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례 소환·휴대전화 포렌식 두고 “이례적 수사”…논란 확산되자 청와대 고소 취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을 뿌린 김정식 대표를 모욕죄로 고소한 것을 취하하라고 5월 4일 지시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김정식 대표는 2019년 7월 17일 국회의사당 분수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 500여 장을 뿌렸다. 전단 앞면엔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와 함께 문 대통령이 과거 트위터에 올렸던 일본 음란물 잡지 표지를 실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9월 26일 트위터에 ‘근친 성관계’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했지만 경위를 밝히진 않았다.
전단 뒷면엔 ‘2020 응답하라 친일파후손’이라는 문구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홍영표 민주당 의원,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 등 친 여권 인사 선대가 친일 행적과 관련됐다는 주장을 담았다.
김 대표는 “당시 정부가 반일 감정을 조장하던 때”라며 “야권 선대가 친일 행적을 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는데, 여권 인사도 친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궁극적으론 이웃나라 일본과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국회의원들이 봤으면 해서 국회에서 전단을 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단 살포 당시 김 대표는 3명의 지인과 동행했는데, 별다른 소요사태는 없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구호를 외치거나 한 것도 없었다. 경호원이 막거나 저지하지도 않았다”며 “전단을 분수대에 뿌렸고, 지저분한 거 같아서 벤치에 놓아두거나 하고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4개월이 지난 2019년 11월 26일 김 대표는 영등포경찰서에서 대통령 모욕죄 관련 출석 통보를 받았다. 2주일쯤 뒤에 경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김 대표는 곧바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해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다. 김 대표가 수사관에게 고소 주체를 묻자 “알면서 묻느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고소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4월 29일 “전단 내용이 아주 극악해 당시에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라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대통령이 참으면 안 된다는 여론을 감안해 (문 대통령의) 대리인이 고소장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대통령을 모욕한 혐의로 4월 8일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10차례 정도 조사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뿐만 아니라 김 대표에게 쓰레기(전단)를 버렸다는 이유로 경범죄처벌법 위반죄도 추가했다. 이어 경찰은 지난해 2월 12일 김 대표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3개월 동안 포렌식 작업을 거쳤다.
김 대표는 “경범죄처벌법 위반은 처음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추가됐고, 수사관에게 이유를 묻자 ‘쓰레기인 전단을 버린 것 때문’이라고 했다”며 “대통령도 사람이니 고소할 순 있다고 본다. 근데 휴대전화를 3개월 동안 가져가서 포렌식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당시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길 들이닥쳐서 휴대전화를 가져가니 상담받으러 온 분들에게 누가 될까 항의도 못 했다”고 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김 대표에게 동행한 3명의 신상정보를 물었고 답을 얻지 못하자 김 대표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당시 담당 수사관은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김 대표가 모욕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10차례를 받은 건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가람 변호사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모욕죄의 경우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넘기지 않는다”며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모를까 동행한 지인 신상을 밝히려고 포렌식을 한다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김 대표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것을 두고 배후 세력을 엮으려는 과거 독재 정권 시절 공안수사 기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부장검사 출신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모욕죄는 사회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점에서 형사처벌 가치가 가장 낮은 범죄다. 모욕죄가 친고죄인 이유”라며 “휴대전화를 포렌식했다는 것은 가벼운 사건을 키우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대통령 모욕 배후에 있는 반사회적 집단을 찾아내 엮으려는 전형적인 독재정권 때의 공안수사 기법”이라며 “일반적인 모욕사건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별건 수사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사건으로 다른 건을 잡아내려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대표에 따르면 실제 경찰 수사에서 수사관이 처음 물어봤던 것이 “누가 시켰느냐”였다. 김 대표는 “‘배후에 누가 있느냐’거나 ‘돈은 어디서 났느냐’를 지속해서 추궁했다”며 “나는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한 것으로 떳떳하다. 누가 시키거나 사주를 받아서 한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한 모욕죄 처벌의사를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며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내용이 알려진 후 문재인 대통령 과거 발언이 조명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2020년 8월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됩니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라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당선 전인 2017년 2월 JTBC ‘썰전’에서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 또한 성명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5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 회의에서 “독재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 되는 대상”이라며 “배포된 내용이 어떤 것이었든 대통령에 의한 시민 고소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5월 4일 오전 논평에서 “최고 권력자나 고위공직자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그간 밝힌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전단지 또한 정치적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범계 장관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3년 12월 19대 국회 당시 ‘모욕죄 삭제’ 등을 포함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한 사실도 화제를 모았다. 유승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에는 두 장관뿐 아니라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한정애 환경부 장관,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홍영표 의원, 양승조 충남지사 등 민주당과 범여권 의원 32명이 발의에 참여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4일 오후 모욕죄 고소를 취하하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한 모욕죄 처벌의사를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며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 사안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의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등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했던 것”이라고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