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소년’ 친척들 씁쓸한 유산 다툼
▲ 왼쪽부터 부인을 토막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 아무개 목사가 목회를 하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교회, 중학생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질러 가족 4명을 숨지게한 현장, 친아버지 시신을 19개월간 집안 장롱에 유기한 사건의 현장 검증. |
2010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회사건 이슈들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일요신문>은 한 해 동안 극악무도한 범죄의 풀 스토리 및 자세한 속사정을 추적·보도해 왔다. 계획적인 방화를 저질러 일가족을 사망케 한 10대 소년이 매스컴을 들썩이게 했고, 19개월 전에 숨진 아버지를 김장봉투로 싼 뒤 집 장롱에 넣어 놓고 동거해 온 3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토막 내 집 담벼락 등에 묻어 놓고 태연히 실종신고를 했던 잔혹한 목사이자 남편이 경찰에 발각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 25억 보험금을 노리고 처와 자식을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한 바람난 가장이 붙잡혀 세간을 들썩이게 했다. 2010년 <일요신문>의 보도로 자세한 내막이 공개됐던 ‘5대 사건’의 그후를 추적해봤다.
# ‘두 얼굴’ 목사의 아내 살해
지난 7월 초 성남 태평동의 한 교회에서 25년간이나 사역을 해오던 이 아무개 목사가 아내를 살해한 사실이 1년 4개월 만에 드러나 충격을 줬다. 경찰 조사결과 2009년 3월 5일 자정께 아내를 살해한 이 씨는 사체를 17일 동안이나 자택에 방치했다가 여덟 토막 낸 후 집 담벼락과 팔당호에 유기했다. 이 씨는 경찰에서 “부인이 평소 남편의 권위를 무시했다. 모든 일을 멋대로 처리했으며 성도들 앞에서도 나를 무시했다. 1985년 상의도 없이 낙태수술을 해 부부간에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는데 5년 전 자궁근종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잠자리도 거부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부인에 대한 미운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살해 후 이 씨는 관할 지구대에 가출신고를 했고, 전단지를 돌리며 아내를 찾아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왔다. “이 씨가 덕망 있는 목회자인 데다가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도 절실해 보여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 당시 경찰의 얘기였다. 단순 가출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목회자로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찾아왔다”는 이 씨의 자수로 세간에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유가족들과 측근들은 이 씨가 밝힌 범행동기 및 자수 경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고, 특히 피해자인 부인에게 가정불화의 책임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성도들은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이 씨의 불륜”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목사는 성도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 가운데 2명과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사모님은 무릎까지 꿇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목사의 불륜행각은 계속됐고 부부간 다툼도 잦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목사가 주변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등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과 불륜사실 발각 등에 따른 심적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목회자로서의 양심’을 내세워 자수를 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이 무렵 이 씨에게 여자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인지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버지 사체 19개월 장롱 보관
지난 9월에는 천륜을 저버린 범죄가 16.5㎡(5평) 남짓한 쪽방에서 발생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후 19개월 동안 사체를 집 안 장롱에 보관해 둔 이 아무개 씨(30)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언론들은 사건 초기에 이 사건을 극악무도한 패륜 범죄로 조명했다. 하지만 이 씨가 진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인지, 자연사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는 등 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야산이나 강가에 유기하지 않고 밀봉한 이유에 대해 “장례비용을 마련할 때까지 아버지 사체를 썩지 않게 보관하려 했던 것이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박 아무개 씨(61)는 “이 씨가 사망 시점 며칠 전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찾아 왔다. ‘몸이 아파 죽을 지경인데 병원 갈 돈이 없어 사촌 누나 집에 가려고 한다’며 차비를 꾸러 왔다”고 전했다. 기자와 만난 유가족 측 역시 “아직 종지부를 찍지 않은 사건이 마치 결론이 난 것처럼 세간에 알려졌다”며 분개했다.
사건 담당 경찰 역시 살해가 아닌 자연사 가능성도 넌지시 내비쳤다. 그는 “이 씨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고, 아버지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누나가 봉제공장을 다니며 번 돈으로 간신히 끼니를 연명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힐 만한 단서는 부검결과뿐이었다.
3개월이 지난 현재 이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12월 22일 기자와 만난 사건 담당 경찰은 “1년이 넘은 시신이라고 하기엔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폭행 흔적이나 목을 조른 흔적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신의 자세도 폭행이나 목을 졸렸다고 보기엔 의문스러웠다”며 “마지막 비닐봉투를 벗겨 냈을 때 드러난 시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태아 자세로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담당 경찰은 “이 씨가 조사과정에서 ‘그동안 만화를 보며 경찰이 어떻게 사건을 조사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범행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거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며 “존속살해 및 사체 유기 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전했다. 취재 결과 이 씨에 대한 재판은 아직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2월 23일 기자와 통화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관계자는 “수사담당 검사의 요청에 따라 본 사건은 국민참여 재판으로 회부됐다. 아직 본원에서 정확한 재판기일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 씨 부자와 함께 살았던 정신지체아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동생이 구속된 후 혼자 남은 누나는 여전히 범행이 일어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고,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했던 쪽방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사건 담당 경찰은 “누나 이 씨는 그동안 자신이 다니던 봉제공장 사장으로부터 최근까지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사장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피의자는 현재 구속된 상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의 경우는 범죄자체보다 범죄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피의자의 환경이 워낙 참담했기에 가슴 한편에선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 일가족 방화 살해 중학생
지난 10월에는 “판·검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꾸중을 들은 후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을 사망케 한 이 아무개 군(13)의 범행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이 사건의 초점은 ‘사이코패스 형 10대 범죄’라는 점에 맞춰졌다.
