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의원 측 “제조사 독과점 우려, 결국 소비자 피해”…여론 “기존 시장 혼탁, 대기업 진입 긍정적” 다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두고 온라인 상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런 상황은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추천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중고차 매매업은 제과점업, 화초 및 산식물소매업, 가정용가스연료소매업, 장류(간장·고추장·된장·청국장) 제조업 등과 함께 대기업 진출이 막혀 있었다. 그런데 2019년 동반위 회의에서 중고차 매매업은 대기업 시장지배력이 높지 않고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데 대기업 진출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적합업종에서 제외됐다고 전해진다.
중고차 매매업에 대기업 진출이 처음부터 막혀 있던 것은 아니다. 1999년 SK엔카는 SK그룹 사내벤처로 출발했다. SK엔카는 2000년 사업을 시작하며 ‘TRUST SK엔카. 대기업이 하면 다릅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다 2013년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 등이 제한돼 왔다. SK엔카도 2017년 사모펀드에 약 2000억 원 규모로 매각하고 중고차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동반위 결정으로 2019년 다시 대기업 진출 길이 열린 것이다.
규제 변화에 맞춰 2020년 10월 현대자동차가 중고차시장 진출을 발표했다. 현대차 측은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70~80%가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이나 가격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행보에는 3월 발의한 조정훈 의원 법안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조 의원이 발의한 중고차 상생협력법안은 수입차를 포함한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10년 동안 금지한다. 조정훈 의원 측은 “다만 10년 기한이 종료하기 전에 상생절차를 밟도록 하고, 건전한 중고차 매매업 육성을 위한 기본계획수립, 주기적 실태조사 등 중고차 상생협력과 매매업 육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나오자 즉각 많은 소비자들과 인플루언서들의 비판이 나왔다. 혼탁한 중고차 매매시장에서 대기업이 진입해 경쟁을 통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조 의원을 향해 ‘중고차 허위매물 당해봐야 저런 법안을 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또한 조정훈 의원이 법안 발의 과정에서 국민을 속였다는 논란도 나왔다. 조 의원이 법안 제안 이유로 “세계적으로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전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어, 영세한 중고차 매매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다.
이에 모트라인, 우파푸른하늘, 카라큘라 등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조 의원이 법안 근거로 둔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해외의 경우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은 시장 경쟁 체제하에서 대기업부터 소규모업체까지 자유롭게 상생하는 유통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 또는 대기업에 대하여 중고자동차 중개업 또는 매매업을 제한하는 해외의 입법 사례는 조사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는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법안 제안 이유인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전례가 없다는 내용과는 상반된다”며 조 의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조정훈 의원 측은 “입법조사처에서 받은 자료가 여러 개 있고 논란이 된 자료가 전부가 아니다. 미국 주별 완성차금지현황근거법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는 제한을 하고 있는 게 맞다”라면서 “미국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28개 주에서 프랜차이즈법에 따라 완성차업체는 딜러를 통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못한다. 28개 주 가운데 14개 주는 신차와 중고차를 구분하지 않고 금지했고, 나머지 14개 주는 신차를 금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는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인증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이미 람보르기니 등 수입차 브랜드 20여 곳이 중고차 매매업을 하고 있다. K카(옛 SK엔카) 홈페이지에서도 글로벌 브랜드 차량들을 대상으로 인증중고차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2020년 토요타는 자사 인증중고차의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수입차 브랜드가 점검, 판매하는 인증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사진=K카 홈페이지 캡처
조정훈 의원 측은 “법안 발의를 한 이유는 대기업 진출을 막자는 게 아니라 완성차업체 진출을 우려하는 것이다. 완성차업체 진출로 당장은 소비자가 보호받을 수 있지만 기존 중고차 유통 구조가 사라지고 제조사 중심으로 다시 판이 짜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고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자동차 시장 독과점 형태가 완벽하게 이뤄진다. 자동차 생산과 판매, 부품, 중고차까지 전 분야에 걸쳐 제조사가 진출하면 시장은 당연히 독과점 형태로 구성돼 장기적으로 볼 때는 소비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여론은 조정훈 의원 법안에 불리한 상황이다. 2020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들의 80.5%는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돼 있다고 인식했다. 또한 63.4%는 국내 완성차 제조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훈 의원 법안이 이렇게 공격받는 이유는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한 인플루언서는 “중고차라고 검색해 나오는 30개의 상위 사이트 중 95% 물건이 허위 매물이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도 허위매물에 당한 사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조정훈 의원 측도 “불량 중고차 문제는 시장에서 최악의 경우 퇴출시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치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허위매물 제공자 공표, 중고차 매매정보시스템 구축 등도 법안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조 의원 법안이 일반 시민들의 공감을 받고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