용이든 정기적으로 화상 전화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3월 말 ‘마이크로소프트 팀’ 앱은 전년 대비 세 배 더 많이 다운로드되었으며, 매일 ‘줌’을 사용하는 사람은 3억 명이 넘는다.
새로운 검색 엔진인 ‘사인(Xayn)’에서 커뮤니케이션 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클라라 헤르데아노는 화상 회의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화를 나눌 때의 미묘한 뉘앙스가 종종 사라진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점점 더 커피자판기 앞에서의 토크, 점심 식사, 사업 파트너들과의 만남이 그리워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서로 간의 신뢰와 친밀감은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와 짧은 시선 교환을 통해 구축된다.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적인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전염병 시대에서는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강조했다. 특히 긴 회의에서는 휴식 시간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며, 종종 일어나서 움직이는 습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먼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도움이 된다. 또한 호흡도 중요하다.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종종 얕은 숨을 쉬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깊이 심호흡을 하듯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이처럼 잦은 화상 대화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자 ‘줌 피로’에 대응하기 위한 앱도 새로 개발됐다. ‘허핑턴포스트’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과 그의 회사인 ‘스라이브 글로벌’이 개발한 ‘가상 피로’를 방지하는 앱이다. 마케팅 영상에서 허핑턴은 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앱을 사용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약속한다. 가령 화상 회의를 하는 동안에는 주기적으로 60초 동안 화면에서 떨어져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이때 업무는 잠시 중단하고 호흡을 가다듬거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거나 스트레칭을 한다.
‘줌 피로’를 예방하려면 #화면에서 시선을 돌린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마치 거울을 보듯 내 얼굴을 지속적으로 볼 경우 불안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 평소에는 이 카메라 기능을 꺼두는 게 좋다. #조각 휴식을 취한다 20분마다 최소 20초 동안씩 휴식을 취한다.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또는 최소 20m 멀리 떨어진 물체를 바라본다. #자연으로 나간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활력이 넘친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