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물류 홍보 효과’ vs ‘인프라 확충이 우선’…조현민 부사장 입지 강화 차원 분석도
한진그룹 물류기업 (주)한진이 고객 소통을 이유로 게임 출시를 준비 중이다.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택배물류와 게임의 첫 결합, 엇갈리는 시선
한진은 5월 초 택배물류 업계 최초로 ‘택배왕 아일랜드(택배왕)’를 출시한다고 최근 밝혔다. 무형의 택배물류 서비스를 젊고 친근한 모바일 게임을 통해 간접 경험함으로써, 고객들이 재미있고 스마트한 택배물류 문화를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무료로 다운로드해 즐기는 형태로 매출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게임 내 광고를 유치해 얻은 수익은 택배기사 근로환경 개선에 활용한다. 게임은 전문 제작사 아웃소싱을 통해 개발했다. 현재 사내 전 직원 대상으로 게임 서포터즈 운영 등을 통해 게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진 측은 “물류사업에는 항만 육상 운송 물류도 있다. 지금은 택배 쪽인데 향후에는 다른 쪽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신사업이나 수익성 목적이 아니고 고객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한진은 물류와 게임의 결합을 ‘로지테인먼트(Logistics+Entertainment)’라고 명명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조현민 부사장 경험을 살려 중후장대한 택배물류업을 캐주얼하게 이미지 메이킹 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게임 출시와 관련 물류업계 의견은 엇갈린다. 우선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조현민 부사장은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에서 재직 당시 프로 e스포츠팀을 공식 후원하고, 스타크래프트2 및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과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고 ‘진에어 그린윙스’도 창단했다. 게임을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진에어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를 봤다는 평가다.
다만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려야만 했던 진에어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본업인 물류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물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기업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하고 유튜브 채널 운영은 다 하고 있지만 게임 개발은 맥락이 다르다. 게임 개발자들의 인건비도 비싼데 택배 게임으로 뭘 하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진그룹 물류기업 (주)한진이 온라인 게임을 출시하면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조현민 (주)한진 부사장이(당시 대한항공 전무) 지난 2017년 인천의 한 행사에 참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불안한 입지, 게임 마케팅으로 실적 쌓기?
한진의 게임 출시는 결국 조현민 부사장의 입지 강화 차원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조 부사장은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25일 한진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하지 않아 비등기임원이다. 상생과 소통, 친환경 등에서 실적을 쌓아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공고히 해 추후 수장으로 올라서려 한다는 해석이다. 실제 조 부사장이 이끄는 마케팅팀에서 게임 관련 내용을 총괄하고 있다. 또 조 부사장이 한진칼에서 적을 옮긴 뒤, 한진 홍보팀은 마케팅실로 옮겨져 최근 △전기·하이브리드 택배 차량 시범운행 △친환경 윤활유 사용 협력 등 한진의 다양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나중에 본인이 맡아야 할 회사라면 조 부사장 스스로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서 낙하산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영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며 “한진 오너 일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성실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로드맵을 짜고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개발과 관련해 택배물류 본업 투자가 더 급한데 엉뚱한 곳에 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자상거래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택배사마다 메가허브터미널과 이커머스 전용 풀필먼트 센터 등 인프라 확충에 힘쓰고 있다. 한진택배는 경쟁사에 비해 투자가 늦은 편이다. 롯데택배는 2019년부터 진천메가허브터미널을 짓고 있고, CJ대한통운은 2018년 완공한 아시아최대규모 곤지암메가허브터미널을 가동 중인 데 반해 한진은 지난해서야 대전메가허브터미널 신축에 들어갔다.
물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택배업계는 지금 게임을 만들 때가 아니다. 한진도 지난해부터 인프라 확충 중인데 허브터미널의 처리능력(케파)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며 “기업 이미지 쇄신이 시급하다고 경영진이 판단했다면 케파 확장과 게임 등을 함께할 수도 있겠지만 본업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한진 측은 “택배게임은 고객에게 새로운 방식의 간접 경험을 제공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약 1700억 원을 투자해 택배사업 케파 확대와 자동화 투자 등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에도 활용도 낮은 부동산과 유동화 가능한 주식을 매각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투자 재원을 확보할 예정으로 택배사업의 케파 확충과 업무효율 및 근로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고, 향후 5년간 51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