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물 제거’ 오비맥주와 신경전…10년 만의 1위 탈환 위한 ‘무리수’ 지적
하이트진로가 ‘과잉 영업’ 논란에 휩싸였다.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사진=하이트진로 제공
오비맥주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부근 상권에서 오비맥주의 홍보물이 잇따라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보물은 신제품 ‘한맥’의 모델 이병헌의 등신대로 4월 들어서만 다섯 차례나 분실됐다. 오비맥주는 식당 건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입수해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고,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식당 앞에 승합차를 세운 뒤 한맥 홍보물을 수거해 차량에 실어 현장을 떠나는 장면을 포착했다. 경찰이 차량의 차적을 조사한 결과 하이트진로 법인 소유 차량으로 확인됐다.
하이트진로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앞으로도 준법경영, 정도경영에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노력을 다하겠다”면서도 “치열한 영업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마찰로 대부분 (양사) 영업단에서 서로 조율하며 합의 과정을 거쳐 해결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이트진로는 반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오비맥주 직원이 하이트진로의 홍보물을 제거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지난 4월 30일 인천 관교동에서 오비맥주의 ‘한맥’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식당 외벽에 붙어 있는 하이트진로의 제품 홍보 포스터를 제거하고 그 위에 한맥 포스터를 붙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오비맥주 측은 “홍보물 교체는 업주의 동의로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이를 홍보물 무단 철거와 동일시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행위”라며 “오비맥주는 내부 영업 활동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어떠한 불법적인 영업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번 일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맥주시장 1위 사업자 오비맥주와 2위 하이트진로의 신경전이지만,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영업 무리수’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업주의 동의를 받고 홍보물을 교체한 오비맥주와 홍보물을 무단으로 가져간 하이트진로를 쌍방과실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이트진로의 무리한 영업 방식 사례는 또 찾을 수 있다. 지난 4월 8일 경남 사천시의 한 식당에서 하이트진로 영업사원 3명이 소주업계 경쟁사 무학의 홍보물을 철거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 하이트진로 홍보물을 설치하고,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뒤 자리를 떠났다. 하이트진로 측은 식당 업주로부터 홍보물 교체를 허락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무학 측은 허락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설령 업주가 허락했다 할지라도 타사 소유물을 가져가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이트진로 영업단의 공격적인 영업에는 회사 내부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태영 사장과 김인규 사장의 ‘1위 탈환’에 대한 강한 의지가 선 넘은 영업 활동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출시한 테라를 앞세워 맥주시장 1위 사업자인 오비맥주와 차이를 좁히고 있다. 테라 출시 행사에서 모델들이 테라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 박태영 사장은 지난해 12월 8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태영 사장은 맥주 테라와 소주 진로이즈백을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테라와 이즈백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박태영 사장이 하이트진로를 주류업계 선두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직원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실행해 나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인규 사장은 올해를 ‘맥주시장 1위 탈환의 해’라고 밝힌 바 있다. 맥주시장에는 통상 10년을 주기로 1위 사업자가 바뀐다는 ‘10년 사이클설’이 있다. 1996년 시장 1위였던 하이트진로는 2011년 오비맥주에 자리를 넘겨줬다. 주류업계에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즈음 다시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를 내리고 왕좌를 되찾지 않겠냐는 예상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맥주시장에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차이가 서서히 좁혀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0년 하이트진로의 맥주 점유율은 2019년 대비 7%포인트 상승한 42%로 추정된다. 김인규 사장은 하이트진로가 2위로 처졌던 2011년 취임했다. 올해는 김인규 사장의 사장 취임과 하이트진로가 맥주시장 2위로 밀려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김인규 사장 역시 박태영 사장 못지않게 1위 탈환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결국 맥주시장 1위 탈환을 염원하는 박태영‧김인규 두 사장의 자존심이 영업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선 것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신제품이 나올 때 상대 회사의 기를 꺾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대표가 취임했으니 자극받아서 더 열정적으로 뛰는 것일 수 있다”며 “사장이 직접 ‘경쟁사 홍보물 제거하라’는 지시를 하지는 않겠지만,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말 한마디에 영업사원들은 포스터 ‘덧방(자사 포스터로 상대 포스터를 가리며 붙이는 행위)’을 하거나 자기 구역에 아르바이트 직원을 더 배치하는 등 도 넘는 영업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