이 군은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다툰 다음날 주유소에서 “과학수업에서 쓸 것이다”고 속여 휘발유를 구매한 후 새벽 3시경 집안에 뿌린 후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사건 직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홍대로 간 이 군은 몇 시간 후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화재로 아파트 주변이 북새통이 된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양 “불이 난 곳은 우리 집이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이 군은 “홍대 클럽에서 새벽까지 놀다 온 것이다”고 진술했지만 불에 탄 머리카락을 들키면서 범행 일체를 털어 놓게 됐다.
처음 사건은 부자지간에 벌어진 진로 갈등이 범행동기인 것으로 조명됐지만 그 뿌리에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자리 잡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 군은 아버지와 진로 문제로 갈등이 있기 몇 달 전부터 휘발유를 구매해 자신의 방 장롱 위에 숨겨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군은 이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리라”는 은연중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이 군이 그토록 아버지를 증오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돼 온 폭력 때문이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이 군은 밤에는 다리를 못 쓰는 시어머니(74)를 극진히 보살피고, 낮에는 봉제공장 일까지 도맡아 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달리 가족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억압해 온 아버지를 보며 적개심을 키워 왔다”며 “이 군은 아버지가 잠든 안방에 불을 지른 후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 할머니, 여동생을 깨워 탈출하려 했지만 불길이 워낙 순식간에 타올라 겁을 먹고 달아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조사에 응한 친척들 역시 이 군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놨고 최근에는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가 여동생에게까지 폭행을 행사하려 해 이 군이 뜯어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의 ‘그 후’는 어떨까. 12월 22일 기자와 통화한 사건 담당 경찰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재판과정에서 가정폭력을 당해온 사실을 증언해 줄 일가친척들이 모두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사건발생 당시만 해도 경찰조사에 응했던 친척들은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아예 연락두절 상태가 됐다. 결국 이 군이 가정폭력을 당해온 사실은 증명할 길이 없어 소년법 중 가장 강력한 처분인 10호 판결이 내려졌다. 10호 판결의 경우 최장 2년 동안 소년원에 송치하는 처분이다. 경찰은 “친척이란 친척에겐 모두 다 연락을 취해봤지만 아무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안타까웠지만 재판 시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범행에 있어 참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연락이 닿지 않던 친척들의 소식을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대신 전해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현재 이 군의 친가와 외가 친척들이 이 군 부모님이 남긴 봉제공장 소유권 및 보험금 분배 문제를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군 가족의 유산 및 보험금은 법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인척이 상속받게 되는데(이 군은 존속살해에 해당돼 상속권이 박탈됨), 경찰 관계자는 소송을 벌이는 친인척들이 ‘가장 가까운 친인척’이 누구이냐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 처자식 살해 의혹 교통사고
2009년 1월 말경 아내와 자녀를 교통사고로 잃은 한 30대 가장이 사실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혐의로 30대 가장 A씨(37) 는 지난 8월 결국 검찰에 구속됐다.
당시 처가에 들렀다 승용차 편으로 귀경길에 오른 A 씨 가족은 경기도 양평에서 도로 옆 축대벽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A 씨 아내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두 딸도 끝내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졸음운전을 했다’는 A 씨의 말을 믿고 단순 사고로 처리했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입원했던 A 씨가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불거졌다. A 씨가 부인 사망 시 11억여 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고 나기 불과 10일 전과 7일 전에 두 종류의 생명보험을 들어뒀던 사실을 보험회사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의문점을 포착한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 2009년 6월 18일 경기도 수원의 내연녀 집에 머물러 있던 A 씨를 체포했다. 불륜관계를 지속해 온 A 씨는 처가에 들렀던 사고 전날에도 부인에게 ‘PC방에 가겠다’고 둘러대고는 내연녀를 만나고 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를 받던 A 씨가 ‘사고 전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 진술이 거짓이라는 결과를 확보했다. 하지만 A 씨가 끝내 혐의를 부인해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또 다시 수사는 난항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교통공단 등 5개 기관으로부터 사고 차량의 운전대 각도를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자동차가 축대 벽을 들이받았을 때의 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 8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취재결과 A 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A 씨 사건의 진실은 향후 검찰 조사 및 재판 과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YS 상대 친자소송 제기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김 아무개 씨(51)의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12월 2일 기자와 만나 단독 인터뷰에 응했던 김 씨는 “YS는 내가 태어난 뒤 10여 년간 우리 모자가 사는 집에 간간이 들렀고, 내 나이가 스물이 넘었을 시점엔 YS가 설립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실로 나를 불러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며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김 씨측은 “출생 이래 YS는 오랜 시간 원고에 대한 부양행위를 했고, 현재까지도 측근을 통해 연락하며 지내왔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소송 제기와 언론 보도에도 YS 측은 여전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기자와 연락된 김 씨는 “친자확인소송의 경우 내가 취하하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본인이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